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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이스]굿바이, 평양

양영희, 2006

[초이스]굿바이, 평양 대표 이미지

파란만장한 ‘나’의 가족사, 아니, 아직 애도되지 못한 죽음, 해결되지 않은 상처, 여전히 진행 중인 역사 앞에 ‘나’의 카메라를 들이미는 행위에는 어떤 소망이 함축되어 있을까. 카메라는 현실에서는 응어리졌던 ‘나’의 저 깊은 슬픔을 과연 감당해낼 수 있을까. 카메라는 현실에서 내가 도저히 가늠할 길 없었던 그들의 심정을 단 한 순간이라도 헤아릴 수 있을까. 그 오랜 시간 ‘나’의 눈이 외면해온 시간들을 카메라의 응시로 과연 얼마나 껴안을 수 있을까. 

<디어 평양>에 이어 <굿바이 평양>에서도 양영희 감독은 일본과 북한을 오가며 그 사이 어딘가에서 흩어진 채 살아온 자신과 가족들의 삶을 찍는다. 제주도에서 태어나 15살에 일본으로 건너온 아버지는 오사카에서 어머니를 만나 결혼을 했다. 조총련계 간부가 된 아버지는 1970년대에 고작 십 대였던 아들 셋을 북한으로 보냈고, 양영희 감독은 오빠들과 떨어져 홀로 유년기를 지냈다. 북한에서 가정을 꾸리고 사는 오빠들을 위해 어머니는 30여 년간 온갖 생필품들을 비롯해 결혼자금, 생활비 등을 보냈다. 아버지의 선택과 신념을 받아들이지 못한 양영희 감독은 <디어 평양>에서 그 아버지에게 카메라를 돌려 끈질기게 질문하고 결국 아버지는 미약하게나마 스치듯이 진심을 털어놓는다. 그리고 감독은 아버지를 받아들인다. 여기에 화해 혹은 치유라는 표현을 쓰는 건 말로는 다 설명할 수 없을 이 가족사의 상처를 제3자의 시선으로 성의 없이 봉합하는 일이 될 것이다. 다만 감독은 적어도 자신이 처한 이해 불가능한 현실을 마음으로 받아들이며, 실패가 예정되어 있을지라도 아버지의 자리에 서 보려고 애쓰고 있다. <굿바이 평양>에서 그녀는 이제 평양 가족들의 자리, 특히 자신을 똑 닮은 어린 조카 선화의 자리에 서보려고 한다. 

둘째 오빠의 두 번째 결혼에서 태어난 선화는 5살이 되던 해에 엄마를 여의고, 오빠는 곧 세 번째 결혼을 한다. 양영희 감독은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그 어떤 이데올로기적 억압이나 삶의 조건에 영향을 받지 않고 밝고 영특하게 자라는 선화를 보며 부러움과 고마움을 느낀다. 양영희의 카메라는 영화 속 그 어떤 인물보다도 선화에게 다가갈 때, 가장 활기를 띠고 친밀해지며 거리를 의식하지 않는다. 선화가 ‘수령님’에 대한 시낭송을 할 때조차, 선화의 생기, 혹은 그 생기로움을 바라보는 감독의 즐거운 시선은 이념의 엄숙하고 딱딱한 무게로부터 자유롭다. 하지만 그녀가 자신의 오빠들을 카메라에 담을 때, 우리는 “음악과 커피를 사랑하는 큰 오빠는 북한으로 온 후 우울증에 시달려왔다”는 식의 덤덤한 내레이션을 들을 수 있을 뿐, 도무지 그 오빠들의 속내를 들여다보기 어려우며, 거기 드리운 그림자를 피하지 못한다. 감독이 그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도 우리는 알지 못한다. 대신 우리는 <굿바이 평양>을 보는 동안, 이 영화는 침묵에 더 많은 것들이 담겨있음을 느끼게 된다. 이를테면 큰 오빠의 공허한 얼굴이 카메라에 빗겨가는 순간, 선화가 감독과 대화를 나누다 갑자기 카메라를 꺼달라고 말하는 순간, 아버지가 감독이 요청하는 노래를 부르지 않고 한참을 눈을 감고 있던 순간(감독은 그때, “아버지 무슨 생각 해요?”라고 묻지만 우리는 그의 대답을 듣지 못한다.)에 우리는 말이 결코 닿을 수 없는 회한, 갈등과 같은 마음의 돌기들을 떠올린다. 이 비극의 역사를 몸소 살아낸 이들의 저 복잡하고 아린 속을 우리는 끝내 만질 수 없으며 카메라도 더 파헤치려고 하지 않는다. 삶이 있고 그 삶을 버티게 했던 신념이 있었고, 그 신념으로도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삶의 외로운 층위들이 있었고, 그리고 결국 죽음을 피할 길은 없다는, 지극히 추상적이지만, 어찌할 수 없이 수용해야만 하는 어떤 이들의 삶의 고독한 행로를 그저 무력하게 짐작할 수 있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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