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이스
[초이스]미안해,고마워
송일곤 , 오점균 , 박흥식, 2011
날씨가 좋아서인지 동네로 밤 산책을 많이 한다. 길을 걷다 요사이 눈에 든 것은 길거리에 버려진 인형들이다. 꽤 큰 부피의 곰이나 개 인형들이 먼지를 덮어쓰고 비에 젖어 버려져 있는 것을 보면 생명과는 아무 상관이 없고 단지 어떤 동물의 외형만 딴 헝겊을 둘러쓰고 있는 솜 따위임에도 마음이 간다. 길에서 유기견을 맞닥뜨린 것처럼 그 커다란 솜털뭉치에 마음을 두고 길을 지난다.
서울환경영화제 개막작으로 만난 옴니버스 영화 <미안해, 고마워>는 반려동물에 대한 이야기면서 어떤 소외와 그늘을 들여다보게 해주는 영화다. 반려동물인 그들로 인해 성장하고 지난 길을 돌아보고 그들과 눈을 맞추고 껴안는 이야기를 듣다 보면, 세상을 어떠한 이해로 살아야하는 지 생각해 보게 된다. 네개의 에피소드 중 박흥식 감독이 연출한 <내 동생>은 조그만 강아지를 의인화한다. 6살의 보은에게는 아끼고 사랑하는 여동생 보리가 있다. 보은이에게 귀여운 여동생인 보리는 어른들 눈에는 사실 하얗고 어린 강아지일 뿐이다. 보은을 보고 형이란 말밖에 하지 못하는 철없는 여동생 보리(보리가 강아지라서 멍멍거리는 소리를 보은이는 형 형으로 듣는다)를 아끼는 보은은 결국 보리와의 아쉬운 이별을 만난다. 보은이와 보리가 만드는 추억에 울고 웃다보면 사람과 강아지를 오가는 보리에게 깊은 여운이 남는다.
헝겊 쪼가리 인형에게도, 꽃에게도, 강아지에게도 마음을 쓰고 주었던 어린 시절이 사람, 국가, 사회, 집단. 가족, 단위의 협소한 애정으로 바뀌어 가는 게 어쩌면 자연스러운 이기이겠지만 어느 날 꽃이 다시 좋고 바뀌는 계절을 즐기고 거리를 지나는 길고양이에게 연민을 느끼다 보면 조금씩 내가 지키고 싶은 것의 범위가 늘어날 때가 있다. 임순례 감독의 <고양이 키스>를 보면 가족적 이기에만 집중하는 가부장적인 아버지가 그 가족에 대한 이기 때문에 결국은 길고양이에 작은 관심을 가지고 그 지키고 싶어하는 범위가 커지는 것을 보여준다. 강아지 보리의 추억을 잃어가는 것도 자연스럽지만 그러한 이기심에 매어 사는 습관이 젖어 살다가도 내가 견디기 위해 주위에 다른 사소한 것들을 사랑하게 되고 지키고 싶은 새로운 것들이 생기는 것도 당연하다. 그리고 그 작지만 커질 수밖에 없는 우리와 같이 사는 모든 생명들에 대한 애정을 느끼게 해 줬던 감정들이 <미안해, 고마워>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