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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이스]유예기간

김경묵,기진, 2014

[초이스]유예기간 대표 이미지

2004년 제정된 성매매특별법은 ‘성매매 피해자나 성을 파는 행위를 한 사람들의 보호와 자립’을 법의 목적으로 두고 있다. 하지만 정작 그 일을 하는 당사자 여성들은 자신들을 노동자로 인정해 달라고 주장하며 이 법에 저항해왔다. 언제나 숨죽여 살아온 그들의 목소리가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을 ‘보호’하겠다는 법의 실행과 함께 수면에 등장한 순간이었다. 이들의 주장에 세상은 수치스러워하며 응답하지 않았고, 여성부는 물론이고 여성의 권리를 외쳐온 여성단체들조차 입장을 표명하길 망설이고 있었다. ‘성노동자.’ 이 용어가 품고 있는 수많은 층위의 현실과 담론, 그리고 모순된 욕망들 앞에서 쉽게 확신에 찬 입장과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자들이 있을까. 하지만 그런 난감함이 이 여성들의 목소리가 한국 사회에 준 기회, 즉 이 민감하고 논쟁적인 사안에 대해, 아니, 그들의 생존권에 대해 진지하게 질문하고 논의할 기회를 외면해도 된다는 변명의 이유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잘 알지 못하거나 대면하지 않으려고 하는 동안 또다시 망각 속으로 흩어져버린, 그러나 지금도 이 땅에 존재하고 있는 사람들. 2011년 영등포 성매매 집결지의 강체철거가 결정되자, 그곳에서 일하던 성노동자들은 목숨을 걸고 싸움을 거듭하지만 그럴수록 세상은 그들의 외침을 더욱 소외시킬 뿐이다. <유예기간>은 그들에 대한 기록이자 질문이다. 과연 우리 중 누구에게 그들의 노동을 판단할 권리가 있는가.

이 기록은 우리가 익히 보았던 생존권 투쟁의 영화들과 다르다. 인터뷰 대상자들이 얼굴을 드러내기 꺼린다는 영화적 한계를 <유예기간>은 자신의 문제의식을 적확히 지시하는 영화적 형식으로 전환한다. 영화는 성노동자들의 얼굴을 보고 싶어하는 우리의 천박한 호기심을 차단하는 대신, 그간 누구도 귀 기울이지 않았던 그들의 목소리를 먼저 들으라고 요구한다. 우리는 영화를 보는 내내 얼굴 없는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사연의 내용과 상관없이, 육체로 물화 되지 않은 목소리 자체의 섬뜩함과 간절함과 명징함이 여기 있다. 영화는 이들의 개별성을 얼굴이 아닌 목소리를 통해 부여하고 그때 우리가 화면에서 보는 것은 그들이 일하는 터전의 생경한 시간적 흐름이다. 이들의 공간은 재개발로 화려해진 도시의 고층 건물들 사이에 홀로 시간이 멈춰진 것처럼 고립되어 있다. 다닥다닥 붙은 방에 앉아 손님을 부르는 그들의 실루엣, 집회현장에서 마스크와 모자, 소복과 가발을 뒤집어쓰고 울부짖는 그들의 풍경에는 어딘지 초현실적인 이물감이 서려 있다. 흐릿하게 뭉개져 현실과는 상관없이 자기만의 속도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는 이미지들과 그 위를 부유하는 또렷한 목소리, 그러니까 들리는 것과 보이는 것의 충돌과 분리는 이 영화가 뒤늦게 도착한 원혼들의 이야기인 것 같다는 착각에 빠지게 한다. 그러나 단지 착각일 뿐일까? <유예기간>의 형식은 이미 그 자체로 지금 이 땅의 성매매 여성들이 놓인 사회적인 처지를 반영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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