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초이스]파산의 기술

이강현, 2006

[초이스]파산의 기술 대표 이미지

일상의 이미지들의 배열이 숨기고 있는 의미들의 연상 작용이란 어떤 공포영화보다도 더욱 강력한 효과를 내는 것이다. 이 다큐멘터리는 개인 파산을 지시하는 이미지와 소리를 일상으로부터 추출하여 조합한 영화로, 몽타주 형식 자체가 사회학적 고찰을 드러내며 관객에게 일종의 사유 방식을 촉구하는 이른바 ‘지적 영화’의 카테고리에 분류될만한 영화다. 이 영화의 첫 번째 충격의 이미지란 지하철 CCTV로 관찰된 한 남자의 ‘편집된’ 죽음이다. 하지만 영화는 이로부터 단절된 밝은 지상을 스케치하며 정신적 쇼크가 사라진 일상에서 운동하는 노동의 이미지와 라디오 방송에서 들려오는 청취자들의 소소한 사연들을 엮는다. 이것은 현대인의 삶이라는 구조물을 더욱 단단하게 구성하고 있는 듯하다. 이어 카메라는 집 앞 우편함에 꽂힌 지로 용지를 꺼내보는 한 여자의 이미지로부터 개인 파산이라는 사건으로 들어선다. 이러한 연상의 과정은 조금도 극적인 것이 아니다. 전기가 끊긴 집에 들어선 듯 어두운 어느 낡은 방 안에서 벌어졌거나 벌어지고 있는 사건이 재현된다. 태양빛으로 볼 수 있었던 가구에 붙은 빨간 딱지, 한 남자의 뒷모습, 어둔 방 이미지에 입혀진 법원의 판결문 낭독 목소리와 이에 느슨하게 기대어 있는 가족의 홈 비디오 장면은 서로간의 이면성을 표출하며 밀어낸다. 한 공간에서 벌어진 개인의 사건을 리얼리즘에 입각하여 상상적으로 기록함으로 사건의 부조리함을 통찰하는 빼어난 형식의 장면이 아닐 수 없다. 

태양 아래서 움직이는 도시인들의 이미지와 그 인상으로부터 현대인의 사망 원인을 진단하는 생태학적 접근이 일부 시도되지만, 이 모든 사망원인을 압도하는 것은 사회적 자살의 수치이다. 이어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인터뷰 화면, 파산자들의 입과 눈의 몽타주, 그 사이에 멀찍이 떨어져서 찍은 재계 관계자들의 만찬 장면과 격한 클로즈업으로 담은 대부업체 담당자의 인터뷰 화면이 삽입되어 있다. ‘사측의 처우에 별다른 불만이 없는’ 낙관론에 기대있는 비정규직 근로자의 인터뷰 화면은 뷰 파인더 화면과 출력된 화면으로 나뉘어 조정되는 과정을 연출한다. 그것은 보여 지면서 관찰되고, 지속되면서 편집된다. 이것은 개인 파산자들이 사정을 고백하는 입과 눈의 몽타주로 이어지는데, 그 입과 눈은 앞의 화면 조정 과정과 함께 문제적으로 인식된다. 무엇을 듣고 볼 것인가에 대한 고찰인 셈이다. 내용인즉슨, 이들은 아무것도 고발하지 않으며 자신의 무력함을 상대적 만족과 위로라는 일상적 감정선 안에서 해결하려 할 뿐이다. 이제 인터뷰를 담은 화면 구성의 형식이 이들의 ‘고백’을 역으로 ‘고발’한다. 이어 영화는 시간상의 비약을 한다. 가족 찾기 방송과 개인 파산을 상담해주는 TV 프로그램엔 잔인한 운명에 눈물을 흘리며 지나간 세월을 자신의 탓으로 돌리는 무력감에 젖은 인물들이 그득하다. 이어 훌쩍 돌아간 시간상에서 대한뉴스의 자료화면(김경만 감독의 것)이 인서트 되는데, 그 시간은 국가의 감시와 통제 아래 생산력 증강에 힘쓰는 노동자-기계들의 ‘모던 타임즈’다. 

시청역 광장이라는 상징적 장소에서 벌어지는 민주화 세대들이 주축이 된 문화제에 참여한 사람들의 환호성과 투쟁 중이던 노동자의 죽음을 슬퍼하는 흐느낌이 동시에 펼쳐지고 있는 현재의 광경, 이어 투신자살이 벌어진 지하철 플랫폼의 CCTV 감시망 속에 보이는 밀려드는 사람들과 그들의 초조한 표정들 사이에서 읽히는 맥락이란 역사의 주체의식이 사라진 객체들의 체화된 제스처 같은 것이다. 이처럼 영화는 한정된 공간 하에서 벌어지는 일상의 이미지들을 잘라내어 엄밀한 시간과 의미상의 충돌 몽타주로 시각화하고 시간 여행이라는 상상력으로 비약함으로 현재 우리들에게 체화된 내성물질의 위험성을 대범하게 고발하고자 하는 것이다.

관련 영화인

불러오는 중입니다.

관련 영화글

불러오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