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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이스]편지

이현정, 2014

[초이스]편지 대표 이미지

*이 글에는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두 개로 나뉜 화면에 두 여성의 얼굴이 클로즈업 되어 있다. 서로를 마주보는 듯한 두 사람, 그중 한 여성이 화면 밖에서 들리는 신호에 맞추어 ‘편지’를 읽는다. 그 어떤 설명도, 자막도 없이 낯선 언어(아마도 베트남어)가 영화를 채운다. 맞은편의 여성은 가만히 눈으로 ‘편지’를 읽고 있다. 편지를 읽는 목소리는 떨리다가, 곧 울먹임이 된다. 관객은 그 내용을 모른 채 3분여 동안 그녀의 표정 변화만을 볼 수밖에 없다. 이내 맞은편에 앉은 여성이 한국어로 ‘편지’를 읽기 시작한다. 베트남어로 읽히는 ‘편지’ 역시 아직 끝나지 않아 두 가지 다른 언어는 마치 돌림노래처럼 들린다. 그제야 관객은 편지의 내용을 알 수 있다.

“이주의 시대, 행복한 결혼생활을 꿈꾸며 19살의 후안 마이는 베트남에서 한국으로 왔다.” 영화는 위와 같은 자막으로 시작된다. 이주, 행복한 결혼, 19살. 곱씹어보면 어울리지 않는 단어들이지만, 한국의 수많은 국제결혼 광고엔 자주 보이는 조합이다. 때로는 ‘말 잘 듣는’, ‘처녀인’ 같은 단어들이 덧붙여지기도 한다. 거기에는 사람이 없다. ‘편지’의 화자인 후안 마이는 이렇게 썼다. “당신은 저와 결혼했지만, 저는 당신이 좋으면 고르고 싫으면 고르지 않을 많은 여자들 중에 함께 서 있었던 사람이었으니까요.”

‘고르지 않아도 그만인 사람들’ 사이에서 골라진 열아홉 베트남 여자는 행복한 결혼을 꿈꾸었다. 대단한 꿈은 아니었다. 완벽하지 않은 두 사람이 만나 가정을 이룬다는 것을 인정하고,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이야기하고 노력하는 것. 그녀는 결국 그 꿈을 이루지 못했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싶다는 소망 역시 이룰 수 없었다.

‘편지’를 읽는 여성들은 울먹인다. 카메라는 편지를 읽는 내내 여성들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다. 소리 내어 편지를 읽는 건 눈으로 읽을 때보다 더 큰 울림을 준다. 아마 혼자가 아니라, 듣는 누군가와 함께하기 때문일 것이다. 편지가 낭독되는 동안, 편지를 읽는 이들도, 편지를 듣는 관객들도, 한줄한줄 꾹꾹 눌러쓴 그녀의 삶을 떠올리게 된다. 편지 중간중간 반복되는 ‘당신은 아세요?’ 라는 물음은 열아홉이란 어린 나이에 남편 말곤 아는 이 하나 없는 낯선 땅에서 겪었을 외로움과 답답함을 느끼게 해준다. 편지는 이렇게 끝난다. “당신은 내가 쓴 이 글씨가 무엇인지 알지도 못할 텐데요.”

영화의 화면은 내내 분절되어 있다. 같은 공간에서 촬영한 장면이지만, 두 대의 카메라는 편지를 읽는 여성 각각을 비춘다. 같은 공간, 다른 언어. 어떤 부부는 그런 삶을 살았을 것이다. 서로 바로 옆에 있지만 서로의 언어도 마음도 이해할 수 없는 채로 말이다. 

편지 낭독이 끝난 후, 편지를 쓴 다음 날 후안 마이가 남편에게 무참히 살해되었다는 말이 덧붙여진다. 그리고 영화는 편지를 다시 한 번 읽는다. 

2013년 기준, 우리나라에서 국제결혼은 전체 결혼의 8%를 차지하고 있다. 적지 않은 비율이지만, 여전히 한국사회는 이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다. 편견을 줄이기 위해 만들어진 ‘다문화’라는 말은 어느새 청소년들 사이에 비하의 언어가 되어 쓰이고 있고, 결혼이주여성에 대한 가정폭력 사건은 심심찮게 들려온다. ‘가족’이라는 이름하에 폭력은 묵인되고,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국가의 보호도 제대로 받을 수 없다. 2015년, 8년이 지나서야 관객들에게 배달된 이 편지는 우리에게도 묻고 있는 듯하다. “당신은 아세요?”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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