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이스
[초이스]빛을 향한 노스탤지어
파트리시오 구즈만, 2010
영화를 보고 난 뒤 보기 전의 기대를 완전히 배신하는 영화가 있다. 때때로 그 배신은 우연히 낯선 여정에 참여하면서 그 길목에서 황홀한 기분에 젖게 하기도 한다. 패트리시오 구스만의 2010년작 <빛을 향한 노스탤지어>는 그러한 영화였다. 게다가 이 영화는 우주와 인류와 한 나라의 정치적 역사를 과거라는 한 궤로 잇고 있으나 영화를 보며 체험한 그 신비로운 경험을 한 마디로 정리하기는 어렵다. 영화사 책 한 페이지에 제3세계 영화의 사례로 매번 등장하는 그의 <칠레 천투> 시리즈를 (보지도 못한 채) 그 이름의 무게만으로 보게 된 영화. 그래서 피노체트 독재정권에 관한 정치적 코멘트의 다큐멘터리일 거란 편견은 영화를 보고 난 뒤 묘한 배신감으로 일축됐다. 전주영화제 비디오룸에서 모국어도 아닌 영어 자막에 의지한 채 봐서일까 영화에서 다루었던 여러 레이어들 중에서도 사막의 노쇠한 어머니들과 그래픽한 이미지의 우주적 전경이 뒤섞여 머릿 속을 떠도는 영화.
칠레의 아타카마 사막은 영화의 주요한 무대이다. 구즈만이 어떠한 거주민도 없는 이 사막을 주목한 이유는 우주, 인류, 과거사라는 어울리지 않을 듯한 레이어들이 함께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 세 지층의 단면을 자르면 천문학적, 지질학적, 정치적 세 지층의 역사가 드러난다. 첫번째 레이어. 아타카마는 해수면보다 10,000 피트 높은, 지구상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사막이다. 한마디로 지구상에서 별을 관측하기 가장 좋은 곳으로 전 세계의 천문학자들이 함께 천체를 탐구한다. 즉, 우주의 역사가 관찰되어 지는 곳. 두번째 레이어. 아타카마 사막의 희박한 공기와 건조한 환경은 지층 속 선사시부터 남겨진 흔적과 콜럼버스 시대 이전 거주민들의 땅그림을 보존케 했다. 이는 곧 지질학을 연구하는 고고학자들이 모이게 했다. 그리고 마지막 레이어. 피노체트 독재 정권 시절 이곳엔 수천명의 정치범이 강제수용소에 끌려와 소리 소문없이 죽어갔고, 그 시체는 사막 곳곳에 흩어져 있다. 인간의 정치적 역사가 묻혀 있는 곳이다.
그런데 마지막 레이어의 주인공은 정치범의 시체가 아닌 죽은자들의 어머니들이다. 광활한 이 사막에서 손바닥만한 삽으로 자식의 유해를 찾으려는 어머니들은 노력은 한편으로는 눈물겨운 서글픈 광경이지만, 저 광활한 모래 사장에서 도대체 그들이 원하는 것을 찾아내기란 마치 낙타가 바늘 구멍에 들어가고자 하는 시도처럼 어처구니 없는 무력감을 들게 한다. '나는 천체 망원경이 하늘뿐만 아니라 우리 아이들을 찾을 수 있도록 지구 전체를 꿰뚫어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앞의 두 몽환적인 이미지들 사이에서 아들의 뼈조각이라도 찾으려는 어머니의 피어린 한탄은 절망어린 아타카마 사막을 들여다보게 한다. 이들 어머니들의 절규어린 모습이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한국의 현대사 속에 사라져간 아들의 죽음 이후 남겨진 한국의 어머니들이 떠오르기 때문이리라. 또한 이 사막에는 서구문명의 개척 아래 과거 원주민의 노동력을 착취한 역사가 서려있는 등, 아타카마 사막은 다층적인 역사들을 보존하고 있는 시체보관소이자 식자들에게 살아있는 박물관과 같은 곳이다.
이 세 인물군을 연결하는 주제는 아타카마의 파라날 천문대에 일하는 한 천문학자의 인터뷰에서 드러난다. '우리가 바라보고 연구하는 저 별은 저 먼 곳으로부터 온 과거의 빛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연구하는 것은 현재가 아닌 과거인 것이다 (...) 빅뱅 때 퍼져나간 칼슘이 모든 별에 함유되어 있다. 별의 크기나 속성을 재려면 칼슘을 측정하고 기록한다.' 구스만의 관심사 역시 과거로부터 현재를 발견하고자 하는 이들의 피땀어린 시도였을 것이다. 그것은 마치 영화를 보고 있는 이 과정 역시 영화가 만들어져가는 과거의 저 유물을 발견하는 듯한 시도와 같게 만든다. 이미 밝혀진 바와 같이 어머니들이 사막에서 찾고자 하는 유해 역시 천문학자들이 연구하는 별의 화학적 구성요소와 같은 칼슘으로 이루어진 것이고, 이 우주의 역사는 별과 인류의 근원로부터 칠레의 사회정치적 역사에 대한 탐구로 이어진다. 이처럼 매끄럽게 이어지는 통합은 이들 어머니를 떠올릴 때면 지나치게 탐미주의적인 방식이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구즈만이 이어놓은 이같은 링크는 우주와 인간을 에너지와 물질로, 천문학과 양자역학의 상관관계로 두고 탐구하는 현 시대에 어떠한 영화보다 설득력있는 동시에 신비롭게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