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이스
[초이스]온 유어 마크
미야자키 하야오, 1995
2011년 초 일본 동쪽 해저지진으로 시작된 북태평양의 쓰나미는 일본열도를 삼켜버렸다. 그로부터 동쪽해안에 집중되어 있던 일본의 민영화된 원자력 발전소들은 초대형 방사능 유출이라는 인류사의 최대재앙을 현실로 보여주었다. 여러 편의 SF영화와 미래를 예견하는 헐리우드 영화에서도 방사능오염으로 인한 돌연변이를 마치 곧 다가올 현실처럼 보여주었는데, 그렇게 어두운 상상이 생각만으로 끝나지 않을 듯한 불길한 예감이 더욱 강해지고 있다. 그리고는 이미 15년전에 개봉되었던 한 단편애니메이션이 불현 듯 스쳐지나간다.
1995년 7월, 일본 지브리 스튜디오의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마치 자신의 후계자를 애니메이션계에 자랑스럽게 발표하는 듯, 지브리의 연작인 <귀를 기울이며>를 자신이 직접 감독하지 않고 새로운 감독에게 맡겼음을 공개했다. 천재 애니메이터로 불리우던 40대 젊은 감독 콘도 요시후미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디지털환경으로 달려나가는 일본과 세계에 가장 아날로그적인 10대의 풋풋한 첫사랑을 <귀를 기울이며>라는 작품으로 선보인다. 이 작품은 도서대출카드를 수기로 직접 작성하던 아날로그 세대가 서로 새 책을 가장 먼저 대출하던 인연으로 만나 첫사랑을 만들어가는 이야기로, 관객들의 순수한 감성을 자극했던 작품이다.
이렇게 자신의 후계자로 주목된 콘도 요시후미의 작품이 개봉되던 날, 그 작품에 앞선 오프닝 애니메이션이 함께 공개되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직접 감독한 단편애니메이션 <온 유어 마크, On Your Mark>, 차게 & 아스카(Chage & Aska) 라는 그룹이 1994년 8월 3일 발표한 노래 ‘온 유어 마크’에 직접 뮤직비디오로 애니메이션을 창작한 것이다. 이 노래에 영상을 만든 미야자키 하야오는 ‘On Your Mark’라는 관용표현처럼 ‘본래 있던 제자리로’란 의미로 스토리텔링을 완성해냈다.
세계가 핵 전쟁 후 방사능오염으로 야외에서 살 수 없게 되어버린 지구의 어느 날, 사람들은 모두 철저하게 방사능으로부터 보호되는 지하도시에 모여 살게 된다. 그리고 외부로 통하는 모든 통로는 통제되어 있고, 커다란 유리로 보호된 지하도시는 높은 고가도로와 마천루로 나름대로의 삶을 이어가고 있다.
언제나처럼, 자신의 임무에 충실하던 두 경찰관은 급히 출동명령을 받게 된다. 지하도시의 하늘을 날아, 경찰특공대는 사이비종교단체의 집회를 급습하게 되고, 그 장소에서 그 종교단체에 억류되어 있던 한 돌연변이 소녀를 발견하게 된다. 커다란 날개가 등에 돋아있는 하늘을 나는 소녀, 그 소녀는 경찰특공대의 방사능 연구소로 격리 수용되고, 그 날부터 두 경찰관의 고민은 시작된다. 그 소녀가 살던 곳으로 편하게 돌려보내 주는 것이 그 소녀에게 더 나은 삶이라는 결정에 이르자, 두 경찰관은 그 소녀의 탈출을 모의하게 된다. 몰래 연구소에 진입한 두 경찰관은 연구원들을 마취가스로 제압하고, 실험실에 갇혀있던 돌연변이 소녀를 구출하여 출입이 통제된 지하도로를 따라 그 소녀를 외부세계로 탈출시킨다. 달리는 차에서 하늘에 날아오르는 소녀를 향해 환하게 웃는 두 경찰관의 미소로 영상은 마무리되고, 하늘을 나는 소녀의 시선으로 지평선 넘어 푸른 지구의 하늘은 언제나처럼 맑고 희망차게 보인다.
방사능오염이라는 불특정미래의 불안한 기우, 그리고 그러한 환경오염으로 발생한 돌연변이 소녀의 운명, 그러나, 본래 있던 제자리로 돌려보내겠다는 두 경찰관의 순수한 마음은 방사능오염이라는 사람들의 불안도 잠재우고 만다. 다만 더 푸르고 밝게 보이는 지구의 희망이 애니메이션만이 표현해 낼 수 있는 환타지 영상으로 구현된다. <온 유어 마크>는 그래서 우리에게 환경의 소중함과 인류의 책임을 다시 한번 묻는다. 날개가 돋아버려 하늘을 나는 소녀의 운명은 소녀 자신의 잘못이 아닌 우리 모두의 현실이며, 그러한 미래의 현실을 함께 고민하고 항상 제자리로 환원시키는 환경의 회복력에 우리 모두 경외심을 가져야 할 때임을 이 작품은 매번 확인시킨다.
다만, 그러한 고민과 반성이 일본애니메이션으로부터 제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일본열도가 보여주는 방사능에 대한 무책임은 답답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