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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이스]불안

민환기, 2012

[초이스]불안 대표 이미지

모두들 불안하다고 말한다. 불안은 불안정에 대한 두려움, 불확실에 대한 두려움이다. 아이들은 아무리 공부를 열심히 해도 경쟁에서 밀려날까 불안하고, 명문대에 들어가도 좋은 직장에 들어갈 수 있을지 몰라 불안하다. 직장인들은 언제 일자리를 잃을지 몰라 불안하고, 어른들은 노후가 불안하기만 하다. 누구에게나 삶은 불안한 것일 텐데 삶은 “하나의 욕망을 또 다른 욕망으로 하나의 불안을 또 다른 불안으로 바꿔가는 과정'(알랭 드 보통)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다음, 네이버 등 대기업을 그만 둔 젊은이들이 모여 윤리적 패션을 꿈꾸는 사회적 기업 `오르그닷`을 설립한다. 환경, 노동, 디자인, 협력, 혁신 등의 가치를 내세운 `오르그닷`은 봉제노동자와 디자이너의 착취, 환경 오염에 기초한 기존 의류산업에 반대하며 윤리적 패션을 내세운 의류플랫폼 사업을 시도한다. 하지만 호기롭게 화려한 패션계에 발을 내딛은 이들의 앞날이 순탄치만은 않다. 그들이 추구하는 가치를 인정받는 것과 상품으로서의 제품을 더 많이 판매하는 일은 좀처럼 일치하지 않고, 그들이 내놓는 새로운 아이디어와 실험들은 번번이 실패한다. 곧 이들은 ‘회사’로서의 오르그닷의 생존을 앞에 두고 다양한 고민과 갈등에 직면한다. 가치를 고수하며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를 할 것인가? 적자를 벗어나 회사의 유지와 생존을 위해 현실과 타협할 것인가? 대표는 적자를 내는 회사의 불안정함을 내세우고, 멤버들은 권위와 일방적인 소통을 강요하는 대표가 못마땅하다. 

영화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분주한 이들의 움직임으로 가득한 사무실 공간에는 곧 긴장이 감돌기 시작한다. 대안적인 기업, 윤리적 경영을 꿈꾸는 이들의 시도는 기존 패션 브랜드가 잠식하고 있는 시장에서 좀처럼 기회를 얻지 못하고, 생존과 타협, 신념과 현실의 갈림길 앞에서 갈등하기 시작한다. 첨예한 논쟁과 감정이 폭발하는 회의 공간, 대표에 대한 불만이 토로되고 ‘내가 하고 싶었던 게 이거였을까’ 자조하는 술자리 등 카메라는 곧바로 이들의 심각한 갈등 안으로 들어가 한 시간 반 동안 집요하리만치 그들을 관찰한다. 2010년 봄부터 2012년 여름까지의 오르그닷 사람들에 대한 어떤 기록이기도 할 <불안>은 온전히 그 갈등에 집중하는 것처럼 보인다. 

<불안>의 인물들인 오르그닷의 구성원들이 겪는 지난한 논쟁과 갈등의 상황은 우리가 현실에서 겪게 되는 고민과 충돌, 갈등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들이 추구하는 이상이 클수록, 그 열정이 강할수록 그 갈등의 골은 더 깊고 커진다. <불안>은 곧바로 그 갈등의 골로 깊숙이 우리를 끌고 들어가는데, 이상하게도 영화를 보며 느끼는 감정은 `사람 사는 곳이 다 그렇지 뭐` 혹은 `아무리 이상적인 것을 꿈꾸어도 결국은 별 수 없구나`라는 체념과 같은 뻔한 결론은 아니다. 막말과 욕설이 터져나오는 조금은 유치하고 찌질한 술자리도, 대표가 바뀌고, 사람들이 떠나가는 조직의 변화도 담담하게 가까이에서 담아낸 <불안>은 등장인물 중 어느 누구에게 더욱 가까이 밀착하거나 어느 누가 옳고 어느 누가 그르다는 판단을 섣불리 내리지 않는다. 영원히 끝날 것 같지 않은, 도무지 해답이 보일 것 같지 않은 불화와 언쟁과 불편한 대화 속에서 마음이 무거워지기도 하지만, <불안>을 보며 한편으로는 알 수 없는 위로를 얻게 된다. 그 힘은 아마도 <불안>이 이들의 상황을 섣불리 옳고 그름이라는 잣대에 기대지 않고, 시간을 견뎌내며 지켜본다는 데에 있을 것이다. 불안을 들여다보는 것, 그리고 그것을 견디는 것은 우리의 욕망을 들여다보는 일이다. 오르그닷의 구성원들도, 그리고 카메라도 쉽게 체념하거나 포기하지 않는다. 불안을 들여다봄으로써 그것에 직면하는 것의 가능성. <불안>이 주는 어떤 위로의 힘은 그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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