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이스
[초이스]불한당들
장훈, 2007
안산에서 일하는 4인의 이주노동자가 있다. 이들은 불법 체류자이다. 한국에 온 지 15년, 귀화해 법적인 한국인이 된 토너씨, 본명은 오사마 빈 $^#$^% 이지만 $^#$^%부분을 사람들이 못 알아들어 그냥 ‘오사마 빈 라덴’으로 퉁치는 오사마, 눈앞에서 친구가 단속원에게 잡혀간 걸 본 후 정신이 극도로 쇠약해진 콴쓰, 그리고 버마의 혁명 전사였으나 한국에선 외국인 노동자일 뿐인 정치범 모모. 이들은 월드컵의 열기가 극에 달하던 어느 날 다큐멘터리를 찍다가 친해진 성호의 호출로 서울에 가게 된다.
2001년 말에 입대해 2004년 1월까지 군 생활을 했던 필자는 2002 한일 월드컵을 군에서 맞았다. 그래서 밖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잘 알지 못한다. (물론 4강둥이들이 무지하게 생겼다는 건 안다.) 평소 축구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 축구 경기 시간마다 근무를 바꿔주곤 했던 나는 그때 근무가 참 편했었다는 기억이 난다. 모두가 축구를 보고 있어서, 뭘 하든 관심이 없었다. 음악을 듣고, 담배도 피우고. 그랬던 것 같다.
그렇게 거리를 두고 있어도, 느낄 수 있었던 것은 ‘하나 된 마음’이었다. 축구를 보거나 듣고 있지 않아도 한국이 골을 넣은 것은 아주 쉽게, 아니 알기 싫어도 알 수 있었다. 사단 전체가 함성 소리로 날아가 버릴 것 같았으니까. 산꼭대기에 서서 그 소리를 혼자 듣고 있으려니, 문득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양반들, 평소엔 서로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 양반들인데...
서울에 올라온 4명의 이주노동자들은 월드컵 열기가 한창인 호프집에서 (비유가 아닌 진짜) 좀비들을 맞닥뜨린다. 그들은 조금 전까지 한국 팀을 응원하던 평범한 사람들이었고, 한국 팀이 한골 먹은 상황에서 제 딴엔 응원한다고 ‘대~한~민!국!’을 외친 오사마에게 집단 쫑코를 주던 평범하디 평범한 한국인들이었다. 그들은 ‘알 수 없는 바이러스’에 전염되어 모두 좀비가 되어버린 것이다. 장난감 총과 은단으로 좀비를 퇴치하며 도망가는 그들은 인기척 없는 광화문에 이르러 더 이상 어디로 가야 할지 길을 잃는다.
<불한당들>은 월드컵, 좀비, 이주노동자라는 소재를 잘 엮어 유쾌하게 전체주의를 조롱한다. 영화다. 갑자기 생각이 나서 낄낄거리며 다시 보았다. 대단히 잘 만든 영화는 아니지만, 한국사회를 유쾌하게 풍자한 부분들이 여전히 유효했다.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 원래 템포보다 느리게 재생되어 괴기스러운 소리가 된 군가에 발맞추어 산으로 향하는 좀비들. 섬뜩하다. 2007년 제작된 영화인데, 어째 영화를 보고나니 웃음기를 거두게 된다. ‘군가’에 발맞추어 ‘산’으로 가는 ‘좀비’들... 아. 우리는 언제나 ‘다르다’와 ‘틀리다’를 구별하게 될까. 구분을 원치 않는 사람들이 꾸준히 노력하는 한은 쉽지 않으려나.
장훈 감독의 <불한당들>은 감독 본인의 장르적 취향과 당시의 한국 사회에 대해 느꼈던 점들을 결합해 만든 소동극이다. 30분 동안 키득대다 보면 어째 개운하지만은 않은 뒷맛을 남긴다. 2013년이 지난 지금에도 이야기의 생명력이 살아있을 만큼, 단편영화만이 할 수 있는 것을 멋지게 해낸 작품이다. 물론 영화를 잘 만든 건지 세상이 이상해진 건지 확실하지는 않다는 것이 쓰면서도 찝찝한 부분이긴 한데, 하여간 현재의 이야기로도 손색이 전혀 없으니 일단은 잘 만든 것으로 정리하는 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