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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이스]서울유람

우문기, 2012

[초이스]서울유람 대표 이미지

17살 나는 아버지의 이직으로 17년간 살던 부산을 떠나 서울로 올라왔다. 서울로 이사하는 그날 부모님과 누나는 서울행 비행기를 타고 먼저 상경했지만, 이삿짐을 잃어버릴까 두려웠던(?) 아버지는 장남인 나를 이삿짐 트럭에 앉혔다. 나는 아버지가 주신 여비로 휴게소에 들러 아저씨들과 함께 자장면을 먹었고, 아저씨들과 음료수를 나눠 먹으며 경부고속도로를 달렸다. 해가 질 무렵 마침내 서울에 도착했고, 부산 트럭은 올림픽대로를 달렸다. 처음 보는 63빌딩과 거대한 한강. 한강을 에워싸고 있는 아파트와 빌딩. 그 위로 펼쳐진 노을. 브이를 그리며 웃고 있던 호돌이. 모두가 그렇게 ‘서울’스러울 수가 없었다. 지긋지긋한 부산의 짠내와는 다른 선선한 대륙의 호방함이 느껴졌다. 그렇게 다시 17년이 흘렀다. 사투리를 고쳤고, 깍쟁이가 된 지금. 나에게 올림픽대로는 짜증의 상징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시간적 여유만 된다면 부산을 가기위해 애를 쓴다. 지금은 나를 반겨 줄 친척하나 없지만, 17년이 지나서 부산은 그 존재만으로 든든한 고향이 되어있었다.

<서울유람>의 주인공 진우는 친아버지의 죽음으로 새 아버지를 따라 부산으로 내려가 살다, 신경성 난청을 치료하기 위해 다시 서울로 올라온다. 서울에서 진우를 안내할 이는 새 아버지의 아들, 부산출신의 명제다. 퉁명스러운 부산사투리를 쓰는 명제는 진우를 서울대학병원에 데려가기 위해 서울대학행 버스에 오르고(서울대학병원은 서울대학이 아닌 대학로에 위치해있다.), 인심 쓰듯 데려간 박물관은 휴관이다. 이 모든 것이 못마땅한 진우는 남아있는 시간에도 불구하고 버스표를 바꿔 부산에 내려갈 것이라 말한다. 명제는 진우를 달래 자신이 살고 있는 달동네로 진우를 안내한다. 그리고 명제는 매일 운동 삼아 하는 야구놀이를 진우에게 보여준다. 혼자 공을 던지고, 혼자 중계하고, 혼자 신나하는 명제를 바라보는 진우. 어느새 진우도 야구놀이에 동참한다. “형 이걸 매일하는 거야? 혼자?” “어, 거의 매일한다.”

이 영화는 서로 다른 고향을 가지고 있는 배다른 형제가 서울에서 만나 하루를 보내는 이야기다. 서울로 올라와 매일 홀로 공터에서 야구놀이를 하는 명제와 낯선 부산에 내려와 어색한 새 아버지와 생활하는 진우는 비슷한 처지에 놓여 있어 보인다. 신경성 난청을 가지고 있는 진우는 때로는 난청이 좋을 때도 있다고 명제에게 고백하고, 그를 바라보는 명제도 그런 진우가 퍽 이해가 간다. 이렇게 서로 떨어져 결혼식 외에는 대면하지 않았던 배다른 형제는 서로의 외로움을 바라보며 점점 더 가까워진다. 별다른 위로의 말을 꺼내지 않아도, 각기 가지고 있는 외로움 그 자체가 서로에게 위안이 된다. 

나는 영화를 보며, 17년 전 처음 서울에 올라왔을 당시가 떠올랐다. 그때는 부산친구들에게 ‘배신자’라는 말을 들으며, 부단히 사투리를 고치기 위해 애를 썼고, 서울과 친해지기 위해 안달이 났었다. 어쩌면 이런 나의 행동은 외로워지지 않기 위한 몸부림이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런 나의 몸부림에 불구하고, 나는 서울과 친해지지 못했다. 부산으로 내려간 진우도, 서울로 올라간 명제도 그랬을지 모른다. 진우는 다시 서울로 올라가며, 불편한 상황 속에서 벗어나 고향이라는 곳에서 작은 위로를 기대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낯선 배다른 형제와의 만남이었고, 또 다른 어색함과 불편함이었을 것이다. 명제 역시 부산에서 올라온 낯선 동생을 맞이할 때만 해도, 부담스럽고 짐 같은 느낌이었을 테다. 하지만, 그들은 서로에게서 비슷한 외로움을 발견하고 위로하고 있다. 영화는 진우가 명제에게 “이제 잘 들리는 것 같다.”라는 말을 하고, 노을 지는 버스 창밖으로 미소 짓고 있는 진우의 표정으로 끝이 난다. 나는 그런 진우를 가 부러워졌다. 이제 서울에는 명제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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