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이스
[초이스]예스맨 프로젝트
앤디 비크바움,마이크 보나노,커트 엥펠, 2009
영화를 보면서 이런 상상을 해 본다.
산업통상부 장관이 되어 대국민 기자회견을 통해 그간 정부의 에너지 산업정책에 대한 문제들을 인정한다. 그리고 그에 따른 후속조치로 ‘전국의 원자력 발전소 즉각 폐쇄 및 추가 건설 계획 전면 백지화’ ‘밀양을 비롯한 송전탑 건설계획 전면 철회’ ‘기업들의 산업용 전기요금 인상’ 등을 발표한다면. 혹은 광화문 사거리에서 조선일보 특별판을 무료로 배포해 국가보안법 폐지, 박근혜 정부의 통일정책 비판 및 조건 없는 대북 지원 그리고 고 박정희 대통령의 과거 친일 행적이 기사화된다면.
바쁜 출근길, 직장인들이 이 특별판을 보았을 때 표정들이 어떠할까? 그리고 조선일보 관계자들의 표정은? 생각만 해도 실소가 나온다. 이런 상상이 현실로 된다면 어떠할까? 영화기 때문에 가능하다?!
그럴수도... 하지만 이 얘기들은 미국 사회에 두 명의 괴짜 예스맨(앤디와 마이크)들이 벌인 일이고 적어도 누군가에게는 제대로 한방을 먹인 사실들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개봉한 다큐멘터리 <예스맨 프로젝트>. 이 영화는 흥행에 힘입어 책으로도 발간되어 나름의 인기를 얻었다.
새삼 이 작품을 이야기하는 시간이 길어졌는데, 현재 기획단계인 다큐멘터리 <핵 마피아> 제작에 참여한 나로서는 이런 상상들이 제작의 주요 아이디어가 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우리가 만들고자 하는 다큐가 앞뒤 떠나 ‘핵 마피아’에 대해 뭔가 한 방 먹여보고 싶은 강렬한 욕망에서 출발하였기 때문이다. 다큐멘터리 제작 방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우리나라 핵 산업의 문제와 그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이번에는 좀 다르게 풀고 싶었다.
멀쩡히 잘살고 있는 고향을 떠나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도대체 누구를 위한 에너지 정책인지, 여름마다 반복되는 에너지 절전 캠페인은 정작 기업들은 제외한 채 왜 우리만 열심히 해야 하는지. 실체가 보이지 않는 고통의 ‘가해자’가 누구인지 직접 찾아가고, 만나보고 캐묻고 싶다. 그리고 그들에게 실재적 한방은 아니어도 조금은 균열을 낼 수 있는 유쾌한 펀치를 날려보고 싶다.
그렇게 기획되고 있는 ‘핵 마피아’이기에 예스맨 프로젝트의 통근 사기극들에 대해 이리저리 뜯어보며 우리에게 적용될 수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 고심하게 된다.
예스맨(앤디와 마이크)들이 벌이는 여러 사기극들은 일회적으로 끝나지 않는다. 세상을 바꿔보자는 야심 찬 계획에서 출발한 그들의 ‘사기극’은, 현실의 모순들이 갖고 있는 원인과 배경에 대해 고민하고 연구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그들 나름의 행동으로 책임지려고 한다.
인도 보팔 사건 피해자들에 대한 공식 사과와 물적 보상(120억 $)을 약속하는 다국적 기업 다우(Dow) 대변인이 BBC와 진행한 공식 인터뷰. 특종은 주변 언론들까지 합세해 대대적으로 보도되고 크게 이슈화된다. 물론 이 보도는 대변인으로 분한 예스맨들(앤디와 마이크)이 벌인 사기극이었다.
언론은 자신들의 실수를 덮고자, 예스맨들의 거짓말이 보팔 사건 피해자들을 분노하게 했다고 대대적으로 보도한다. 그리고 이후에도 이어지는 예스맨들의 사기 행각에 대해 언론은 지속적으로 그들의 거짓말이 피해자들을 더욱 고통스럽게 만든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실제로 예스맨들이 만난 사건의 피해자들은 이들이 벌인 사기극에 대해 통쾌해하며 즐거워한다. 오히려 피해자들은 정부와 기업, 언론이 긴 시간 거짓말을 했다고 주장한다.
다국적 기업 다우(Dow)의 윤리적 행동이 주주들의 이탈을 필두로 한 주가 하락으로 귀결될 때 예스맨들은 새로운 결론을 내린다. 시장경제체제의 원리 안에서는 기업의 윤리가 경제적 이윤으로 귀결되지 못함을. 그렇다면 기업만이 아니라 기업의 수익을 보장하는 정부와 주류 경제학자들의 이론적 지원까지 사기극의 대상으로 지명되면서 영화는 정부와 언론으로 확대된 예스맨들의 사기극들을 보여준다.
영화를 보는 내내 실소를 금할 수 없었던 것은 밖에서 보면 뻔히 보이는 거짓말과 말도 안 되는 논리와 상품들이 실제로 그 내부에서는 말이 되고 돈이 된다는 것이다.
대안에너지로 발표한 시체 에너지?, 미래 환경의 모든 위험으로부터 보호 가능한 거대 풍선 옷 등... 야유와 비난의 대상이 될 거라 예상한 예스맨들의 발표와 상품에 대해 관련자들은 너무나 진지하고 때로는 적극적인 관심을 표한다. 이것이 어쩌면 신자유주의의 맹목성이 갖는 아이러니와 비극이 아닐는지.
영화는 예스맨 스스로도 인정했듯이 그들의 사기극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하지는 못했다고 말한다. 여전히 다우(Dow)는 보팔 사건 피해자들을 모른 체하며 기업 홍보에 천문학적인 액수를 쏟아 붓고 뉴올리언스 이주정책은 가난한 주민들을 여전히 거리로 내몰고 있으며, 언론은 정부와 기업의 오래된 거짓말 보다 예스맨들의 작은 거짓말에 더욱 분노한다.
그러나 영화의 마지막은, 뉴욕타임즈의 거짓 특별판을 보며 짧게나마 행복함과 웃음 짓는 시민들을 보여준다. 이 장면에서 우리는 예스맨들의 사기극이 결코 끝나지 않을 것임을 알 수 있다. 영화가 세상을 바꿀 수는 없지만 적어도 다른 세상을 꿈꿀 수 있는 희망을 전해준다면 이들의 사기극은 충분히 가치가 있다고 영화는 이야기한다.
그리고 한국에서도 이와 같은 사기극이 현실적으로 가능할지 아닐지 한번 해보자며 막무가내로 시작한 ‘핵 마피아’ 다큐멘터리도 (물론 예스맨이 갖고 있는 국제 변호인단의 지지도 없다) ‘핵 마피아’들에게 유쾌한 한방의 사기극을 벌이길 원하는 수많은 잠재 관객들이 있기에 용감한 다큐멘터리 제작에 한번 박차를 가해 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