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이스
[초이스]코쿠리코 언덕에서
미야자키 고로, 2011
`지브리 작품의 발전인가, 아니면 퇴보인가?`
올 가을 국내 개봉한 지브리의 <코쿠리코 언덕에서>를 바라보면 대중적인 시선이다. 기존 지브리가 추구하던 작품의 방향과는 사뭇 달라 보였기 때문이다. 물론 미야자키 하야오의 아들이자 이번 작품의 감독인 미야자키 고로에 대한 기대감도 함께 녹아있다.
단적으로 말해 <코쿠리코 언덕에서>는 `지브리란 옷을 입은 다른 작품`처럼 보였다. 어딘가 낯설었다. 왜 그렇게 느꼈을까?
우선 판타지가 없었다. 지브리 작품이라 하면 모름지기 판타지요소가 어느 한 구석에라도 들어있기 마련이다. 과거 <추억은 방울방울>, <귀를 기울이면>도 현실을 기반으로 했지만 판타지를 군데군데 장치해 지브리의 강점을 잘 살려냈다. 하지만 <코쿠리코 언덕에서>엔 전혀 없었다.
세계관과 테마의 폭은 좁아졌다. 미지의 세상까지 다다르는 넓은 세계관, 그리고 그와 연결된 테마의 다층구조는 관객들을 지브리 작품 속으로 빠져들게 하는 큰 이유 중 하나다. 하지만 <코쿠리코 언덕에서>는 항구도시를 무대로 사랑이란 테마를 두 갈래로 낸 정도에서 머무른다. 이외에도 TV드라마를 보는 듯한 연출기법, 그동안 지브리 작품에서 보지 못한 조연들의 그림체 등 생소함을 많이 드러냈다.
이런 요인들로 관객의 평가도 양분됐다. `기존에 미치지 못해 실망했다`와 `기존과 달라 신선했다`인데, 전자의 의견이 우세하다. 그래서였을까? 흥행도 이전만 훨씬 못하다. 일본에선 관람객 300만 명을 겨우 넘겼다. 국내에선 개봉 2주 만에 10위권 밖으로 밀려나 한국 내 지브리 신화에 빨간불이 켜졌다. 이 정도면 지브리 작품의 퇴보 쪽에 무게를 실릴만하다.
하지만 달리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1990년대 중반부터 현재까지 지브리 사가 제작한 애니메이션에는 미야자키 하야오 한 사람의 색깔이 지배적이다. 즉 `지브리=미야자키 하야오`가 된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그 어떤 무엇이 나온다한들 미야자키 하야오스럽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런데 <코쿠리코 언덕에서>는 그렇지 않는 듯하다.
하야오의 판타지에 홀리기 전, 관객들은 다카하타 이사오의 극사실주의란 또 하나의 지브리도 동경하며 애찬했었다. 어쩌면 <코쿠리코 언덕에서>도 그런 시선에서 감상해야할지 모른다. 발전이냐, 퇴보냐가 아니라 줄기를 달리하는 진화된 작품으로! 이것이야말로 관객들이 진정 기대하는 지브리의 미래가 아닐까?
올 가을 국내 개봉한 지브리의 <코쿠리코 언덕에서>를 바라보면 대중적인 시선이다. 기존 지브리가 추구하던 작품의 방향과는 사뭇 달라 보였기 때문이다. 물론 미야자키 하야오의 아들이자 이번 작품의 감독인 미야자키 고로에 대한 기대감도 함께 녹아있다.
단적으로 말해 <코쿠리코 언덕에서>는 `지브리란 옷을 입은 다른 작품`처럼 보였다. 어딘가 낯설었다. 왜 그렇게 느꼈을까?
우선 판타지가 없었다. 지브리 작품이라 하면 모름지기 판타지요소가 어느 한 구석에라도 들어있기 마련이다. 과거 <추억은 방울방울>, <귀를 기울이면>도 현실을 기반으로 했지만 판타지를 군데군데 장치해 지브리의 강점을 잘 살려냈다. 하지만 <코쿠리코 언덕에서>엔 전혀 없었다.
세계관과 테마의 폭은 좁아졌다. 미지의 세상까지 다다르는 넓은 세계관, 그리고 그와 연결된 테마의 다층구조는 관객들을 지브리 작품 속으로 빠져들게 하는 큰 이유 중 하나다. 하지만 <코쿠리코 언덕에서>는 항구도시를 무대로 사랑이란 테마를 두 갈래로 낸 정도에서 머무른다. 이외에도 TV드라마를 보는 듯한 연출기법, 그동안 지브리 작품에서 보지 못한 조연들의 그림체 등 생소함을 많이 드러냈다.
이런 요인들로 관객의 평가도 양분됐다. `기존에 미치지 못해 실망했다`와 `기존과 달라 신선했다`인데, 전자의 의견이 우세하다. 그래서였을까? 흥행도 이전만 훨씬 못하다. 일본에선 관람객 300만 명을 겨우 넘겼다. 국내에선 개봉 2주 만에 10위권 밖으로 밀려나 한국 내 지브리 신화에 빨간불이 켜졌다. 이 정도면 지브리 작품의 퇴보 쪽에 무게를 실릴만하다.
하지만 달리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1990년대 중반부터 현재까지 지브리 사가 제작한 애니메이션에는 미야자키 하야오 한 사람의 색깔이 지배적이다. 즉 `지브리=미야자키 하야오`가 된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그 어떤 무엇이 나온다한들 미야자키 하야오스럽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런데 <코쿠리코 언덕에서>는 그렇지 않는 듯하다.
하야오의 판타지에 홀리기 전, 관객들은 다카하타 이사오의 극사실주의란 또 하나의 지브리도 동경하며 애찬했었다. 어쩌면 <코쿠리코 언덕에서>도 그런 시선에서 감상해야할지 모른다. 발전이냐, 퇴보냐가 아니라 줄기를 달리하는 진화된 작품으로! 이것이야말로 관객들이 진정 기대하는 지브리의 미래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