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이스
[초이스]잉투기
엄태화, 2013
엄태화, 엄태구 형제의 <잉투기>를 보는 내내, 엉뚱하게도 미국영화 <브릭>이 떠올랐다. 이제는 스타 배우이자 감독이 된 조셉 고든 레빗이 고등학교 내 살인과 마약과 범죄를 해결하는 ‘고딩’을 연기했던 <브릭>은 그해 선댄스영화제 심사위원상을 수상하며 로저 에버트에게 “고전 미스터리 탐정물의 자세를 현대적인 캘리포니아의 한 고등학교로 완벽하게 바꾸어놓았다”는 인상적인 평을 받은 바 있다.
뜬금없이, 2008년 개봉한 청춘 필름누아르 영화의 기억을 길어 올린 건 다 이유가 있어서다. <브릭>은 저예산에 20일이란 짧은 촬영 기간 동안 젊은 배우들을 데리고 신인 감독(이후 조셉 고든 레빗과 <루퍼>를 함께 만든 라이언 존슨)의 아이디어와 연출력, 그리고 7년을 준비했다는 시나리오로 승부해 ‘작품’을 만들어낸 케이스다. 개인적으로 <브릭>이 뇌리에 각인된 이후 종종 리얼리즘과 작가주의에 과하게 경도되는 우리 독립영화들을 확인할 때마다, 우리는 언제 이같이 (단순비교는 힘들지만) 저예산임에도 장르성을 경유하는 동시에 단단한 이야기와 캐릭터, 개성을 갖춘 튀는 작품을 만날 수 있을까 하는 바람과 근심을 지녀왔었다.
그러기를 수년째, 드디어 <잉투기>가 왔다. ‘잉여’ 담론이 흥했던 2013년을 관통한 <잉투기>에서 <브릭>의 그 활력과 생동감을 맛본 것은 실로 흥분되는 경험이었다. 영자로 대변되는 파닥파닥 살아 숨 쉬는 캐릭터, 피해자인 칡콩팥 ‘태식’이 미스터리한 가해자 ‘젖존슨’의 실체를 파악해 나가는 내러티브 구조, 10대부터 30대까지라면 꽤나 널리 공감할 ‘갤러리’, ‘현피’, ‘먹방’ 등 인터넷 ‘루저’ 문화에 관한 생생한 묘사, 그리고 태식과 희준으로 대변되는 하릴없이 부유하지만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은 청춘’들에 대한 복잡미묘한 시선까지.
특히나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지질할 수밖에 없는 ‘잉여’들을 극의 중심에 끌어들이는 것 자체로 (20대들의 박탈감이나 ‘일베’의 일면을 연상시키는)동시대성을 획득하는 한편 위로와 관조, 냉소를 넘나드는 거리 두기에도 성공한다는 점에서, 엄태화 감독의 연출력은 장편데뷔작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 <브릭>이 필름누아르 안에 청춘과 성장 기운을 녹여내는 기성품으로서의 활력이 도드라진다면, <잉투기>는 성장영화의 내러티브를 지속적으로 비틀면서도 탈주까지는 시도하지 않는 묘한 활력을 품은 채 앞으로 나아간다. 전형적이고 획일적인 장르성은 거부하지만 동시대 영화관객들과의 친밀도는 계속 높여나갈 수 있을 만큼의 영화적인 전형성과 보편성은 획득해내고야 마는 것이다. 그러면서, 관객들로 하여금 자의 반 타의 반 방임과 자학과 인정욕구를 넘나드는 이 캐릭터들에 대한 애정의 끈을 놓지 않게 만드는 공력이 실로 놀라웠다.
엄태화 감독은 레퍼런스로 <400번의 구타>와 <허공에의 질주>, <바보들의 행진> 등을 꼽았다고 한다. <잉투기>의 요소요소를 되새기게 하는 리스트가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잉투기>에는 분명 저 작품들 모두에서 끄집어낼 수 있는 젊은이의 고민들이 2013년을 살아가는 한국인의 얼굴에 가로 새겨져 있다. 데뷔작에서 확인시켜 준 동시대성과 활력이라면, 엄태화 감독은 청춘의 이야기를 넘어 어떤 장르든 제식대로 요리해낼 수 있을 것만 같다. 부디, 묵직한 듯 싱싱하고 반골 정신이 살아 숨 쉬는 차기작으로 이내 만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