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초이스]나는 중식이다

정중식, 2014

[초이스]나는 중식이다 대표 이미지

<나는 중식이다>는 첫 시작에서 제목 그대로 “나는 중식이다”라 자신을 소개한 남자가, 자신의 삶에 대해 두서없이 이런저런 말들을 풀어놓는 영화다. 그러니까 주인공인 감독이 30대에 진입하면서 자신의 20대를 돌아보고 지금의 현실을 담담히 서술하는 에세이 영화라 할 수 있다. 굳이 기술적으로 장르를 구분하자면 극 영화보다는 다큐멘터리에 가까울 것이고, 이런저런 영화제에서도 다큐멘터리로 소개됐다. 그러나 이 영화의 인물인 ‘중식’이 감독 그 자신임에도 불구하고, 감독이 스스로를 연기하는 것처럼 보이는 지점들이 있다. 이것은 일종의 ‘허구화’를 거친 캐릭터 같다는 느낌이 있다. 이 영화의 매우 아이러니한 특성 중 하나다. 

이것은 우리가 TV에서 익숙하게 접하는 소위 ‘리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서 흔히 관찰되는 특징들이기도 하다. 그 프로그램들에서 수많은 배우와 개그맨들이 다른 캐릭터가 아닌 자기 자신을 연기한다. 우리는 그것이 실제 그들의 모습과 어느 정도 겹치면서도 그것이 실제가 아님을 안다. 그것은 연기이며 일정 부분 과장 혹은 허구화된 것이다. ‘캐릭터’가 과도하게 드러내는 ? 그렇기에 웃음을 유발하는 ? 어떤 특질들 사이로, 그 사람 고유의 개성과 인격의 특정 부분들은 효과적으로, 안전하게 감춰진다. 허구화가 발생하는 건 이 지점이다. 연기와 실제의 미묘한 간극, 혹은 그 경계선 위에서 펼쳐지는 아슬아슬한 ‘밀당’이 쾌락의 포인트가 된다. <나는 중식이다>는 그런 식의 TV 프로그램 포맷을 따르지는 않지만, 우리가 이미 익숙한 그런 특징들을 어느 정도 화면에 불러온다. 화면의 모든 부분들, 심지어 익살스럽고 다소 엉뚱한 모든 모습들은 감독이자 주인공인, 그리고 실제로 존재하는 ‘중식’이라는 사람의 것이다. 그는 제목에서부터 고유명사인 자신의 이름, ‘중식’를 선언하고 제목으로까지 사용한다. 그런데 이러한 과도한 드러냄과 강조가 익살스럽고 엉뚱한 고백과 행동들을 통해 표현되는 사이, 일정한 부분들은 효과적으로 은닉되고 숨겨진다. 바로 이 지점에서, 감독 자신인 ‘중식’이라는 실제 인물이 일정 부분 ‘캐릭터’가 되는 허구화가 발생한다. 

그리고 우리가 중식이라는 사람을 안다고 생각하게 되는 순간, 그의 실제 모습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다는 사실에 동시에 직면한다. 그리고 그 순간 특정 개인으로서의 ‘중식’은 우리 시대 청년의 모습을 보여주는 보편성을 획득한다. 

영화에서 “나는 (무엇)이다”라는 선언이 총 세 번 나온다. (제목까지 합치면 네 번이다.) 그의 이름은 ‘중식’이다. 그는 ‘노가다꾼’이다. 그리고 한참 뒤 마지막에야 제시되는 선언에서 그는 ‘작곡가’이다. ‘중식’이라는 고유명사로서의 존재는 ‘노가다꾼’으로서 생계를 해결하며, 인디 밴드의 뮤지션이자 ‘작곡가’로 활동한다. 그러나 이름은 부모가 일방적으로 준 것이기도 하며, 일반적으로 직업이 사람에 부여하는 정체성이라기에 그의 생계 해결책은 임시적인 성격이 더 강하다. 그가 스스로 선택했고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정체성은 정작 그의 삶을 물질적 토대를 해결해 주지 못하는, 오히려 자신의 존재와 정체성을 불안정하게 만드는 요소이다. 

영화는 ‘중식’이 이 셋의 정체성을 스스로 통합해 가는 과정을 고백하는 기록물이지만, 동시에 이 정체성들이 통합되거나 조화되지 못한 채 계속 불안정할 수밖에 없음을 보여주는 근거이기도 하다. 관객에게 계속 말을 걸고 엉뚱한 면모를 드러내는 이 남자의 웃긴 모습이, 시간이 지난 후 오히려 씁쓸함으로 되새겨지며 계속 여운으로 남는다. 그리고 정작 영화에선 덤덤했던 ‘나는 중식이다’, ‘나는 노가다꾼이다’, ‘나는 작곡가다’라는 선언이 실은 덤덤함을 가장한 치열함으로 다시 해석된다. 그냥 스쳐 지나는 듯했던 가벼운 고백들이 뜻밖의 무게를 안고 계속해서 여운을 주며 머리에 맴돈다. 내게는 이것이 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이자, 글을 쓸 수밖에 없도록 만든 동기였다.

관련 영화인

불러오는 중입니다.

관련 영화글

불러오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