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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이스]어느 홈리스의 콜라쥬

알레그잔데르 나나우, 2010

[초이스]어느 홈리스의 콜라쥬 대표 이미지

올 여름, DMZ 다큐멘터리 영화제에서 상영될 영화들 몇 편의 프로그램 노트를 쓰던 중이었다. ‘정치적인 올바름’에 사로잡힌, 그 고민의 절박함은 이해할만 하나 종종 나르시시즘적이고 구구절절 설명조인 영화들에 지쳐갈 즈음, <어느 홈리스의 콜라쥬>()라는, 제목부터 어쩐지 깃털처럼 가벼운 영화를 보게 되었다. 지적인 영화적 기법이나 관념의 개입 없이도, 노골적인 정치적 의제 없이도, 심오한 문제의식 없이도, 그저 한 인간의 중얼거림과 의미 없는 행동과 담배연기와 주름진 표정만으로, 그러니까 인간 그 자체의 생동감만으로 역사를 말하고, 문화를 말하고 삶을 말할 수 있을까. 이 다큐의 주인공 Ion B씨는 가장 단순하고 꾸밈없는 모습으로 그걸 증명해내고 있었다. 말하자면 카메라는 그저 그를 찍기만 해도 될 터였다. 

루마니아의 부카레스트, 어느 낡은 아파트 촌에서 오랜 시간동안 노숙을 하며 살아온 한 남자가 있다. 그의 이름은 Ion B(62세). 동네 주민들은 그가 어디서 왔고, 무엇을 하고 사는지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하나같이 그가 시간을 축내는 게으름뱅이라고 핀잔을 준다. 이 허름한 일상에 떳떳하게 만족하며 늘 여유로워 보이는 자는 오직 Ion B씨뿐이다. 그저 어느 노숙인의 안빈낙도하는 삶을 관찰하는 영화라고 생각하는 찰나, 영화는 이 남자에게 숨겨진 놀라운 재능을 알려준다. 쓰레기더미 속에서, 그 쓰레기들을 끌어안고 이 남자가 웃을 수 있는 이유, 그것은 이 남자가 그 쓰레기들로 예술을 하는 아티스트이기 때문이다. 한 때 영화감독을 꿈꿨다는 그는 70년대부터 20년간 쓰레기더미에서 수집한 잡지들, 때때로 사 모은 잡지들의 사진과 그림들로 콜라주 작업을 해오고 있었다. 물론 그는 딱히 자신이 아티스트라는 자의식을 가지고 살아온 것 같지 않고, 2008년 우연히 그의 작품이 갤러리 오너의 눈에 띄지 않았다면 여전히 재야의 고수로 묻혀 졌을 것이다. 놀랍게도 그가 거리에 살며 70년대부터 20년간 꾸준히 작업한 결과물은 1000편이 넘는데, 이 시기는 차우세스쿠 정권의 독재가 휩쓸던 시절, 그런 예술이 철저히 금지되던 시기다. 어느 모로 보나 정치적으로 의식화된 인물이 아닌 그가 할리우드의 배우들과 차우세스쿠, 그리고 전 세계 정치인들의 사진 조각들을 섞어서 놀라울 만큼 정치적이며 기발하게 유머러스한 세계들을 콜라주 할 때, 우리는 차우세스쿠 정권의 폭압이 평범한 시민의 무의식에 미친 영향을 보게 된다. 

첫 전시회를 계기로, Ion B씨는 독창적인 아티스트로 상업 미술평단에 이름을 올리게 된다. 오랜 노숙생활로 몸에 배인 자유로움과 가볍고 사소한 유머를 심각하고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평단과 관객의 태도, 이 남자의 자유분방함을 어쨌든 시스템 안에 안착시키려는 갤러리 오너의 비즈니스적인 태도 등 미술계의 중층적인 얼굴들도 스쳐간다. 그러나 가장 흥미로운 건 단 한 번도 정규교육을 받은 적 없는 그가 자신이 터득한 방식으로 작품을 만들어내는 과정을 설명하고 보여줄 때다. 제도 밖에서 제도의 중심인물들을 종이인형처럼 오려 붙여 매번 기발한 세계를 창조해가는 그 과정은 매우 정교하고 창의적이며 재미있다. 누군가 그의 작품을 두고 앤디 워홀의 이름을 꺼내며 ‘팝 아트’라고 부르자, 그는 순진한 눈망울로 ‘팝 아트’가 뭐냐고 진지하게 되묻는다. 혹은 누군가 그의 작품 앞에서 유창한 영어로 온갖 설을 풀자, 그는 반짝이는 눈으로, 그러나 괘념치 않다는 표정을 지은 다음, 밖으로 나와 신나게 자전거를 탄다. 그 역시 시간이 흘러 상업적 마케팅 속에서 미술계 주류 인사가 되면, 지금의 티 없는 표정을 기억할 수 있을까. 어쨌든 이 순간만큼은 낙천적이고 생기 가득하며, 세상사에는 더없이 무지하지만 작품 안에서 그야말로 세상을 만들고 놀 줄 아는 이 남자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진흙 속의 장난꾸러기 천재가 비로소 갤러리 오너를, 이 영화의 감독을 만난 게 다행이 아니라, 그들이 이 남자를, 이 아름다운 피사체를 만난 게 더없는 행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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