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이스
[초이스]퍼플맨
유진영, 류진호, 박성호, 김탁훈, 2010
한국 사회에서 제대로 된(?) 반공 교육을 받아온 사람이라면 아마도 이런 상상을 해봤을지도 모르겠다. 태극기에 그려진 태극 문양 중 북한은 붉은 색을, 남한은 파란색을 의미하고 있고 그 경계에는 휴전선이 그려진 것이라는 요상한 믿음 말이다. 그래서 음양의 조화를 따지는 태극은 소위 조국의 통일이라는 우리의 소원을 소박하게나마 표현하고 있다고 그냥 맘대로 결정해버리고 믿어 버리는 마는 상상. 아 이 얼마나 공고한 훈육의 시스템인가?
<퍼플맨>은 바로 반공 이데올로기의 상상적 태극 문양에서 “빨간색도 파란색도 아닌” 보라돌이, 즉 한국 사회에서 순수한 타자가 되어 버린 탈북자 ‘김혁’씨의 실제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다큐멘터리 애니메이션이다. 하지만 <퍼플맨>에는 사람얼굴의 탈을 쓴 돼지도 등장하지 않고, 따발총으로 무장한 늑대들도 등장하지 않는다. 단지 배고픔 때문에 목숨을 걸고 북한을 탈출한 한 사람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가 도착한 곳도 자유민주주의의 나라 대한민국이 아니라 삶은 계란이 풍족한 ‘천국’, 동네의 한 기사식당 정도다. 여기에는 그 어떤 이념의 문젯거리들도 존재하지 않고, 우리가 자칫 재단해버릴 수도 있는 북한의 거대한 인권문제도 드러나지 않는다.
오히려 <퍼플맨>은 소박한 연극적인 무대 세트를 설치해 두고, 한 탈북자가 들려주는 삶의 이야기를 모노드라마처럼 전개해 나간다. 실제 김혁씨가 겪었던 양손의 상처 ― 하나는 북한의 교화소에서 바늘을 만들어 팔려고 했다가 고문으로 입은 상처,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한국의 공장에서 입은 상처 ― 는 그가 이야기 하는 상이한 이념적 공간에서 동일하게 일어난 삶의 이야기라는 그의 관조가 스며들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한국 사회에서 보라색의 타자가 되어 버린 이유는 뭘까?
이렇게 이야기를 해보자. 1945년을 전후로 하는 해방공간으로부터 약 60여년간 한국 사회의 가장 큰 이념적 타자화는 무엇이었을까? 그렇다. 북한이다. 그런데 한 가지 주목할 사실은, 한국 사회에서 이 모든 과정이 ‘반공이데올로기’라는 이념으로 공식화되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구체적인 타자화의 진행은 한반도에서 물리적으로 북한이라는 공간에만 한정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우리’ 사회는 지난 60여 년간 이념적 타자들을 물질적 경계 또는 국가적 경계 지역 너머로 한정 시켜 왔던 것이다. 제주가 그랬고, 지리산이 그랬으며, 광주가 그러하였다. 만약 이런 이념적 타자들이 한국이라는 국가적 경계 내부에 있다면 그것은 말 그대로 태극문양의 위쪽에 있는 자들이라는 공간적 구분의 잣대를 대고 ‘빨간색’으로 재단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념의 물리적 공간을 뛰어넘은 ‘김혁’을 바라보게 되는 한국 사회는 익숙치 않은 대상, 즉 언캐니를 마주치게 된 셈이 된다. 한국 사회가 탈북자를 북한의 인권문제로 접근하면서 은근히 이념적 대리자로 둔갑시켜 정치적으로 내면화 하고 있는 것은 바로 그 고질적인 타자화에 대한 익숙함 때문이다. 그러나 경계를 뛰어넘고 오가는 자들은 경계짓기에 익숙한 자들에게 정박지(碇泊地)를 제공하지 않는 유령과 같은 존재다. 어쩌면 탈북자 ‘김혁’의 좌표는 한국 사회가 만들어 버린 여러 공간의 타자들에게 이를 극복하고자 하는 작은 시작점이 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말하자면 <퍼플맨>에는 이념이라는 권력의 국가적, 물리적 경계를 인간 내면의 투쟁전선으로 옮겨 담은 푸코의 기획이 포함되어 있는 셈이다. 이제 `퍼플맨` 그 개인에게 남겨진 인정투쟁은 아마도 이념의 권력에 포획되지 않은 자신의 부분이 어디인지를 확인해야 하는 만만치 않은 작업이 될 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