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이스
[초이스]도쿄 갓파더스
곤 사토시, 2003
궁시렁쟁이 40대 아저씨, 덩치 크고 나이 먹은 트렌스젠더, 반항기 가득한 10대 가출 소녀. 도대체 어울릴까 싶은 이 희한한 조합의 노숙자 3인방이 과연 어떤 이야기를 보여줄 수 있을까?.
더 나을 것도 없는 같은 노숙자 주제에 사사건건 잔소리를 해대는 40대 아저씨 `긴`과 이 꼴이 못마땅한 가출 소녀 `미유키`는 크리스마스인 오늘도 어김없이 티격태격 싸움질을 하고 있다. 싸움도 말릴 겸, 트렌스젠더 `하나`는 이 둘을 데리고 미유키를 위해 눈 여겨둔 크리스마스 선물을 찾으러 분리수거장으로 향한다. 그런데 쓰레기를 뒤지던 3인방은, 점 찍어둔 선물은 웬걸 얼굴에 점이 있는 작디작은 갓난아기를 발견하게 된다. 놀람과 기쁨과 곤란이 한 공간에 섞인다. 엉킨 실타래 같은 각자의 삶으로부터 도시의 틈새까지 도망 온 그들의 구질구질한 일상 속에, 또 하나의 실뭉치가 비비고 들어온 것이다.
긴과 미유키는 흔치 않게 한마음이 되어 한사코 거부하지만 씩씩하고 감수성 넘치는 트렌스젠더 하나상의 다소는 과격한 시위로 결국 이들은 아기의 부모를 직접 찾아주기로 결정하게 된다. 사랑을 버리거나, 혹은 잃거나 또 사랑에 내몰려 스스로를 버린 그들이 작은 아기에게 자신을 나누기로 선택을 한 순간, 별것 없던 삶 속에서 사소하고 특별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나와 무관한 한 생명의 행복을 위해 동분서주 걷고 달리는 사이 각자들의 엉킨 과거에 실마리가 한 가닥씩 풀려가고 이들의 삶에도 생명력이 차올라 간다.
한국 내 상영 제목인 <크리스마스에 기적을 만날 확률>은 매우 잘 지어진 이름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야기 내내 크고 작은 행운과 우연들이 이들을 축복해 주고 이끌어 주지만 도무지 억지스럽게 느껴지거나 눈살이 찌푸려지지도 않는다. 오히려 이 사소한 행운들이 쌓고 쌓이며 점점 커지는 장면들은 그럴듯하니 시기적절하게 여겨진다. 마치 그동안 막혀 있던 세 명분의 행운이 이날 한 번에 터져나 오는 듯하더니 결국엔 기적을 일으켜 아기를 지켜내는 장면에 와서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것이다.
故 곤 사토시 감독의 애니메이션들 대부분이 그러하듯 <도쿄 갓파더스>도 시나리오와 연출이 굉장히 치밀해 한 치의 틈이나 흠을 찾기가 힘들지만, 그 의도와 즐거움은 친절하게 느껴질 만큼 알아채기 쉽다. 화면 곳곳에는 재미있는 요소들이 디테일하게 뿌려져 있고 자잘한 이야기 도구들이 `보기 좋게 숨어` 있어서 잠시도 눈을 떼기가 싫어진다.
그래서 보통은 원작의 재미를 살리기 위해 더빙판은 찾지 않는 편이지만 이 애니메이션만큼은 더빙판이 없다는 것에 아쉬움이 생긴다. 자막을 읽어 내용을 따라가는 것 못지않게 영상에서 주는 즐거움이 참으로 크기 때문이다.
아마도 <도쿄 갓파더스>는 <쓰리 갓파더스> 라는 1948년 제작된 맥시코 영화에서 모티브를 잡아온 것 같다. 이 영화는 세 명의 은행 강도가 황무지에서 도망 중에 죽어가는 여자에게 아기를 부탁받은 후 아기의 생명을 위해 자신들을 희생해 나가고 결국엔 구원에 이른다는 내용이다. <도쿄 갓파더스>에서 나오는 불행한 인물들은 대체로 다른 형태의 같은 결핍을 갖고들 있다. 그리곤 곤고하고 사랑 없는 현실로부터 달아나 자신만의 세계에서 살아가거나 죽으려 한다. 이건 마치 내가 살고 있는 세상,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을 그저 풀어낸 듯 평범하고 불쌍하다. 그런데 주인공들이 너를 위해 나를 내어놓자 우리의 결핍이 채워진다. 애정이 그 공백을 메꾸어 가고 칙칙한 여백 속에 색깔이 차오른다. 크리스마스에 찾아온 그들만의 아기 예수는 그렇게 노숙자 3인방의 삶에 구원을 던진다. 그리고 유쾌하게 잡아챔으로써 우리에게도 희망을 품게 해준다. 따뜻하다.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