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이스
[초이스]밀양 아리랑
박배일, 2014
밀양엔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 커다란 송전탑을 가까이서 본 적도 없다. 밀양 송전탑 반대투쟁에 대한 뉴스를 보고 때로 분노했을 뿐, 사실 그 곳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누가 살아가고 있는지를 제대로 알지 못했다는 것을 <밀양 아리랑>을 보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밀양 아리랑>은 밀양의 송전탑 반대투쟁을 꾸준히 기록하고 있는 오지필름에서 만든 밀양에 관한 두 번째 작품이다. <밀양 아리랑>은 새벽에 산에 오르는 밀양 주민 한 사람으로 시작한다. 깜깜한 산속을 숨을 헐떡이며 오르는 그녀의 뒤를 쫓는 장면을 보며 무슨 일이 생길 것만 같아 잔뜩 긴장하고 있는데, 곧 웃음이 터졌다. 경찰들이 놔두고 간 수박을 쪼개 먹으며 달다고 웃고, 공사하는 포크레인 위에다가 스프레이 락카로 ‘도독놈’ ‘성리는 우리의 것’이라고 적으며 “입으로 말하는 대로 적으면 우짜노” 하고 유쾌하게 웃어버리던 그 장면에서, 나는 이 주인공들에게 푹 빠져버렸다. 친근해진 마음으로 두 시간 동안 본 영화에서는 사건과 투쟁보다는 사람들이 더 눈에 들어왔다. 밀양에서 농사짓는 영자 씨의 꿈이 원래는 여군이었다는 것도 알게 됐고, 그녀가 돌보지 못해 빛을 잃은 농작물에 같이 마음이 아팠다. 내 나이만큼 이사를 다니며 살아서 삶의 터전이 바뀌는 무거움을 잘 몰랐는데, 집에 뿌리내리듯 살아온 덕촌할매의 모습을 보며 그 마음을 조금은 이해하게 되기도 했다.
시간에 대한 기록이라는 다큐멘터리의 특징이 가장 잘 드러나는 장편 다큐멘터리에서 얻을 수 있는 큰 매력은 어떤 ‘사람’을 알게 된다는 것이 아닐까. <밀양 아리랑>이 가진 미덕은 화면 속의 인물을 ‘그들’로 보게 하지 않고 ‘우리’처럼 느끼게 한다는 점이다.
영화의 클라이맥스는 산속 농성장에서 함께 밥을 먹는 장면이다. 아마도 6월 11일, ‘행정대집행’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된 농성장 침탈현장의 소리가 들린다. 함께 밥을 퍼서 웃으며 밥을 먹는 그 날은 아니었을 것이다. 서로 얼굴을 마주하고 일상적인 얘기들을 나누며 함께 밥 먹는 그 장면에 얹어진 비명소리, 뭔가를 뜯어내는 둔탁한 소리는 그들이 부수어버린 것이 무엇인지를 가장 명확하게 보여준다.
하지만 영화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모든 게 끝난 거 같은데, 그렇게 지키고 싶었던 농성장이 부서졌는데, 송전탑은 하늘 아래 차곡차곡 올라가고 있는데, 밀양의 사람들은 다시 함께 밥을 먹고 새로운 싸움을 준비한다.
밀양 투쟁을 다룬 또 다른 옴니버스 다큐멘터리 <밀양, 반가운 손님>을 보면서 느꼈던 게 막막함과 답답함이라는 감정이었다면 <밀양 아리랑>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기서 싸우는 사람들의 에너지를 받는 느낌이었다.
세월호에 관한 작가들의 글을 묶은 책 「눈먼 자들의 국가」 중 진은영 작가의 글 중에 이런 말이 있었다. “세계의 거짓과 태만이 그들의 집을 부쉈다.” 이 세계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은 ‘그들’만이 아니라 우리에게도 책임이 있다. 수도권에서 전기를 쓰며 이 글을 쓰는 나도 밀양에 세워지는 송전탑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더더욱 이 투쟁이 그들의 일이 아닌 우리의 일이어야 한다. <밀양 아리랑>을 보고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그 시작이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