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이스
[초이스]더 콩그레스
아리 폴만, 2013
만약 누군가 거액을 주면서 앞으로 20년간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면? 그 대가로 내 모든 것을 스캔해서 마음대로 사용하겠다면? 에이... 냉큼 포기할까? 나 따위는 마음껏 스캔하라고? 글쎄... 모르겠다. 20년 동안, 그리고 20년 후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까.
<더 콩그레스>의 주인공, 할리우드 여배우 로빈 라이트가 그런 제안을 받는다. 이미 스타의 자리에서 내려왔고, 대중들이 외면하기 시작한 여배우에게 세계 최대 영화 제작사 미라마운트(실제 할리우드 제작사 미라맥스와 파라마운트를 합성한 이름이다)는 황당한 요구를 한다. 기술의 발달로 배우들을 스캔해서 컴퓨터 프로그램화시키면 어떤 영화든 마음껏 만들 수 있다며, 거액을 줄 테니 스캔을 받으란다. 그런데 스캔을 하면 출연작을 직접 선택할 수 없고, 두 번 다시 실제로 연기할 수도 없다. 대신 화면 안에서 영원히 젊고 아름답게 남을 수는 있다. 로빈은 결국 경력을 유지하면서 경제적 어려움 없이 희소병에 걸린 아들을 돌보기 위해, 스캔한 자신의 캐릭터를 20년간 자유롭게 사용하는 데에 동의한다.
<더 콩그레스>는 <바시르와 왈츠를>의 감독 아리 폴만이 스타니스와프 렘의 SF소설 <미래학 회의>를 각색해 만든 SF 애니메이션 판타지다. 2시간의 러닝타임에서 45분가량은 실사, 이후엔 애니메이션, 그리고 엔딩에 이르면 실사와 애니메이션이 교차된다. 이를 위해 각본을 쓰는 데만 1년, 실제 제작 및 촬영 기간 1년, 그리고 후반부 애니메이션 제작 기간만 다시 2년 반이 걸렸는데, 결과는 꽤 매력적이다. 애니메이션이 나오는 부분은 로빈이 스캔 계약을 하고 20년이 흐른 후. 로빈은 미라마운트가 제작한 영화 속에서 20년간 살아남았고, 최근 SF 여전사 캐릭터가 되어 인기가 높다. 그래서 미라마운트가 소집한 회의에 초대받는데, 회의장에 들어가려면 먼저 약물을 먹어야 한다. 약물을 삼킨 후 애니메이션 캐릭터가 되어 미라마운트의 환각 세계로 진입하는데, 그곳에서 추가 조항을 넣은 재계약을 강요받는다. 그녀를 화학식 형태로 팔게 하라는 것이다. 그러면 누구든 로빈을 약물로 복용해 그녀로 변할 수 있다. 거짓 환상을 통해 각자의 정체성을 잃게 만들고 이득을 취하려는 스튜디오의 만행이랄까. 이에 저항하던 로빈은 그만 환각 세계에 갇혀서 자신을 찾기 위한 온갖 시련을 겪는다.
<바시르와 왈츠를> 때도 그랬지만 아리 폴만 감독은 현실과 환각의 세계를 실사와 애니메이션으로 나눠 시각적 대립 구조를 만들고, 중요한 질문을 건넨다. 3D와 모션캡쳐로 영화 전체를 만들 수도 있는 시대에 배우의 온전한 연기가 유지될 수 있을까? 영화계, 나아가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사람들의 욕망을 어디까지 이용할까? 누구나 약물을 마시고 자신이 원하는 스타의 모습으로 살아간다면 행복할까? 고통스러운 현실을 견디다 못해 환각의 세계로 투신하게 된다면, 그나마 자기 환상의 주인은 자신이 돼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이 질문을 던지는 방법으로 2D 애니메이션을 이용한다. 환각 상태에서 만나는 풍경과 캐릭터들이 원색적이고 화려하게,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형태로 끝없이 변형되는 모습을 표현하는 데, 애니메이션은 탁월한 선택이다. 로빈을 위해 현실과 환각 세계를 이어주는 캐릭터가 20년간 그녀의 데이터로 작업을 해왔던 애니메이터라는 사실도 흥미롭다.
더불어 배우 로빈 라이트의 삶도 눈길이 간다. 데뷔 초, 영화 <프린세스 브라이드>로 스타가 됐고, <포레스트 검프>의 제니로도 기억되지만, 이후엔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미라마운트의 사장은 그녀가 형편없는 선택을 해왔다고 혹평한다. <버드맨>의 마이클 키튼이 자신과 닮은 캐릭터를 연기했다면 <더 콩그레스>의 로빈 라이트는 자신을 연기한 셈이다. 하지만 그녀의 20년 후는 <더 콩그레스>와는 다른 것 같다. 현실에선 실험적인 영화들에 기꺼이 출연하며,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로 새 전성기를 맞았으니까. 참, 20년 후 환각 세계에서 로빈 라이트와 함께 살아남은 배우는 톰 크루즈다. 20년간 자연인으로 아프리카 아이들을 돕고 살았다며, 애니메이션 캐릭터로 등장하는 톰 크루즈의 얼굴. 빵! 터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