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이스
[초이스]무산일기
박정범, 2010
이 영화는 탈북자, 새터민에 대한 영화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가장 밑바닥을 형성하고 있는 층이 바로 이 탈북자들과 외국인 노동자들이다. 어쩌면 탈북자들이 더 비참한 삶을 살고 있을 지도 모른다. 외국인 노동자들은 돌아갈 고향이라도 있지만 이들에게는 그러한 최후의 보루마저도 없는 것이다.
이 영화는 제목부터 비장하다. 무산일기. 감독은 주인공 승철의 고향이 무산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는 자연스럽게 재산이 없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없는 자의 일기. 없는 자의 하루. 참 비장하고, 비루하다.
탈북자인 주인공 승철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닥 적응을 잘 하질 못하고 있다. 그가 하는 일은 번번히 사회적 요인에 의해 좌절당한다. 담당 형사가 소개시켜주는 일자리도 그렇고, 포스터 붙이는 일 역시 단지 구역을 잘못 배정받아 방해자가 있어서 임에도 불구하고, 일을 못하는 것으로 낙인찍혀 그 마저도 할 수 없는 신세가 되곤 한다.
잘 하려고 했는데, 그저 열심히 살려고 노력할 뿐인데, 승철에게 돌아오는 것은 차가운 냉대와 멸시뿐이다.
“제가 뭘 잘못했습니까?”
절규와도 같은 이 말이 아마도 승철의 모든 사정을 함축적으로 표현한 것이 아닐까 싶다. 잘 못한 일도 없는데 단지 잘 못한 것이 있다면 남들처럼 영악하지 못한 것일 뿐인데, 자본주의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것일 뿐인데...
승철은 열심히 교회에 나간다. 그것이 성가대에 있는 여인 때문인지, 아니면 그저 의지할 만한 곳을 찾기 위함인지 알 수는 없다. 다만 그는 교회를 나가고, 그 곳에서 ‘구복求福’을 위해 기도한다. 그리고 승철은 우연히 자신이 좋아하는 성가대 여인이 노래방을 운영하는 것을 알게 되고, 그 노래방에 취직을 하게 된다. 그리고 승철은 그 곳에서 돈의 또 다른 가치에 대해, 자본주의의 이면에 대해 하나씩 알아나간다. 오해로 인해 노래방에서 ?겨 난다. 그리고 연이어 포스터 붙이는 일도 짤린다. 그 최악의 상황에서 승철은 변화한다. 자신을 괴롭히던 불량배들과 맞서게 된 것이다. 승철이 순수한 마음을 버리게 되는 순간, 자본주의에 적응을 시작한 순간, 교회에서 고해성사와도 같던 악에 받힌 과거 고백의 순간 교회와 숙영은 승철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결국 변화한 승철은 자신의 유일한 친구라고 할 수 있는 경철의 돈을 가로챈다.
승철이 유일하게 정을 준 대상은 강아지이다. 승철이 노래방에 다시 출근하게 된 날, 승철은 가로챈 경철의 돈으로 양복을 맞춰 입는다. 그리고 강아지를 노래방 밖에 묶어놓는다. 잠시 편의점에 맥주를 사러 나온 승철은 강아지에게 간식을 주고, 편의점으로 향한다. 하지만 승철을 따라가려던 강아지는 차에 치어 죽고 만다. 맥주를 사서 노래방으로 돌아가려던 승철은 강아지의 주검을 발견한다. 망연자실한 승철의 뒷모습. 하지만 승철은 죽어있는 강아지를 바라보다 그대로 일터인 노래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비정한 자본주의에 적응하기 위해서 말이다.
세계 10대 경제대국으로 우뚝 선 ‘대한민국’. 누구의 대한민국인지는 모르겠지만, 여전히 이 이야기는 현재 진행형이다. 탈북자이건, 이주노동자이건, 도시빈민이건 상관없이 아직도 이 나라의 최하층에는 무엇을 하고 싶어도 어찌할 수 없는 그림자가 존재한다. 가진 것이 없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 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