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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이스]어머니

태준식, 2011

[초이스]어머니 대표 이미지

다른 사람의 경험을 이해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내가 아는 현자 중 최고는 존 버거라는 영국 사람이다. 소설에서 부터 미술 비평까지 다양한 글을 쓰는 사람인데 최근에는 프랑스 남부 외진 곳에서 농사를 지으며 현안에 대해 시 같이 은근한 글들을 써내기도 한다. 그의 글을 읽으면 한동안 고민했던 문제들에 대해 해답을 얻게 된다.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존 버거에게 빚진 바가 크다. 존 버거는 다른 사람의 경험을 이해하기 위해서 그 사람이 놓여 있는 모든 조건들, 사회 경제적인 조건에서부터 그를 둘러싸고 있는 공기까지도 가져다 놓고 재구성해야만 누군가를 이해할 수 있다고 했다. 이전에는 이 이야기를 단순히 한 사람의 사회경제적 조건으로만 생각했다. 소위 말하는 SES(Socioeconomic Status 사회경제 상태-음악 하는 사람으로 오해하실 수도 있다)로만 이해했던 것 같다. 서론이 긴 것은 태준식 감독의 <어머니>를 보면서 존 버거가 했던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른 누군가를 이해하기 위한 조건에는 공기라는 것도 있음을 새삼 깨달게 됐다. 

태준식 감독의 <어머니>에는 한 할머니가 나온다. 쪼글쪼글하고 이도 몇 개 없고 느릿느릿 걷는 작은 할머니다. 근데 그 할머니가 참 매력적이다. 피부가 곱다는 손님의 덕담에 할머니를 모시는 아들이 다 자기가 관리를 잘해서 그렇다고 하자 한 마디 턱 날리신다. “니가 내 태어 날 때부터 관리 했나?” 이 할머니 참 특이하시다. 사람들이 할머니 집에 들락날락한다. 할머니는 사람들에게 밥을 권하고 웃음도 권한다. 그러는 동안 관객은 한 할머니를 둘러싸고 있는 공기를 공유하게 된다. 볕 좋은 어느 날, 할머니 집 주변 지붕 위 고양이의 졸음까지도. 

할머니의 일상과 유머에 여유로워질 즈음 감독은 그녀가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임을 알려준다. 노동자의 어머니, 그녀가 있는 모든 곳에서 ‘어머니’로 불렸던 사람, 이소선. 아들이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며 분신한 이후 아들의 유지를 이어 노동자들과 함께 했던 사람. <어머니>는 많은 사람이 알지만 또 알지 못했던 사람 이소선에 대한 다큐멘터리이다.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에 대한 다큐멘터리이니 그녀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그녀의 업적이 기록되길 기대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감독은 이 작은 할머니에 대해 아는 사람만 아는 것이 아니라 좀 더 많은 사람이 알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녀의 아픔에 대해서도 슬며시 연극으로 대신한다. 그러면서 우리에게 이소선의 일상을 보여주며 유머러스한 할머니와 시간을 함께 하는 경험을 만들어 준다. 그리고 그 작은 사람도 자신에게 주어진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살았으니 당신도 조금은 기운을 내어 하루를 살아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인물 다큐멘터리는 다양한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다양한 방식이 있긴 하지만 주인공의 업적을 열거하면서 신화를 만들게 되기 쉽다. 하지만 다큐멘터리 <어머니>는 주인공을 둘러싸고 있는 공기를 통해 주인공의 삶의 태도를 공유하게 한다. 이상하리만치 편안하게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어느 순간 가슴이 뜨거워지고 보고 나면 몇날 며칠을 곰곰이 생각하게 한다. 

그녀의 유머, 그녀가 겪었던 아픔, 그리고 그녀가 서 있던 자리. 여전히 그녀가 있어야하는 자리는 많다. 이젠 그녀와 시간을 나누며 위로 받았던 우리가 그 자리에 함께 해야 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스멀스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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