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초이스]피로

김동명, 2011

[초이스]피로 대표 이미지

아영(정아영)은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다. 건설사의 하급업체 관리자인 남편 두성(이두성)은 몇 달째 집에 월급을 가져오지 못했다. 아영이 최소한의 생활비라도 벌기 위해 아파트 세탁소 아르바이트 일을 시작하는 동안 두성은 직장마저 잃는다. 아영의 힐난에도 불구하고 두성은 집에 쳐박혀 지낸다. 얼마 후, 세탁물에서 돈뭉치를 발견한 아영은 주인에게 돌려주지 않고 집으로 가져온다. 아영이 식탁 위에 올려둔 돈뭉치를 집어들고서야 두성은 집을 나선다. 이런 짧은 줄거리 요약만으론 <피로>를 설명하기 어렵다. 경제적 곤궁에 직면한 부부의 갈등을 주제라고 오해할지도 모른다. <피로>가 끈질기게 관찰하는 것은 두 남녀에게 주어진 혹독한 삶의 조건 보다 그들을 지배하는 무기력 그 자체의 양상이다. 아영의 권태를 보자. 갓난 아이에게 젖을 물리고, 수유가 끝나면 샤워를 하고, TV를 보다 잠이 들고, 원치 않는 섹스에 응해야 하고. 아영에게 주어진 하루의 전부다. 그녀는 웃지도 울지도 않는다. 말도 하지 않는다. 통각하지 못하는 건 두성도 마찬가지다. 아영이 권태에 사로잡혔다면, 두성은 태만에 포위되어 있다. 아영의 권태와 두성의 태만이 만나 침묵만이 존재하는 무기력의 자장을 만들어낸다.

무거운 침묵의 공기가 지배하는 <피로>는 두 남녀의 지루하고 음산한 공생기다. 그들이 유전자처럼 지닌 무기력을 들춰보이기 위해 <피로>는 여름이라는 시간과 아파트라는 공간을 효과적으로 활용한다. 아이가 울고, 매미가 울고, 세탁기가 울고, 티비가 울고, 샤워기가 울고, 비행기가 울고, 뒤질세라 하늘이 울어도, 그들은 울지 못한다. 지친 울음들로 가득하지만, 어떤 울음도 <피로>의 두 남녀를 깨우지 못한다. 아영에게 두성은 더이상 보이지 않는 유령이고, 아영에게 두성은 더이상 내줄 것 없는 숙주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아영이 칼을 휘두르지만 두성이 좀처럼 죽지 않을 때, 두성은 살아있는 유령이다. 아영은 유령의 죽음을 상상조차 못한다. 두성이 아이처럼 아영의 젖가슴을 빨지만 쾌감을 들이키진 못할 때, 아영은 말라 죽어가는 숙주다. 자신을 내팽개 친 결과인 두성의 태만과, 자신 곁에 누군가가 없음을 확인하는 아영의 권태를 아무 감정없이 지켜보기란 쉽지 않다. 일상의 중력을 견뎌내지 못하고 탄성을 잃어버린 채 시체처럼 축 늘어져 ‘잉여인간’으로 연명해야 하는 아영과 두성, 그저 서로에게 배설구로만 기능하는 두 남녀에게 ‘내일’은 존재하지 않는 단어다. ‘내일’을 희망으로 윤색하는 버릇을 지닌 우리들에게 무기력의 감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두 남녀의 소거된 절규는 강력하고, 또 섬뜩하다.

관련 영화인

불러오는 중입니다.

관련 영화글

불러오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