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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이스]아프지 않아

김보영, 2013

[초이스]아프지 않아 대표 이미지

이보다 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공포가 있을까? 작품 <아프지 않아>는 이가 흔들리기 시작한 소년의 무서운 환상 속의 며칠간을 그린 작품이다. 

수도꼭지에서 뚝뚝 떨어지는 물방울. 횅하게 넓은 화장실 세면대 앞에 서서 이를 만져본다. 흔들리는 이빨을 확인한 순간 공포가 시작된다. 이를 뽑는 날이 달력에 표시된다. 그 날만큼은 비장한 각오가 필요했다. 치과 하면 떠오르는 ‘지잉’하는 날카로운 칼날이 돌아가는 소리와 아이들의 울음 섞인 비명소리는 지금이 되어도 공포의 소리다. 그래서 이가 흔들리면 그 사실을 엄마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던가. 

주인공 소년은 사형집행일이 행여 앞당겨질까 행동 하나하나가 조심스럽다. 커다란 얼굴, 오밀조밀하게 모여있는 눈코입, 짧은 팔과 다리는 주인공의 이러한 공포가 작은 움직임에도 한눈에 다가온다. 소년은 떨고 있다. 오늘따라 밥상에는 먹음직스런 고기가 놓여있다. 한입 베어 무는데 생각보다 질기다. 이가 아프다. 그러나 이가 아프다는 사실을 들킨다면? 그 날이 앞당겨질 수 있다. 눈에 힘주어 웃어가며 고기를 맛있게 먹는다. 다행히 무사히 넘어갔다. 혹시 쉽게 빠지는 게 아닐까? 이리저리 흔들어본다. 장난감 박스를 뒤적거리니, 실과 테니스공이 나온다. 어디선가 이렇게 빼는 걸 본 적이 있다. 한번 해볼까? 실에 이를 걸어보니, 이건 정말 교수대에 놓여 있는 이빨이다. 테니스 채를 잡은 손이 떨린다. 도저히 용기가 나지 않는다.

밤이 왔다. 밤은 더 잠이 오지 않는다. 이리 뒤척 저리 뒤척, 잠을 설치고 학교에 간다. 흔들리는 이를 혀로 살짝 건드려본다. 잠이 온다. 선생님이 갑자기 교수대의 밧줄로 변해서 나에게 다가온다. 밧줄이 나의 목에 걸리는 순간 잠에서 깬다. 지독한 악몽이다. 

내일은 사형집행일이다. 소년은 더 초조하다. 조명을 껐다. 불안하다. 조명을 켠다. 자리에 누워본다. 잠이 안 온다. 엄마 소리가 들린다. 찰캉 찰캉하는 소리는 분명 열쇠 소리다. 사형대로 끌려가는구나. 밧줄에 목이 걸리고, 사형이 집행된다. 공포의 순간 정신을 차린다. 꿈이었다. 끔찍한 악몽이다. 

이번엔 무언가 다가오고 있다. 코가 나에게 오늘 반찬을 알려준다. 고기, 게, 새우. 모두 내가 좋아하는 것이 아닌가. 새우가 와서 나를 덮는다. 게들도 나타났다. 고기가 나를 부른다. 고기 손에 이끌려 부엌으로 나간다. 먹을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엄마는 해물을 갈아 죽을 만들어주셨다. 사형집행인인 줄 알았던 엄마에 대해 조금 생각이 달라졌다. 

하지만, 곧 다가올 집행일에 소년은 더 초조하다. 화장실은 온갖 상상의 공간이 된다. 수도꼭지를 틀었다, 잠갔다, 변기 물도 괜히 내려본다. 그러한 초조함은 엄마가 소년을 방으로 끌고 가면서 현실이 된다. 이윽고 교수대에 선 이빨. 줄이 매어지고, 절벽 위에 나란히 섰다. 그리고 집행된다. 

다음날. 식탁 위에는 여느 때와 변함없이 해물들이 놓여있다. 해물에는 손이 가지 않는다. 집행일이 지나갔지만, 소년은 아직 마음이 편치가 않다. 유리에 비춰본 이가 없는 자신의 모습은 허전함과 함께 친구들의 비웃음이 걱정된다. 학교를 가다 그전 날의 소녀를 마주쳤다. 앞니가 빠진 소녀가 웃음을 짓고 뛰어간다. 그제야 소년도 미소를 짓는다. 소년에게 친구가 생겼다. 

이가 흔들리는 소년의 공포는 온갖 환상을 만들어낸다. <아프지 않아> 속 소년의 환상은 애니메이션으로서 가지는 장점을 잘 보여준다. 그리고 그것은 언어유희를 한껏 살려내고 있다. 교수대에 서 있는 이빨의 모습, 절벽 위에 서 있는 것 같은 소년의 심정, 냄새에 이끌려 고기의 손을 잡고 방을 나서는 소년의 모습이 그 예이다. 

또한 집안의 공간들은 소년의 감정과 함께 적절하게 사용되어 진다. 혼자 있는 방안은 도피의 공간이며, 때로는 문제를 혼자 해결해보고자 하는 용기가 솟는 공간이기도 하다. 또한 공포가 현실화되는 공간이다. 우리는 대부분의 시간을 방에서 보낸다. 화장실은 소년의 초조함이 드러나는 공간이다.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혼자 있을 수 있는 공간인 화장실은 불안함을 마음껏 드러낼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식당은 엄마(가족)의 따뜻함을 확인할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자신의 상태를 숨길 수 없어 눈치를 봐야 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작품 속 음악과 사운드는 움직임과 함께 자제되어 있다. 불필요한 음악은 사용되지 않았고, 절제되어 있는 사운드 속에 우리는 소년의 움직임에 보다 집중할 수 있다. 소년의 움직임은 결코 과장되어 있지 않음에도, 눈의 깜빡거림, 작은 입 모양, 떨리는 팔로 금새 소년의 감정을 눈치챌 수 있다.

소년의 이야기는 어릴 적 누구나 한 번쯤 겪어보았을 공포담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작품에 공감을 주는 요소는 단순히 ‘이빨 뽑기’에 있지 않다.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이가 빠진 소녀와 소녀를 보고 드디어 웃는 소년을 보며 우리는 문득 ‘이빨 뽑기’에 머물러 있던 시간이 빠르게 흘러, 현실의 나로 오는 경험을 하게 된다. 맞다. 우리가 실은 더 두려웠던 건 어떤 사건이 주는 공포가 아니라, 그것을 함께 이해해줄 친구가 없을 거라는 사실이니까. 소년이 비로소 웃을 때, 공포로 얼어있던 마음도 함께 녹는다. 우리는 소년이 그렇게 조금씩 성장해나가리라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우리가 그래 왔듯이 말이다. 

그리고 소년의 환상들이 너무 귀엽고 웃겨서 그만 큰 소리로 웃어버렸을 때, 마음속 한켠에 남아있던 소년에 대한 미안함도 그의 미소와 함께 날아가 버린다. 그렇게 이제 내 마음속에 있는 작고 떨리는 소년에게도 미소를 지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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