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이스
[초이스]야만의 무기
이강길, 2010
얼마 전 강릉에서는 의미 있는 일이 하나 있었다. 골프장 건설에 반대하며 시청 앞에서 500여 일 가깝게 농성 중이던 강릉시 구정면 주민들이 농성 비닐천막을 자진철거 했다. 강제철거도 아닌 자진철거. 이유는 주민들의 기나긴 싸움 끝에 골프장건설이 전면 백지화되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국가나 지방정부가 주민들의 반대를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밀어붙여 온 사업들의 전례를 볼 때 찾아보기 어려운 일이기도 하거니와 만 2년 가까운 주민들의 싸움이 의미 있는 승리가 되어 더더욱 기쁘기만 한 일이다. 그러나 이 기쁨도 잠시. 강릉과 가까운 삼척은 핵발전소 예정 후보지가 되어 핵발전소를 유치하려는 지방정부와 핵발전소 유치반대를 넘어 핵에너지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를 요구하는 주민들과의 싸움이 이어지고 있다. 핵발전소 유치를 주도하고 있는 삼척시장의 주민소환투표는 무산되었지만, 지난해 재보궐선거에서 핵발전소 유치를 반대하는 시의원 한 명이 당선되었고, 주민 찬반투표 실시를 전제로 시의회가 유치신청을 동의한 것이기에 주민들의 반대의견을 묵살하기만 해왔던 지방정부의 핵발전소 유치에 대한 이후의 판단과 선택에 지역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지역발전이라는 허울과 국책사업이라는 미명하에 골프장과 핵발전소 건설로 신음하고 있는 강원도의 현실을 보고 있노라면 이강길 감독의 다큐멘터리 <야만의 무기>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영화 <야만의 무기>는 전북 부안군 위도에 핵폐기장을 설치하기로 결정되면서 시작된 부안군민들의 기나긴 싸움을 그린 작품이다. 부안주민들의 의견은 한마디도 듣지 않은 채 유치신청을 한 부안군수 그리고 주민들의 반대는 님비현상으로 치부해버리고, 어마어마한 지원금이 쏟아질 것처럼 거짓말까지 흘리며 주민들을 회유·분열시키고, 경찰을 이용하여 집회현장의 주민들에게 직접적인 폭력을 행사하며 밀어붙이는 정부의 모습은 우리에게 더 이상 낯선 모습이 아니다. 가깝게는 4대강부터 멀게는 새만금간척사업까지 국책사업이라 강조할수록 더 익숙하게 접할 수 있는 정부의 태도와 방식이다.
결국 핵폐기장문제는 유치신청도시들의 막가파식 찬성률 높이기 경쟁 속에 ‘민주적인 주민투표’를 통해 경주유치가 결정되었다. 부안에 들어설 것 같았던 핵폐기장이 경주로 가게 되어 부안군민들은 이제 안심하고 잘 수 있게 되었을까? 주민들의 직접투표로 결정되었으니까 핵폐기장 건설 자체는 아무런 문제가 없게 된 것일까? 5년 전 압도적인(?) 찬성률로 핵폐기장 유치를 결정한 경주에서는 무사히 공사가 진행되고 있을까?
부안에서 활동하며 새만금간척사업과 부안핵폐기장건설사업을 오랫동안 직접 지켜보며 영화로 기록해온 이강길 감독의 종합보고서와도 같은 <야만의 무기>는 부안핵폐기장을 상식 이하의 비민주적 방식으로 관철하려는 정부의 태도와 그것에 반대하는 부안군민들의 3년간에 걸친 투쟁을 기록하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핵폐기장은 부안 위도 뿐만이 아니라 이땅 어디에도 안된다는 부안주민들의 목소리를 전하는 마이크이며, 긍정적인 부분만 과장된 채 그 위험성은 언급되지 않는 ‘핵에너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제안하는 발제문이며, 새만금에서 시작되어 4대강에 이르기까지 돌이킬 수 없는 파괴를 가져올 대규모 국책사업을 국민동의 없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국가권력을 심판대에 세우는 도발적인 고소장이기도 하다.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야만의 무기>는 ‘야만스러운 무기’ 또는 생명과 환경따윈 아무것도 아니라 생각하는 ‘야만적인 것들이 사용하는 무기’일 수도 있다. 영화의 제목이 어떤 쪽이어도 상관은 없다. 야만의 무기는 결코 야만적인 얼굴을 하고 나타나지는 않기 때문이다. 다시한번 언급하지만 핵폐기장의 경주 유치결정은 대의민주주의의 하이라이트라고 할수 있는 “투표”로 결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