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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이스]세인트☆영맨

타카오 노리코, 2013

[초이스]세인트☆영맨 대표 이미지

아니, 세상에 이런 일이! 예수님과 부처님이 한집에서 살게 된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이 기발하고도 발칙한 상상력이 애니메이션 속에서 이루어졌다! 그 통쾌한 웃음보따리가 지금 풀어진다!! 우리 친구들 모두 함께 놀러 오세요, 여기 성(聖)인들의 집으로!!!

라는 홍보 글이 어울릴 것만 같은 느낌의 애니메이션, 그 이름 <세인트 영맨> 되시겠다. 일본 제목으로는 ‘세인트 오니상’ 즉 성스러운 형아들(또는 오빠들) 정도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 기발하고 재미있게 그리고 신성모독이라는 금기의 선을 오가며 자극적으로 만들어질 법한 소재가 예측 가능하고 심심한 내용으로 완성되었다. 씨암탉을 잡아 닭은 버리고 뱃속의 알로 만든 달걀프라이를 접시에 고이 받은 기분이다.

청년의 나이인 예수와 부처가 잠시 천계의 일을 내려놓고 일본으로 휴가를 내려와 함께 좁은 집에서 동거하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여러 에피소드를 엮어 놓은 내용의 구성은 서로 큰 연관 없이 흘러간다. 기본적으로 만담을 좋아하고 개그에 욕심이 많은 이 두 캐릭터들은 일본 개그의 특징인 콤비 플레이의 형태를 띠고 있다. 일본 개그 콤비의 특징은 보케(어리숙한) 캐릭터가 바보 같은 언행을 하고, 여기에 딴죽을 걸고 받아치는 츳코미(주의를 주는) 캐릭터가 서로 주고받으며 웃음을 유도하는 형식이다. 

그런데 여기 애니메이션 속 두 캐릭터들은 그 역할이 확실히 정해져 있다기 보다는 이야기 속 소재의 설정에 맞춰 서로 보케와 츳코미를 멋대로 넘나든다. 그러다 보니 처음에는 재미있게 보이다가도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캐릭터의 개성과 개연성이 떨어져 전체 내용에 대한 흥미도를 마구 잘라먹는다. 잼을 빵에 발라먹든, 빵을 잼에 찍어 먹든 그 맛이 그 맛 아니겠는가. 그래서 이들을 기껏 ‘살려’놓았건만 숨 쉬는 캐릭터들로서 느껴지지 않고 성인의 역할을 맡은 연기자들 정도로 느껴진다. 태초에 신은 흙 인형에 숨을 불어넣음으로써 인간을 만들었다 한다. 그리고 인간이 만든 이 두 신들을 보는 우리도 한숨이 나온다. 어수룩한 이 둘을 보고 있자면 그들이 운영하는 지금의 혼란스런 세상도 이해가 갈 것만 같다. 아니, 이런 신성 없는 세상이기에 그 위대한 존재들을 이렇게, 재미없는 동네 시시한 형들로 만들어 버린 지도 모르겠다. 

세계에서 가장 주류에 속해 있는 종교의 신들을 개그의 소재로 쓸 수 있다는 것은, 일만이 넘는 신들을 가진 일본이 아니라면 나오기 힘들 법한 설정이라 생각된다. 그래서 이 두 종교 역시 그 많은 신들의 사이에 끼워 넣는 유연한 사고방식이 있기 때문에 이런 이야기를 만들고 소비되는 것이 가능하지 않았나 싶다. 그렇다면 기왕 시작한 것 좀 더 아슬아슬하게 위험하게 웃겨 줬으면 좋겠는데 또 그렇지도 않다. 각 종교의 정수에 대한 이해도가 깊지 않고 형태적 설정만을 사용해 이야기를 꾸며 놓아서, 두 캐릭터와 관련된 특정 종교인들이 보게 될지라도 분노보다는 비소를 지을 듯하다. 

이들 종교의 개성을 비틀며 시작되는 초반 에피소드는 실소나마 주지만 이야기들이 이어질수록 삼베 바지에 방귀가 새듯 내용에 힘은 빠져간다. 개그라는 장르에서 요하는 타이밍과 호흡도 늘어져서는 러닝타임을 늘려야 해서 이렇게 만들어졌나? 라는 의구심마저 들기도 한다. 에피소드가 지나며 어째선지 장르가 개그에서 드라마로 변해간다. 서정적인 느낌을 목표로 만든 듯 보이는 지루한 일본의 풍경들 앞에서 예수 캐릭터는 연신 ‘엑조틱 재팬!!’을 외치며 자신의 창조주들이 사는 나라를 찬양한다. 부처도 ‘역시 일본으로 휴가 오기를 잘했어’ 따위의 대사로 이에 호응한다. 그렇다. 이쯤에 와서는 이 성인들이 일본 사람의 손에 의해 제작 되어졌다는 것까지 느껴진다. 스바라시.

이 애니메이션의 원작은 만화이다. 만화는 나은 편이다. 불필요하게 늘어지는 호흡이 없어 빨리빨리 넘기면 지루하지는 않다. 혹시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고민 없이 만화방을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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