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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이스]마담 투틀리-푸틀리

크리스 라비스,마첵 슈츠보우스키, 2007

[초이스]마담 투틀리-푸틀리 대표 이미지

국민학교 시절, 당시 ‘토요명화’에서 방영된 코미디 영화의 한 컷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해 보자. 당시는 ‘유머 일번지’와 같은 극강의 코미디 프로가 거의 모든 어린아이들의 사유체계를 뒤흔들고 있을 때였는데, 어느 날 토요명화(인지 아니면 주말의 명화?)에서 코미디 영화계로서는 분명 ‘명화’일지 모르는 한 영화가 방영되었다. 이후에 알게 되었지만, 주커 형제의 < Top Secret! >, 방영제목으로는 <일급비밀>이었다. 서사를 추적하기 힘든 요상한 서사, 씬의 연속성을 무너뜨리고 순간의 이미지와 재치에 영화 전체의 견적을 부가한 상상력, 미국식 유머의 몰지각 때문에 몰상식으로 몸부림쳐야 했던 소년에게 이 영화는 그야말로 ‘파괴적’인 영화였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아직도 선명하게 박혀있는 한 장면이 있다. 바로 주인공이 탄 ‘기차의 출발’ 장면이다. 카메라는 주인공이 타고 있는 객석에서 창문을 바라보고 있는데, 풍경으로 보이는 간이 기차역이 창문 좌측으로 흘러가고 있다. 자연스럽게 기차가 출발하고 있을 것으로 상상했던 믿음은 기차역이 사라진 뒤 공간에 남겨진/멈춰있는 배경에 의해 이내 무너진다. 이윽고 카메라는 차창 밖으로 미끄러지듯 나가더니 멀리 떠나가는(!) 역의 모습을 보여준다. 말하자면, 이것은 기차의 출발 장면이 아니라 ‘역의 출발’ 장면인 셈이다. 기가 막힌, 누구나 경험했었을 시각적 망각, 또는 마술적 경험. 영화의 관람행위가 일종의 믿음과 상상의 계약이라고 했던가? 이날 이후부터 개인적으로 기차역에 가거나, 열차를 탈 때마다 그 장면의 시각적 경험이 떠오르곤 했다.

영화라는 프레임과 달리는 기차의 창틀, 그리고 기차의 좌석과 영화관의 객석 등의 조합으로 구성되는 영화관과 기차의 모습은 일종의 다중 프레임의 성격을 가진 시각적 극장일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개인적으로는 기차가 도착하거나 떠나는 장면들이 있는 영화들을 왠지 모르게 마냥 좋아한다. <베를린-대도시 교향곡 Berlin-Die Sinfonie der Grosstadt>(1929), <배드 데이 블랙락 Bad Day at Black Rock>(1955), <옛날 옛적 서부에서 Once Upon a Time in the West>(1968), <리스본 특급 Un Flic>(1972)나, <미션 임파서블>, <바보들의 행진>, <일대종사>, <백투더 퓨처>, <설국열차> 등 수없이 많은 영화들이 기차의 도착과 출발 장면으로 작품을 구성하고, 주요 시퀀스를 채워나가지 않았던가? 마치 최초의 영화라고 알려진 <열차의 도착>처럼 말이다.

마담 투틀리-부틀리

굳이 19세기 말의 기차여행과 영화라는 매체에 대한 상관관계를 추적하지 않더라도, 적어도 나에게 영화라는 시각적 경험은 기차여행에서 겪는 창틀 너머의 시각적 경험과 다르지 않았다. 영화가 그러하듯 시각의 향연은 기차의 창틀 하나하나에서 비롯되는 움직이는 씨네마(Cinema) 이었던 셈이다. 열차의 도착과 출발, 그리고 다시 정차로 이어지는 스톱모션/퍼팻 애니메이션인 <마담 투틀리-부틀리 Madame Tutli-Putli>(2007)도 단편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시각적 향연의 잔칫상이라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기차역의 플랫폼에서 수많은 짐들과 함께 열차를 기다리는 한 여성으로부터 시작된다. 행선지와 목적지가 명확하지도 않고, 객실에 탄 사람들의 정체도 불분명한 이 기차는 그 자체가 형이상학적이다. 때문에 이 작품은 주인공 여성이 기차에 탑승하여 여행을 떠나고, 겪는, 체험의 연속에 한정되어 있어서 이곳에서 서사를 발견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대신 열차가 도착하고, 객실의 사람들을 만나고, 잠이 들고, 끔찍한 범죄의 현장이 재현되고, 추적과 도망의 이미지들이 겹치는 지점에서 구분되고 확인되는 이미지의 전시와 향연이 있다. 여기에 이 작품이 지니는 시각적 체험이 있다. 

먼저 이 작품이 가지는 매체적 특성으로 기인하는 시각적 체험이다. 이 작품은 흔히 말하는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이지만, - 더욱 은밀하게 말하자면 - 제작 방식으로는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이며, 사용되는 오브제는 라텍스를 이용해 만든 인형을 이용했기 때문에 퍼팻 애니메이션 이라 할 수 있다. 상당히 정교한 세트와 소품 등은 셀이나, 2D 애니메이션, CG 애니메이션과는 다른 느낌을 가진다. 1초당 24프레임 이상의 움직임으로 촬영되어, 상당히 부드러운 움직임을 가진 데다가, 애니메이션 특유의 과장된 움직임들이 최대한 절제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스톱모션/퍼펫 애니메이션에서는 잘 사용되지 않는 실제의 머리카락과 같은 오브제를 사용한 것도 인상적이다. 따라서 이 작품은 실제로 현실 세계에 물질적으로 존재하는 이미지를 사진 촬영하여 만들어낸 이미지라는 점과, 이는 평면상으로만 존재하는 2D애니메이션, 비물질적 공간에서만 존재하는 CG의 이미지가 아니라는 의미로 인해 독특한 시각적 특색을 가진다. 물론 조금 공을 들여 찍는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이라면 이러한 시각적 차별성은 그렇게 특별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 

두 번째는 인물들을 중심으로 구성된 독특한 촬영방식이다. 많이 알려져 있듯이 이 작품에서는 인물들의 눈은 모두 실제 인간의 눈을 촬영하여 합성하였다. 현재까지 존재하는 전통적인 애니메이션 제작 방식 중 가장 오래된 기법인 스톱모션기법에 배경이나 소품의 단순한 합성이 아닌, 인물의 - 그것도 가장 중요한 - 얼굴의 눈을 합성했다는 것은 상당히 주목할 부분이다. 사실 영화(Live Action Film)는 사람의 얼굴을 발견하게 해 주었던 유일한 예술이라 하는데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카메라라는 기술적인 요건과 더불어 인간의 얼굴이 가진 미묘한 이미지 - 이를 두고 들뢰즈는 정동(精動, affection)이미지라 일컫는다 - 의 조건 속에서 가능하였다. 전통적인 스톱모션의 경우에는 영화와 동일하게 카메라를 이용함에도 불구하고, 쇼트의 크기는 주로 풀쇼트 미디엄 쇼트로 구성되었고, 클로즈업은 사용되는 분위기가 적었다. 이는 일반적인 애니메이션에서도 마찬가지인데, 주요한 요인으로는 바로 실사영화와는 다른 애니메이션의 얼굴 때문이었다. 애니메이션의 얼굴은 실제 인간 얼굴의 미묘한 감정의 동요를 파악하기에는 어려운 실제의 추상화(抽象化)의 단계를 지닌 것이었다. 아니메의 캐릭터가 큰 눈을 가진 이유는 바로 이러한 이유일 수도 있다. 눈은 인간의 심리적 양태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마음의 창’이기 때문이다. 


마담 투틀리-부틀리

그러한 이유에서인지 <마담 투틀리-부틀리>에서는 실제 인물의 눈을 촬영한 소스를 라텍스로 만들어진 인형에 과감하게 합성을 하고, 다양한 영화적 앵글을 구사하며 인물의 심리적 상태를 추적해 나간다. 그녀가 기차에서 겪는 즐거움, 불안함, 공포, 절망과 환희는 구체화된 눈에서, 합성된 라텍스 인형과 배경의 전체에서 드러난다. 특히 그녀의 심리적 불안의 팽배를 보여주는 이 작품의 백미는 기차의 객실에서 도망쳐 나와 앞의 객차로 달려가는 장면에 있다. 트랙쇼트와 시점쇼트, 다양한 앵글로 구성된 카메라, 그리고 그 속에 함께 달려가는 캐릭터의 무빙을 통한 파트너쉽은 웬만한 실사영화의 그것을 압도한다. 특히 결국에 - 이는 마치 린 타로의 <은하철도 999>나 봉준호의 <설국열차>를 떠오르게 하는 - 그녀가 기차의 앞부분으로 이동하면서 잠시 들린 식당 칸에서 겪게 되는 형이상학적인 경험, 낯선 공간의 구성은 그녀의 낯선 얼굴과 더불어 깊은 사념의 세계를 만들어 낸다. 

낯선 사람들과 낯선 공간의 연속적인 나열, 움직이는 기차를 통해 만나게 되는 외부의 풍경과 그것이 펼쳐진 영화적 스크린-객실의 창틀들은 초기영화가 그러하였던 시각적 향연을 펼쳐냈다. 상대적으로 원시적이고, 전통적인 방식을 가진 스톱모션 촬영방식을 이용한 <마담 투틀리-부틀리>는 마치 초기의 영화(Film)가 도달하려 하였던 - 무성(無聲)의 시각적 기호들만을 통해 삶의 이미지와 개념들의 나열 하였던 - 이미지의 언어들을 현실과 꿈을 오가는 기차와 같은, 또는 현실의 공간에 펼쳐진 환상적 이미지들이 공존하였던 오래된 극장과 같은 공간에 풀어놓았다. 이것이 주마등처럼 흘러가는 꿈결 같거나 환상 같아서 서사로 구체화되거나 언어로 포착/포섭되지 않는다고 해서 걱정하지 말자. 예술은 - 벤야민이 그랬던가 - 아담의 언어가 남아있는 유일한 곳이지 않은가?


온라인 상영관 : https://www.nfb.ca/film/madame_tutli_putli_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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