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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이스]죽은 개를 찾아서

김숙현, 2010

[초이스]죽은 개를 찾아서 대표 이미지

다큐멘터리의 제작을 ‘본격적’으로, 말하자면 담고 싶은 내용과 그에 대한 표현형식에 대한 고민을 구체적으로 시작하게 되면, 그 고민과 관련해서 세상에 마주하는 모든 것으로부터 지혜와 조언을 구하게 된다.

엄마의 사소한 잔소리 속에서 일상을 파고든 신자유주의 메커니즘으로서의 재개발논리를 발견하기도 하고, 어린 조카의 순수한 자랑에서 경쟁사회의 한 단면에서 대한 이해의 단초를 마련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석학들의 본질에 대한 철학적 탐구로부터 이 모든 것들을 성찰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토대를 다지기도 한다. 그렇게 끊임없이 만나고, 묻고, 답하는 과정은 곧 다큐멘터리를 통해 이 현실에 개입하고 싶은 나의 언어로 정리된다. 그래서 다큐멘터리를 사유의 장르라고 하는 것일까. 

최근 우리가 제작하고 있는 다큐멘터리는 2009년 1월 20일, 용산참사의 숨겨진 진실에 관한 것이다. 지난 2년 동안 <남일당이야기>(오두희, 2010), <용산>(문정현, 2010), <마이 스윗 홈-국가는 폭력이다>(김청승, 2011) 등 용산참사가 이 시대에 갖는 의미를 다양한 위치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기록한 다큐멘터리들이 제작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에 관해 더 깊은 성찰을 하기 위해서는 ‘용산’에 대해 다양한 질문을 던지는 더 많은 다큐멘터리들이 제작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측면에서 우리 역시 용산참사의 진실을 어떻게 말하고 어떻게 표현할 것인지 고민이 한창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연히 만난 단편 다큐멘터리 한편, <죽은 개를 찾아서>(김숙현). 이 다큐멘터리와의 만남은 나의 상황 속에서 매우 특별한 인연으로 다가왔다. 

<죽은 개를 찾아서>은 모녀삼대, 즉 외할머니, 엄마, 나를 잇는 여성들의 운명에 순응하거나 거부해왔던 역사에 질문을 던지고 있는데, 이러한 질문은 여성 다큐멘터리 혹은 여성의 역사에서는 매우 익숙할 뿐만 아니라 어쩌면 낡은 것처럼 보일 정도이다. 그런데 이 다큐멘터리는 ‘왜 할머니집의 개들이 일찍 죽을까’라는 질문을 통해 여성의 삶과 역사가 갖는 의미를 ‘다시’ 찾고 있다. 이 흥미로운 다큐멘터리가 나에게 성큼 다가와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바로 익숙한 주제를 색다른 표현형식을 통해 낯설고도 강렬하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슈퍼8mm필름로 촬영된 사나운 개들의 모습으로 시작하는 <죽은 개를 찾아서>는 영화 내내 어둡다 못해 기괴한 느낌마저 든다. 외할머니집에 들어온 개들은 하나같이 일찍 죽어나간다. 그 미스터리를 안고 감독은 자신이 키우는 개 ‘태양’을 데리고 외갓집에 가서, 친척들에게 ‘왜 외할머니 집에서는 개들이 일찍 죽는지’에 관해서 질문을 던지기 시작한다.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았던 이 황당한 질문에 친척들은 나름의 답을 제시한다. 그렇게 답을 듣는 과정과 외할머니의 생애를 듣는 과정이 교차된다. 감독에게 외할머니는 왠지 모르게 신비스럽고 무속의 힘이 있을 것 같았다. 외할머니는 일제시대에 태어나서 신식교육을 받았고, 똑똑하고 예뻐서 최선의 결혼을 해서 행복할 것이라고 믿었던 소녀였다. 그런 소녀는 곧 혹독한 시집살이와 무관심한 남편, 고된 노동을 하는 동안 사라졌다. <죽은 개를 찾아서>는 개들의 죽음에 대한 의문과 할머니의 생애, 이렇게 두 개의 이야기 축으로 구성되어 있다. 서로 무관해 보이는 이 두 개의 이야기를 이어주는 것은 바로 개들의 죽음에 대한 의문을 푸는 과정과 감독의 내레이션이다. 

우선, 속엣말이나 혼잣말같은 내레이션은 매우 독특한 쓰임이 있다. 대개의 내레이션처럼 정보전달, 상황설명 등과 같은 기본적인 기능에 충실하면서도, 인터뷰의 질문을 내레이션으로 처리함으로써 내면의 저 깊은 곳에 숨어있는 어떤 감정을 끌어냈다. 외할머니와의 인터뷰 장면을 예를 들어보자. 외할머니가 부엌을 하고 있는 장면 위에, ‘그런데 할머니, 할머니 고향은 어디야?’라고 느닷없이 묻거나 혹은 옛이야기를 들려주는 할머니의 모습 위로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이 ‘할머니는 어떤 소녀였을까?’라고 궁금해한다. 인터뷰의 질문을 대신하는 내레이션은 직접적인 대상인 할머니를 향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속엣말같이 처리됨으로써, 인터뷰이인 할머니와 인터뷰어인 감독의 서로 다른 내면세계를 동시에 접하도록 만들어서, 다층적인 감정선을 형성할 뿐만 아니라 다른 세대에 태어나 역사적 경험이 다른 여성들이 지금 동시대를 살면서 어떻게 공존하는지를 보여주는 효과까지 발생시킨다. 

이렇게 내레이션의 효과가 확장될 수 있었던 것은 애초의 질문, “왜 외할머니 집에서는 개들이 일찍 죽는지‘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아무도 의문을 갖지 않았던 이 질문은 쉽게 종잡을 없는 이야기가 전개됨에 따라 점차 실체를 드러내는데, 그 질문이 향하고 있었던 것은 역사적으로 주목받지 못했던,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았던 할머니의 삶 그리고 여성의 역사였다. 가부장제에 순응하거나 저항하면서 만들어온 여성의 역사, 그 역사의 대물림. 여성의 역사에서는 너무나 중요하지만 그다지 새로울 것 없는 주제가 개성강한 감독에 의해서 새롭게 태어났다. 강렬한 표현형식과 강한 도전정신은 다소 익숙한 방식으로 결말을 맺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는 긴 여운을 남긴다. 그리고 감독의 새로운 작품을 기다리게 한다. 

이제 우리의 작업으로 돌아와서, 우리는 ‘용산참사’의 어떤 진실에 대해서 어떻게 말하기를 시도해야할지 또 다시 고민에 빠져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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