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이스
[초이스]울음
황선숙, 2009
아이는 서럽게 울지만 그 울음을 둘러싼 어른들의 대화는 무심하다. 정신과 의사와 그 아이의 엄마가 아이에 대해 면담하는 현장의 사운드를 그대로 들려주고 있는 이 영화는 다소 음울하고 무거운 분위기로 시작된다. 마치 무의식의 세계라도 드러내고 있는 듯 몽환적 이미지들이 몽타주 되면서, 그 위로 옛날 기록필름 같은 자막이 상담의 대화 내용을 보여준다. 그런데 왠지 그런 식의 대화로는 아이의 울음의 원인을 알 수 없을 것만 같다. 상담이 그런 식으로 무심히(또는 투박하게) 진행된다면 아이는 아마 다음에 또 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묘하게도 이 영화를 지켜보고 있는 우리는 왠지 그 울음의 이유를 알 것만 같다.
영화 후반부의 파편적 이미지들의 중첩은 우리들 유년기의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는 듯하다. 게다가 면담 과정에서 드러나는 엄마와 어린 딸의 관계는 우리들의 어린 시절을 환기시키기에 충분하다. 우리의 어린 시절은 어떠했나, 그리고 지금은 어떠한가? 그렇게 이 영화는 다분히 자아를 찾아가는 여행이기도 한 것이다. 그 여행을 통해 자기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말하자면 이 영화는 사운드와 미술을 이용한 임상치료를 시도하고 있는 셈이다. 과거에 아이였던 감독 자신과 우리 모두를 위해서 말이다.
그런데 이 영화에 등장하는 의사의 태도에 대해서는 보는 이에 따라 의견이 분분하다. 필자 역시 처음에는 그 위압적인 태도에 거부감이 들었으며, 아이의 울음을 유발시키는 폭력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시 한 번 더 찬찬히 보니 거기서 울음은 일종의 카타르시스였다.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의사의 말은 이것이다. “엄마 붙들고 이렇게 울어본 적이 있나?” 엄마의 대답은 “아니요.”다. 의사는 다시 말한다. “이제 엄마한테 하고 싶은 말 다해. 내가 엄마한테 가르쳐줄테니까.” 길에서 엄마를 만나도 모른 척했다던 아이가 실컷 울고 나서는 한층 명랑해진 목소리로 “할아버지, 안녕히 계세요.”하며 “됐죠?”하고 나간다.
이제 엄마 품안에서 마음껏 울어도 된다는 기대감 때문일까? 이제 아이는 친구들과도 잘 지낼 수 있을까? 그건 아직 알 수 없다. 하지만, 자신의 고통과 아픔을 온전히 털어놓을 수 있는 상대가 있을 때, 좀 더 편안한 마음을 가질 수는 있을 것이다. 7살짜리 아이에게는 더욱 그러할 것이다. 맘껏 울고 맘껏 해방감을 만끽하는 것도 좋으리라. 어쩌면 우리에겐 곧 거대한 울음의 시기가 다가올 지도 모른다. 그때 그 거대한 울음이 거대한 해방이 될 수 있도록, 지금 우리에겐 불안과 공포를 견디는 용기가 필요하다. 울어도 좋다, 견딜 수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