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이스
[초이스]에브리 차일드
유진 페도렌코, 1979
무던히도 비를 뿌려대던 여름도 9월 8일 풀잎에 이슬이 맺히는 ‘백로’를 기점으로 가을로 접어들면서 올해는 일찍 추석이 찾아 왔다. 긴 여름 탓에 시원한 극장가는 대목을 이루었고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애니메이션이 다수 걸렸다. 다행히 <마당을 나온 암탉>은 오랜만에 좋은 이야기와 따뜻하고 호감 가는 그림, 유려한 움직임과 구수한 사투리 재담 등 여러 가지 구색들이 잘 갖추어져 어린이 관객과 동행한 가족들에게까지 호평과 감동을 불러냈고, 9월 4일 관객 200만 돌파에 여느 해보다 빨리 찾아온 추석연휴 특수까지 기대된다. 덕분에 이어지는 가을은 애니메이션 판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 넣는 호기가 되고 있다.
이번 추석은 긴 장마와 이른 절기 탓에 곡물과 과일나무는 아직 만족스럽지 못한 곡식과 과실을 거두고 있지만 그래도 가을 명절인 추석에 가장 신나는 일은 사랑이 담긴 풍성한 선물을 가득 담고 고향을 찾는 부모님과 자식, 할머니, 할아버지, 손자 손녀들과 함께하는 가족들 간의 ‘만남’일 것이다. 고향을 멀리 두고 직장과 교육열로 수도권에 인구의 절반이상이 이동해서 살고 있는 현대이지만, 가족들에게는 물질적 수확이상의 마음과 정신의 풍요로움이 더 간절하고 중요하기 때문에 명절에는 대부분 가정들이 고향을 찾아 대이동을 하거나 또는 서울로 역귀성을 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또 다른 한가위 세태로 해외여행을 떠나는 핵가족이 많이 생겨나고 있는데, 그 수가 많아져서 올해는 최대 인구인 50만 명이상이 추석연휴에 해외여행을 떠났다고 한다.
여하튼, 오랜 세월을 통해 고유한 전통과 풍습이 된 추석과 설날에는 많은 친지들이 모여 그동안의 안부와 기쁨을 묻고 나누며, 혹은 걱정과 슬픔을 서로 위안하기도 하면서 인간적인 온정과 혈연간의 고리를 확인한다.
그러나 이러한 현대의 물질적 풍요, 기계와 기술의 발달, 문명의 혜택으로 많은 우리나라사람들이 이를 통해 행복과 기쁨을 찾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결핍된 인간성과 극명화 된 개인주의로 소외된 가족과 버려지는 아이들이 줄어들지 않고 있다. 더구나 우리나라의 지나친 교육열과 인성문제, 경제적 원인으로 인한 가정 사건들이 끊이지 않고 보도되고 있다. 또한 최근 다문화가정이 늘고 있고 이로 인해 복잡한 문화와 풍습간의 충돌에 기인한 새로운 사회문제도 대두되기 시작하였다.
이번에 소개하고자 하는 애니메이션은 이러한 현대의 냉혈시스템에 갇혀 모럴 해저드해진 우리사회의 분절된 희노애락에 대한 에피소드들을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아기를 통해 사정없이 비틀고 더군다나 닭살 돋는 사람의 입소리로 만든 음향효과의 상상력을 감성적으로 덧대어 통렬함과 유머의 부조화를 극적인 플롯으로 절묘하게 풀어낸 블랙 코메디 작품 <에브리 차일드(Every child)>이다.
이야기는 갓난아기가 마을의 어느 바쁜 중역 간부의 집 앞에 나타나지만 아기를 원치 않는 여러 가지 상황으로 주변의 가정들을 옮겨 다니면서 전개된다. 아무리 귀여운 아기일지라도 틀에 박힌 단절된 사생활을 통해 지루한 행복을 지키려는 각 가정의 소시민들에게는 반갑지 않은 ‘짐’으로만 취급되는 메마른 일상에 대한 비판을 신란한 유머로 풍자한다.
이 작품은 버려진 아이들을 위한 영국의‘EveryChild(www.everychild.org.uk/)’라는 기구에서 캐나다 NFBC에 의뢰하여 만든 애니메이션으로 유엔 아동보호기구 ‘유니세프’의 아동 권리 선포를 기념하기 위한 초대회에서 상영되었다. 이 필름은 선포된 10가지 원칙, 이름하여 모든 아이들은 이름과 국적을 부여받는다는 점을 내포하고 있다. 이러한 제작 배경 때문에 제작자겸 시나리오 담당인 데렉 램(Derek Ramb)이 감독에 우선하여 크레딧을 장식한다.
여러 뛰어난 감독들이 그러하지만 유진 페도렌코(Eugene Fedorenko)는 이 작품을 통해 일찍이 드러난 창의적 발상의 품부로 보편적 일상에 의한 인륜적 해이함에 대해 날카롭지만 웃기게 표현하고 있다. 덕분에 1980년 아카데미 단편 애니메이션상 수상을 비롯하여 오타와, 바르나, 밀라노, 등 12개의 영화제에서 수상하는 영광도 가졌다.
일반적으로 웃기는 영화에 채플린을 논할 때 버스트 키튼도 동시에 언급되듯이 ‘버려진 귀여운 아기’에 대해‘버려진 귀여운 고양이’의 에피소드를 애니메이션으로 풀어 만든 코델 바커(Cordell Barker)의 1988년 작품 <돌아온 고양이(The Cat come Back)>는 왜곡된 거울에 비친 이미지와 같은 강한 혼돈의 기억으로 나란히 남는다. 이 작품은 뛰어난 연출과 편집, 훅업을 스토리에 녹이고, 인상적인 주제음악으로 쟈그레브 애니메이션영화제에서 유머상과 음악상을 수상하면서 평점에서도 ‘에버리 차일드’와 쌍벽을 이루게 되었다. 코델 바커는 2001년 또 한편의 아기를 테마로 한 태몽이야기 <이상한 침입자(Strange invader)>를 들고 나타났다. 그러나 여전히 빠른 호흡은 이전 작품에 이어 아쉽게도 옥에 티로 남는다.

오늘날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들은 명절과 방학기간에 가족단위로 영화관을 찾아 즐거움과 감동을 받으며 여가를 즐기고 있다. 올해도 변함없이 여름방학부터 추석까지 <마당을 나온 암탉>, <스머프>, <재스퍼>를 비롯해서 많은 애니메이션이 개봉 되었고, 앞으로도 <코쿠리코 언덕에서>, <체브라시카> 그리고 <아더 크리스마스> 등 많은 애니메이션영화들이 어린이와 가족들을 위해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가을의 수확만큼이나 큰 기쁨으로 찾아오는 자식농사와 연계하여, 이번에는 가족과 어린이들에게 추천할 재미있는 애니메이션을 찾아보면서 가까운 과거의 단편 몇 작품을 올려놓고 며칠간 고심을 하였다. 어린이 같은 순수함과 천진난만으로 어린이들을 위해 만든 코 회드만의 1977년 작품‘모래성’은 상상력이 돋보이지만, 현대의 세련된 특수효과에 익숙해진 어린이용으로는 그 완성도가 떨어져 몰입감이 덜하고, 개성적이고 독특한 전통기법인 핀스크린 기법으로 작품을 제작한 쟈크 두루앵의 1976년 ‘마음의 풍경’은 수상실적이 화려함에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무겁고 초현실적인 몽환으로 일반 관객들에게는 오히려 거부감마저 들게 한다. 더군다나 당시에는 획기적인 기법으로 개발되었지만, 짧은 유행처럼 지나가는 애니메이션 역사의 단편적이고 편중된 쟁점으로 기억되는 아픈 이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추석 명절인 이즈음에 어린이와 가족들을 염두에 두고 재미있고 상상력을 즐길 수 있는 여러 작품들을 추천목록에 올렸지만, 세태의 자조와 조롱의 해학으로 가득 찬 메시지를 기발하고 독특한 음향효과와 보편적이지만 신선한 에피소드들로, 어떻게 보면 어린이용인 것 같으면서 또 다른 한편으로는 어른용 같은‘부조화의 조화’라는 극과 극의 씨실과 날실을 교묘하게 엮어낸, 곱씹어 볼 만한 간단치 않은 가치를 던져주는 웃기게 슬픈 작품 <에브리 차일드>를 단절되어가는 현대의 우리 주위 핵가족들에게 특별히 추천한다.
웃고, 즐기고, 느끼시길...
(편집자주: 본 원고는 10월 원고로 9월에 받았으나 사정상 11월 초에 업데이트하게 되어 원고 내용과 다소 시기가 맞지 않는 점이 있습니다. 양해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