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이스
[초이스]우리, 쫑내자!
황철민, 2006
어느 여름날 올림픽 공원에 세 명의 젊은이가 모인다. 요아킴, LA, 허벌레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세 사람은 각자가 부담하는 돈을 모아 함께 자동차 여행을 하고, 돈이 떨어지면 자살하는 `자살 여행`을 위해 모인 것이다. 핸드폰 배터리를 분리해 고속도로 휴게소에 버린 일행은 이번 여행의 주제곡인 `글루미 선데이`를 들으며 여행을 시작한다.
각자가 가고 싶은 곳을 정해 이동하며, 돈은 한사람씩 돌아가며 지출하는 `자살 여행`이 첫번째 당도한 곳은 어느 소도시. 요아킴의 목적지인 이 곳에서 요아킴은 방향을 상실하고 거리를 헤매게 한다. 마침내 목적지로 보이는 곳에 도착한 요아킴은 아파트 앞에서 울음을 터트린다. 그렇게 하루가 지난다. 그곳을 떠난 여행은 이번엔 목적지 없이 밤새 달린다. 어딘지 모를 곳에서 아침을 맞은 세 사람, 그들이 당도한 곳은 방조제가 있는 바다다. 여행을 떠나 처음 만난 바다는 아름답게만 보인다. 하지만 허벌레가 요아킴과 LA를 버려둔채 자동차를 타고 어디론가 떠나버리자 바다는 악몽이 된다. 노숙을 하였기에 배도 고프고 목도 마른 이들에게 바다는 갈증과 짜증을 줄 뿐이다. 허벌레를 찾아헤매던 그들은 어느 갯벌에서 춤을 추고 있는 허벌레를 발견한다. 허벌레를 찾은 두 사람은 춤추는 허벌레를 그저 바라볼 뿐이다. 허벌레가 춤추는 갯벌은 생명이 말라가는 죽음의 갯벌. 죽음을 위해 떠난 이들과 말라버린 갯벌에게 허벌레의 춤은 처연한 위로처럼 보인다.
어느새 그들에게 남은 돈은 고작 5천원. 이들의 여행도 막바지에 이른다. 기름이 떨어질 때까지 자동차를 달리기로 한 그들이 당도한 곳은 또 다른 소도시. 그곳에서 그들은 촛불을 켜고 함께 살아가려는 사람들의 마을을 만난다. 이제 그곳에서 죽음을 준비해야하는 세 사람. 하지만, 그들은 자살 대신 삶을 선택한다.
<우리, 쫑내자>는 어느 여름, `자살 여행`을 떠난 세 남녀가 목적한 죽음 대신 삶을 선택하는 여정을 따라간다. 세 사람은 서로가 누구인지, 왜 자살을 하려하는지 따위 물어보지 않은 채 여행을 시작한다. 서로에게 무관심했던 그들은 길 위를 배회하며 겪는 갈등 속에서 점차 서로를 이해하게 된다. 죽음을 맞은 자연을 경유한 후, 함께 살아가고자하는 사람들의 무리 속에서 마침내 죽지 말아야할 이유를 만나게 된다.
영화 속에서 이들이 찾아간 곳은 옥천과 새만금, 그리고 평택. 공교롭게도 이 세 지역은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살아가기 위해 어깨를 걸고 함께 투쟁하던 곳들이다. 죽음을 만나기 위해 떠난 여행이지만, 이들이 만난 것은 상실과 죽음이 아니었다. 홀로 있을 때는 외롭고 죽음이 가까이 온 것처럼 느껴졌지만, 서로 어울려 살아가려고 하는 삶의 의지를 만나면서 이들은 바뀌어 간다. 그들이 `쫑` 낸 것은 `생명`이 아니라 `죽음에 이르고자 하는 여정`이었다. 세사람은 `자살` 대신 `삶`을 선택하며 `전쟁터 같은 삶`이만 어울려 살아가기를 선택한다.
황철민 감독의 <우리 쫑내자!>는 감독의 전작 <그녀의 핸드폰>(2001)과 마친가지로 감독이 직접 촬영하며 최소한 스탭들이 배우들과 함께 이동하며 촬영한 로드무비이다. 전작과 다른 점이라면 스태프의 수가 늘었으며, 스태프를 위한 별도의 자동차가 있다는 것 정도. 영화는 연기자들이 이동하는 자동차와 조촐한 수의 스탭이 따라가는 자동차, 이렇게 두 대의 자동차로 실제 여행하며 간결하게 촬영되었다.
배우들과 제작진은 언론 권력에 맞선 언론 운동이 활발하게 진행된 `옥천`과 방파제 건설을 둘러싸고 갯벌과 자연, 사람을 지키려고 싸운 `새만금`, 미군기지 이전에 반대하며 평화롭게 함께 살고자 했던 `평택 대추리`를 여행하며, 그곳의 풍경과 사람들을 담았다. 영화가 촬영된 2006년에서 5년이나 지난 지금, 그곳은 이미 다르게 변하였지만 영화를 통해서 다시 만나는 그곳의 모습은 예사롭지 않게 다가온다. 영화는 삶에 대한 의지를 가질 것을 이야기하는 한 편, 함께 살아가고자 했던 곳들의 풍경을 영화 안에 오롯이 남겨낸다. 이 영화가 가진 또 하나의 미덕은 바로 카메라가 잡아낸 그곳들의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