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이스
[초이스]잔인한 계절
박배일, 2010
“좋은 구도는 없다. 그러나 나쁜 구도는 있다. 나쁜 구도는 작위적인 것이다.” 영화 초반에 카메라는 부산의 어느 도로 위에 박혀있는 상기 문구를 오랫동안 응시한다. 아마도 그것은 <잔인한 계절>을 연출한 박배일 감독 역시 영화를 만드는 태도에 있어 위의 문구에 동의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러나 바로 이 지점에서 나는 의문을 갖는다. 작위적인 것을 배제하겠다는 감독의 의지와 이 영화가 선택한 연출 스타일의 관계. 두 요소는 무리없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가?
감독에 의하면 이 영화는 열악한 노동환경을 개선할 수 있게 도와달라는 환경미화 노동자들의 요청에 의해 시작되었다. 이들이 상징적으로 내건 “샤워할 수 있게 해달라”는 요구에는, 탈의실과 샤워시설 등 기본적인 노동 환경조차 보장받지 못하고 각종 오염물질과 세균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어 있는 환경미화 노동자들의 열악한 현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러한 환경미화 노동자들의 노동환경 개선에 도움을 주고 이들의 삶을 휴머니즘적인 관점에서 어루만지고 싶다는 것이 작품을 만든 감독의 소망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이 영화가 이들의 삶에 깊이 있게 접근하기에는 주어진 시간이 너무 짧았다는 것이다. 촛불시위가 한창이던 때 카메라는 집회장면을 담기위해 거리로 달려가지만 경찰의 저지로 집회는 흐지부지된다. 결국 집회장면을 화면에 담지 못한 감독은 촛불집회 장면 대신 촛불시위와 열흘 간격으로 벌어진 거리 축구응원을 찍은 뒤에 노동자들의 육성과 축구 응원 화면을 교묘하게 편집하는 방식으로 영화를 완성해 나간다. 월드컵 현장에서 울려 퍼졌던 “대한민국!!” 구호가 촛불집회 화면 위에 덮이고, 시위현장에서 들려오는 사운드는 붉은 악마들의 응원 이미지에 입혀진다. 이렇게 상이한 시간과 공간에서 벌어진 사건들의 사운드와 이미지를 오버랩하는 영화의 연출전략은 꽤나 경쾌하고 재기발랄하며 경제적인 영화 만들기의 사례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편집은 눈치 빠른 관객에게는 감독이 자신이 촬영하는 대상들을 속속들이 이해하고 공감할 만큼 충분한 시간을 갖지 못했구나, 라는 점을 쉽게 간파하게 한다.
이 영화는 무척 매끄럽고 흥미롭지만 영화가 다 끝날 때까지도 관공서에서 노동자들을 직접 고용하는 대신 업체에 하청을 주어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이토록 열악한 노동환경에 방치하는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주지 않는다. 이에 대해 감독은 자신의 일차적 관심은 “환경미화 노동자들의 삶, 인간적인 면”에 있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들의 삶을 좀 더 인간적인 눈으로 깊이 있게 접근하기 위해서라도 그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드는 구조에 대한 탐구는 반드시 있어야 했다. 결과상으로 화면에 직접 삽입되지는 않더라도 비정규직 하청 노동자들을 고용하는 관공서의 입장을 듣고 그 허실을 따져보는 과정은 반드시 필요했다는 것이다. 설령 최종 버전에서 편집 될지라도, 사안에 대한 감독의 이해와 입장이 분명해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삶에 대한 깊이 있는 관찰과 휴머니즘적 시선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감독은 이 기본적인 절차인 구청 측과의 인터뷰를 하지 않았다. 나는 바로 이 지점이 영화의 독특한 매력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온전히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라고 본다. 애초 영화를 시작한 동기가 지나치게 약화된 영화. 어쩌면 그것은 감독이 다루는 대상에 대한 관심보다 감독 본인의 ‘작품’에 대한 열망이 지나치게 컸기 때문은 아닐까? 영화 서두에 감독이 인용한 “나쁜 구도는 작위적인 것”이라는 언명이 어쩌면 자신을 향해 부메랑처럼 돌아올 수도 있다는 불길한 예감.
영화 창작자들이라면 누구나 독창적인 스타일에 대한 욕심이 있고 실제로 작품 속에서 자신의 스타일을 다양하게 실험해보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스타일이란 결국 대상과 최선의 관계맺는 방식을 선택해가는 과정 아닌가? 그렇다면 감독이 이 영화에서 진정, 스스로 납득할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했는지, 다시 한 번 묻고 싶어진다. (말이 자꾸만 꼬이는 느낌을 받는다. 분명히 나는 이 영화를 흥미롭게 보았다. 그러나 영화를 보면서 느꼈던 약간의 이물감에 대해 질문하려던 것이 마치 이 영화 전체를 무척 안 좋게 본 듯한 느낌을 주는듯하다. 독자 여러분의 지혜로운 읽기를 부탁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