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이스
[초이스]왕자가 된 소녀들
김혜정, 2011
여기 한 시대를 풍미했던 스타가 있다. 이제 그녀들은 예순, 여든이 훌쩍 넘은 나이지만 깊게 주름진 얼굴에 짙은 화장으로 얼굴을 꾸민다. 그리고 무대에 오른다. 그 곁에는 여전히 박수 치고 환호해 주는 팬들이 있다. 영화 <왕자가 된 소녀들>은 1950년대 여성국극에 평생의 시간과 열정을 쏟아부은 배우와 팬들의 이야기다.
임춘앵, 조금앵, 이옥천, 김진진… <옥중화>, <햇님달님>, <공주궁의 비밀>, <무영탑>. 역사의 뒤안길에서 조용히 잊혀간 이들의 이름을, 그리고 여성국극을 기억하는 이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여성국극은 1950년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공연이었다. 남장여자들이 펼치는 낭만적인 사랑 이야기에 공연장은 수많은 열성 팬들로 가득 들어찼고 배우들은 오로지 여성국극에 매료되어 에너지 넘치는 공연을 펼쳐 보였다. 그 시절, 이들은 지금의 아이돌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환호를 받은 스타들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여성국극이 당대의 사회상과는 다른 독창적인 트렌드를 이끌었다는 점이다. 영화 속에서 보이는 다양한 에피소드들, 팬들의 요청으로 가상결혼식을 올리고, 학업도 결혼도 잊은 채 전국을 누비고, 동성애자들끼리 하와이에 이민을 가는 등 전성기 때의 여성국극은 그 안에 함의된 다양한 가치와 이념을 드러낸다. 그것은 여성들로만 이루어진 독특한 문화에서 형성된 것으로 사회의 기존 보수적 가치와 대립하고, 견고한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으로서의 한계를 뛰어넘었고, 그 옛날에도 동성애 문화가 존재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렇게 한 시대를 호령했던 여성국극도 60년대 들어 쇠퇴의 길에 들어선다. 그리고 다른 전통문화와는 다르게 보존되지 않고, 사람들의 기억 속에 서서히 잊혀 갔다.
영화는 여성국극의 과거와 현재를 보여주며 사라져가는 것에 대한 아쉬움을, 잊혀지는 것에 대한 연민을 드러낸다. 그리고 그녀들은 왕자를 기다리는 소녀가 아닌 스스로 왕자가 되는 길을 선택하는 주체적 여성으로서 자신들의 삶을 충족시켰고, 당대 문화적 아이콘으로 남을 수 있었다.
작년 8월, 최고의 미남배우로 여성국극의 최고 스타였던 배우 조금앵 씨가 별세했다. 많은 이들이 이 영화를 통해 그녀들의 열정을, 그리고 여성국극의 과거와 현재를 기억해주길 바란다. 여전히 그녀들의 삶은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