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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이스]숨

함경록, 2009

[초이스]숨 대표 이미지

광주의 한 청각장애인 학교에서 벌어진 아동 성폭력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 <도가니>가 관객의 공분을 모으며 흥행가도를 달리고 있다. 영화의 소재가 된 실제 사건에 대한 재조사와 아동 성폭력 범죄의 공소시효 폐지를 촉구하는 움직임도 일고 있다니 한 영화의 사회적 영향력이란 참 대단하기도 하다. 

<도가니>에 앞서 장애인 성폭력 사건을 소재로 하는 또 한 편의 영화가 개봉되었다. 바로 함경록 감독의 첫 장편영화 <숨>이다. 지난 9월 1일 개봉한 <숨>은 전북 김제의 한 장애인 시설에서 벌어졌던 장애여성 성폭력 사건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 사건으로 시설의 대표와 그 아내인 시설 원장이 실형을 선고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영화는 실제 사건을 충실히 재현하여 사회적 공분을 일으키려 하기보다는 주인공인 장애여성의 소소한 일상과 사랑, 그리고 그것이 예기치 않은 방향으로 주인공을 떠밀어 가는 과정을 통해 누구에게나 평범한 삶을 꿈꿀 권리가 있음을 상기시키고자 하는 듯하다. 

영화의 내용은 이렇다. 어려서부터 장애인 시설에서 자라 성인이 된 주인공 수희는 시설에서 함께 생활하는 민수와 사랑하는 사이이다. 하지만 어느 날 수희의 임신 사실이 드러나면서 그녀를 둘러싼 모든 것이 변하고 만다.

영화 속 시설 원장과 그 가족들은 각종 비리를 저지르며 수희를 비롯한 원생들을 자신들의 사욕을 충족시키는 수단으로 삼고 있는 듯 보인다. 실화를 모티브로 한다는 설명이 없더라도 이미 많은 뉴스를 통해 우리는 그런 사실을 간접 체험했다. 그런데 수희의 임신 사실이 밝혀진 뒤 나타난 인권단체가 수희를 성폭력 피해여성 쉼터로 데려가 ‘보호’하면서부터 영화는 조금 낯선 길을 간다. 그들은 모두 수희에게 친절하게 대하지만 왠지 모르게 수희는 불편하고 괴로워하는 것 같다. 과연 무엇이 문제일까? 

혼란스럽긴 하지만 영화 <숨>의 가장 큰 미덕은 바로 이 부분에 있는 것 같다. 주인공 수희를 묘사함에 있어 ‘장애’여성이 아닌 장애‘여성’으로 바라본다는 것. 전자의 경우였다면 수희는 아마도 원장 일가의 비리와 착취 행위에 의한 가련한 피해자로 묘사되었을 것이고 영화는 쉼터에서 평온을 되찾은 수희의 환한 얼굴로 마무리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숨>은 그런 뻔한 길을 택하지 않았다. 수희는 연인과 헤어져 일방적으로 거처를 옮기는 상황을 원치 않았고, 쉼터에서 ‘장애인’이기에 특별하게 대우받는 것이 불편했다. 누군가는 그녀를 이용했고 누군가는 그녀를 도와줬지만, 결국 어느 누구도 그녀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는 귀 기울이지 않았다. 영화에서 수희를 연기한 실제 장애인 배우 박지원의, 집중해서 잘 듣지 않으면 미묘한 차이를 잘 알아차리기 힘든 그 낮고 거친 숨소리는, 우리에게 제발 귀를 기울이라고, 더 크게 외치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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