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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이스]레드 툼

구자환, 2013

[초이스]레드 툼 대표 이미지

한국전쟁이 발발했던 1950년 초반. 이승만 정권은 (비공식적으로) 대략 30-45만 명으로 추정되는 남한 사회의 양민들을 무차별적이고 불법적으로 ‘학살’했다. 정부와 경찰에 의해 자행된 이 학살극은 이른바 ‘보도연맹 사건’으로 불리고 있으며, 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정확한 진상규명이나 그 희생자들에 대한 복권조차 행해지지 않고 있다. 학살의 시발점은 1949년, 이승만 정권의 주도로 만들어진 ‘국민보도연맹’으로부터 촉발됐다. 해방 이후 정통성의 부재를 지닌 이승만 정권은 반공-우익-친일 세력을 중심으로 좌파척결에 나섰고, 그 빌미로 이른바 좌파 전향 단체인 ‘국민보도연맹’을 결성한다. 이에 따라 지방의 공무원, 경찰, 토호 세력 등은 자신의 부락을 중심으로 보도연맹에 가입시킬 좌성향 양민들의 명단을 작성하게 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실질적인 좌성향 지식인은 말할 것도 없고, 부락마다 내려진 인원할당제에 의해 무지랭이 농민, 아낙, 어린 소년 소녀까지 명단에 이름을 올리게 된다.(이 과정에서 마을 토호 세력이나 우익 세력들의 걸림돌이 되었던 독립운동 세력, 지식인들, 그리고 토호세력과 사적으로 감정이 좋지 않았던 양민들까지도 상당수 보도연맹에 이름이 올라간다) 그리고 이윽고 1950년 초, 전쟁 발발 시 남한 내 좌파성향의 북한 동조를 척결해야 한다고 판단한 남한 정부는 보도연맹에 이름이 올라간 양민들을 무차별적으로 학살하기 시작한다. 국가의 이름으로 행해진 명령이었음에도 그 어떤 법적 절차나 명분도 없었으며, 이들 대부분 마을 뒷산, 앞바다 등으로 영문도 모른 채 끌려가 총살당하거나 산채로 밧줄에 묶여 바다로 내던져졌다. 그리고 그 시신은 수습조차 불가하였다. 

지난해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상영되어 우수상을 수상한 다큐멘터리 영화 <레드 툼>(구자환)은 그 비극의 역사를 추적한다. 영화의 제목 ‘Red Tomb'''''''' 은 이른바 ‘빨갱이 무덤’을 일컫는다. 아침 댓바람에 혹은 한낮 일하던 논밭에서 또 더러는 한밤 어둠 속, 문밖에서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영문도 모르고 쫓아갔던 많은 이들이 피투성이 주검이 되어 뒷산에 널브러져 방치되어도 그 유가족은 그들을 차마 수습조차 하지 못하고 숨죽이며 살아야만 했다. 그들의 시신들은 그대로 은폐되거나 감추어져 이른바 빨갱이 무덤을 이루었다.

<레드 툼>은 그 학살의 현장들을 증언한다. 이제는 팔순 혹은 구순이 된 마을 노인들이 카메라 앞에서 지금껏 차마 발설하지 못했던 그 기억들을 끄집어내기 시작한다. 어느 역사 보고서에도 기록되지 못했을 그 기억의 증언들, 혹은 울분의 토로들 속에서 어느 노인은 지금도 몸서리치며 ‘무섭다’고 이야기한다. 그런 날이 다시 오지 말라는 법이 없지 않은가 라고 그는 말한다. 영화 속 팔순의 할머니는 20대 청춘에 끌려간 남편의 생사조차 확인하지 못하고 평생을 살았다. 남편이 돌아오지 않았으나 죽은 것도 확신할 수 없다며 제사조차 제대로 치르지 못하는 할머니의 옷장에는 아직도 남편의 삼베옷이 보관돼 있다. 그러던 중 마을 뒷산에서 보도연맹 학살로 살해된 유골들이 반세기가 지나 발견된다. 그제서야 남편의 완전한 주검을 마주하게 된 할머니는 통곡하며 “아이고 산천도 무심하고, 부락민도 무심하다…”라며 통곡한다. 

<레드 툼>은 반세기 전 역사를 파헤치지만 우리는 놀랍게도 과거의 역사가 아니라 현재의 역사를 상기하게 된다. 보도연맹 사건이 아직도 제대로 된 역사적 처벌이나 평가를 못 받아서이기도 하거니와, 그 끔찍한 권력과 폭력, ‘적대’를 기반으로 하는 그 통치의 테크놀로지가 평범했던 사람들에게 너무도 잔혹하게 작동되었음을 새삼 일깨우기 때문이다. ‘좌파’라는 용어조차 이해하지 못하던 마을 부락민들이 권력과 친일 토호들에 야합하여 이웃 주민들을 가장 잔혹한 방식으로 학살할 수 있는 그 야만은 물론이고, 이후 그 폭력의 희생자들이 또다시 가해질 폭력에 침묵하며 평생을 죄인으로 순응하게 만들었던 그 부조리의 역사란, 비단 보도연맹 사건에서 뿐만이 아니라, 제주도 4.3에서, 박정희 정권의 부산 마산에서(부마항쟁), 신군부의 80년 광주에서, 그리고 여전히 레드 콤플렉스가 권력의 테크놀로지로 작동하고 있는 현재의 역사적 지평 속에서 발견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최근 독립 다큐멘터리 진영에서 조명되고 있는 역사적 상기의 작품들은 꽤 흥미롭고 중요하다. 특히 이 작품들은 모두 그것을 겪어낸 사람들의 ‘증언’에 기반을 둔다는 점에서 보다 강렬하다. 쓰이지 않은 역사, 구술의 역사, 목격자들의 역사. 이러한 증언의 기록들은 현재의 공간들, 평범한 마을 뒷산과 바다가 원통한 주검의 역사적 현장. 그 평범성의 공간 아래 은폐된 비극의 역사를 상기한다. 상기는 우리의 일상을 역사적 공간으로 일깨운다. 그리고 영화 속에서 그 폭력이 되풀이 될까봐 무섭다던 어느 노인의 공포는 매우 의미심장하다.

독일의 철학자 발터 벤야민은 역사철학에 관한 정치적 실천에 대해 기술하면서 지나간 과거의 것을 역사적으로 표현한다는 것은 그것이 도대체 어떠했던가를 인식하는 것만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것은 어떤 위험의 순간에 섬광처럼 스쳐 지나가는 것과 기억을 붙잡아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것, 위험의 순간에 역사적 주체에게 예기치 않게 느닷없이 나타나는 과거의 이미지를 꼭 붙잡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덧붙인다. “과거로부터 희망의 불꽃을 점화할 수 있는 재능이 주어진 사람은 오로지, 죽은 사람들까지도 적으로부터 안전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투철하게 인식하고 있는 특정한 역사가뿐인 것이다. 그런데 이들 적은 승리를 거듭하고 있다.“(『역사철학테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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