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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이스]엔딩 노트

마미 스나다, 2011

[초이스]엔딩 노트 대표 이미지

TV를 보다 ‘웰다잉’이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왔다. ‘웰다잉’이라는 이름으로 주최된 실버산업 박람회 광고를 보면서 죽음마저도 자본의 논리로 바라보는 사회에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무척이나 씁쓸했다. 웰다잉.... 직역하면 우습지만 잘~죽기 위해 상조에 미리 가입 하고 보험금을 다달이 부어야 하는 시대. 초라하지 않게 특별나게 죽음을 맞기 위해 또다시 돈을 벌어야 하는 팍팍한 이 사회에 다큐멘터리 ‘엔딩노트’는 죽음을 맞이하는 평범하지만 가치 있는 방법을 제안한다. 

정년퇴직 후 갑작스런 말기 암 판정을 받은 아버지 ‘스나타 도모야키’는 남은 생을 잘 정리하기 위해 엔딩 노트를 쓰기 시작한다. 일평생을 꼼꼼한 계획안에서 살아온 그에게 부주의로 태어난 막내딸 ‘스나나 마미’. 결혼도 하지 않고 별스럽게 사는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아버지의 ‘엔딩 노트’를 기록하겠다고 나선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이 다큐멘터리<엔딩 노트>다.

여기서 <엔딩 노트>를 할리우드 영화 <버킷 리스트>처럼 특별난 목록을 예상했다면 실망할지도 모르겠다. 엔딩노트라는 것이 고작 ‘손녀들과 놀아주기’, ‘자신의 장례식에 참여할 명단을 꼼꼼하게 작성하기’, ‘가족들과 여행하기’ 등, 거기에 조금 특별하다 할 수 있는 게 ‘야당에게 투표하기’와 ‘죽기 전에 세례받기’ 정도로 무척이나 소박하고 평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의 죽음을 담아낸 딸의 영상 또한 극적이거나 눈물을 짜내기 보다는 소박하고 심지어는 경쾌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이렇게 평범한 엔딩과정이 보는 이들에게 묵직하지만 특별난 감동을 자아내어 영화가 끝나도 관객석에서는 쉽게 자리를 떠나지 못하게 했다.

나 역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면서 뜻하지 않게 대상자들의 죽음을 목격하게 된 적이 있다.
한번은 주인공의 아버지, 한번은 주인공의 남편으로, 제작 과정에서 이들의 죽음을 이야기하는 것은 너무나 힘들었고 심지어 왜 내가 찍는 사람은 죽음과 관계되는지 죄책감마저 들었다. 영화 제작 과정 내내 스텝들과 어떻게 이 부분을 다룰 것인지 많은 질문과 고민을 안겨준 사건이었다. 그만큼 인간의 죽음은 관계한 모든 이들이게 크나큰 고통이자 슬픔, 그리고 두렵고 무서운 대상이다. 그러하기에 죽음은 영화 안에서 특별난 사건으로 혹은 영화의 클라이막스로 이용되어지고 그것이 픽션이 아닌 다큐멘터리 제작자들에게는 윤리적 고통을 주게 된다. 내 영화 안에서도 죽음은 결코 평범할 수 없었다.

그러나 <엔딩 노트>는 영화 안에서 이렇게 별난 죽음을 너무나 담담하게 이야기 하고 있다. 이는 죽음 또한 삶의 한 과정으로 평범하게 맞이하는 방법을 제시한 아버지의 노력과 가족들 또한 아버지의 뜻을 이해하고 함께 받아들였기 때문일 것이다. 이는 영화 안에서 아버지가 지인들에게 새해 연하장과 함께 장례식 일정을 함께 이야기 하는 모습에서, 노모에게 자신의 장례식 과정과 작별인사를 담담하게 전하는 모습으로 꼼꼼한 그를 닮은 아들과 함께 장례식 명단을 확인하는 모습 등에서 다양하게 찾아 볼 수 있다. 

덧붙여 이 영화가 묵직한 울림을 주는 또 하나의 이유는 무엇보다 사람을 대하는 그의 태도 때문이다. 영화의 후반부, 병원에서 맞이하는 마지막 여정에서 의식이 오락가락한 상태에서도 그는 끊임없이 그와 관계한 모든 이들이게 고맙다는 말과 사랑한다는 말을 반복한다.

<엔딩 노트>의 카메라는 남달랐다. 죽기 전 아내에게 마지막 사랑의 말을 전하는 장면에서 그리고 임종을 선언하는 장면에서도 담담하게 응시하는 카메라의 시선은 결코 선정적이거나 극적이지 않았다. 이러한 카메라 시선은 몇 년 전에 보았던 일본 다큐멘터리 <치즈와 구더기>에서도 느껴졌던 부분인데 어머니의 죽음을 다룬 다큐멘터리로 두 영화 모두 제3자가 아닌 가족이 감독이기에 가능한 부분일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영화(<치즈와 구더기>)후반부 감독이 어머니를 이어 텃밭 짓기를 시작한 것처럼 어찌 보면 죽음 이후에 무(無)가 아니라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고(<엔딩 노트>에서 손녀들처럼) 작별 과정에서 가족들에게 남겨진 아버지와의 추억이라는 유산과 무엇보다 ‘엔딩 노트’라는 뜻깊은 기록까지. 사람과 사람 사이를 잇는 관계가 있는 한 우리에게는 죽음이 끝이 아님을 이야기 하고 있다.

단순하지만 너무나 명료한 답을 준 <엔딩 노트>를 보면서 삶의 전 과정에서 맺어지는 모든 관계들에게 다시금 사랑한다는 말과 고맙다는 말을 반복하면서 살아야 함을, 그리고 ‘죽음’이라는 명제가 또다시 나에게 주어진다면 이만큼은 어렵지만 조금은 담담하게 다뤄보고 싶은 제작자로의 소망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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