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이스
[초이스]이로 인해 그대는 죽지 않을 것이다
안건형, 2014
실험적인 다큐멘터리 작업을 해오고 있는 안건형 감독의 최근작 <이로 인해 그대는 죽지 않을 것이다>는 문헌과 그림, 사진 등의 기록물에 대한 꼼꼼한 조사를 통해 홍제천 수계 내의 역사를 다루고 있는 작품이다. 도시학자 최종현과 협업을 통해 제작된 이 영화는 삼국시대부터 현재에 이르는 오랜 시간 동안의 홍제천 일대의 변화를 기록한다. 조사과정에서 감독은 홍제천과 세검정의 복원을 둘러싼 흥미로운 사실들을 발견한다. 모래내라는 옛 이름, 정선의 그림 <금성평사>에 등장하는 홍제천 하구에 퇴적된 모래, 토양특성 분석 등의 조사에 따르면, 복원 당시 내부순환로 설치 후 건천(乾川)화되었다고 알려졌었던 홍제천은 본래부터 건천이었다. 한편, 1941년 소실되었다가 옛 모습대로 복원되었다고 알려진 세검정은 실은 1944년에 소실되었고 이 같은 오류가 기정사실로 된 것은 1977년 세검정이 복원된 해였다. 또한, 복원된 세검정은 세검로로 인해 원위치에서 벗어난 곳에 설치되어 엄밀히 보자면 복원이라 할 수 없었다. 영화에 나오는 이야기처럼 복원된 홍제천은 “홍제천에 대한 사람들의 관념”이었고, 복원된 세검정은 “세검정이 복원되었다는 것을 보여줄”뿐이었다.
감독이 밝혀낸 역사기록의 오류들만큼이나 흥미로운 또 다른 점은 영화의 형식이다. 이 영화는 사운드가 탈락된 채 이미지와 텍스트만으로 이루어진 무성영화다. 70여 개의 인용과 감독의 생각으로 구성된 텍스트는 검은 바탕 중앙에 하얀 글씨로 등장하고, 이와 더불어 그림, 사진, 동영상(moving image) 이미지가 나온다. 이 영화에서의 이미지와 텍스트의 관계는 일반적으로 영화에서 이미지와 텍스트가 갖는 관계와는 반대로 구성되어, 텍스트가 영화를 이끌어가는 주된 요소이고 이미지들은 이것의 증거가 되거나 보충하는 역할을 한다. 더욱 실험적으로 느껴지긴 하겠지만, 이미지들을 제외한 채 텍스트들로만 상영하여도 한 편의 영화라고 할 수 있을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에서 가장 독특한 것은 이미지, 그중에서도 동영상 이미지이다.
텍스트와 인용된 사진, 그림을 놓고 보면 이 영화가 무성영화인 것이 크게 이상할 것까지는 없다. 이 세 가지는 본래 소리를 가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카메라에 내장된 형태의 마이크가 보편화된 시대인 지금, 소리가 없는 동영상은 낯설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홍제천 일대의 현재 풍경을 담은 이 동영상들은 고정된 카메라와 딥포커스로 촬영되어 있다. 전경에서부터 후경에 이르는 모든 풍경이 선명하게 지각되는 이 이미지들, 게다가 단풍이 든 시점에 촬영하여 더욱 또렷이 보이며 실제보다 더욱 실제처럼 느껴지는 이 이상한 이미지들은 앙드레 바쟁이 딥포커스를 두고 말한 표현의 모호성을 느끼게 하고 관객의 능동적인 선택을 요구한다. 또한, 사운드 없이 보여지는 빗방울들이 만들어내는 고요한 수면 위의 작은 파문들, 홍제천 산책로를 따라 걷는 사람들과 도로를 지나가는 차들의 행렬, 백석동천의 나무에서 떨어진 단풍잎의 일렁임은 최초의 영화인 <기차의 도착>, <공장을 나서는 사람들> 같은 뤼미에르 형제의 작품들을 상기시키며, 대상들의 움직임이라는 영화의 본령으로 되돌아간다.
영화의 주된 소재인 세검정은 이 영화에 등장하는 세 가지 이미지이자, 각 시대를 대표하는 재현매체인 그림, 사진, 동영상 모두로 등장한다. 물론 영화는 기록과 역사의 오류를 추적하며 현재의 세검정이 원래의 그것도, 복제품도 아님을 밝혀낸다. 감독은 그러한 현재의 세검정을 다양한 위치와 각도에서 여러 차례에 걸쳐 촬영한 동영상 이미지를 영화에 담고 있다. 마치 미래에 이 영화를 보고 본인과 같은 작업을 할 누군가를 염두에 둔 것처럼 말이다. 이를 미루어 보았을 때, 적어도 이 영화에서 감독이 내린 결론은 기록의 위험과 한계에도 불구하고 기록을 멈추어서는 안 되며, 오히려 그 힘을 믿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