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이스
[초이스]오 윌리...
엠마 드 스와에프, 마르크 로엘스, 2012
환각지(幻覺肢, phantom limb)라는 외과 질환의 한 증상이 있다. 사고로 인한 외상이나 수술 등에 의해서 신체 중 일부가 사라진 환자가 계속해서 사라진 신체 부위에 대해 통증을 호소하는 증상이다. 외과적 치료로는 상당한 어려움이 있는 이 증상은 보통 시간만이 효과적인 약으로 알려져 있는 모양이다. 말하자면 환각이라는 병명에 망각이라는 치유책만이 있는 셈. 소중한 물건을 잃어버렸다거나, 가까운 지인의 죽음 등도 이와 유사한 경험으로 생각할 수 있다. 이때의 상실감 역시 환각지의 그것처럼 신경증의 양상을 가진다. 즉, 상실은 인간이 가진 기억에 의존하면서 잃어버린 대상을 지속적, 무규칙적으로 소환하고, 되새김질하므로 기억회로의 절단, 즉 망각 이외에는 이를 극복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그 망각의 과정이 소위 애도라는 형식이다.
<오 윌리...>도 애도에 관한 작품이다. 작품 속의 주인공처럼 어머니의 죽음을 묵도한 한 남성이 상실에 대한 방어기제로 자신의 기억을 쏟아내는 과정들은 상실과 극복, 또는 신경증과 애도라는 과정에 적합하다. 아울러 그것은 어머니라는 존재 그 자체에 대한 것일 수도 있고, 자신의 유년 시절일 수도 있으며, 더 나아가 작품 속의 그것처럼 자연과 환경이라는 이름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작품 속 주인공이 취하는 ‘행위’와 ‘행동’은 망각을 위한 노력이 아닌 좀 더 다른 양상이다. 이를테면, 장례식이라는 양식은 가까운 지인의 죽음을 복잡하고 기나긴 예(禮)의 형식을 통해 상실에 대한 망각을 요구하는 가장 대표적인 애도장치이라 할 수 있는데, 이 작품에서는 그 길고 복잡한 예의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아울러 이 작품은 죽음에 대한 거대한 레퀴엠을 들려주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작품은 주인공이 현실인지 환상인지 알 수 없는 어느 한 지역을 방문하고 그곳에서 밤사이 겪는 악몽과 신경증, 그리고 공포의 양상을 두루 전달한다. (현실과 상상이 자유롭게 중첩되는 것이 애니메이션의 주요한 특징 ― 물론 이것은 상당히 일반적인 특징일 뿐이다 ― 이라 한다면, 환각지와 같은 증상, 현실과 환상, 또는 현실의 상실감과 상상의 존재감(상실된 대상의 현현(顯現))이 중첩되는 것 역시도 애니메이션의 주요한 기제일 것이다.)
주인공이 밤사이에 마주치는 공포의 치환물들은 상실에 의해 드러나는 통각이며, 이는 그 개인이 극복해야 할, 현실에 드러나는 기억의 편린인 것이다. 당연히 애도는 상실한 대상에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상실을 겪은 개인, 또는 사회가 가져야 하는 것들이다. 애도의 필요성도 여기에서 주어진다. 개인과 사회가 상실된 것들에 대한 적절한 애도가 성립되지 않는 한, 남겨진 그들은 신경증을 겪고 만다. 지난 한국사회가 겪었던 상실의 문제를 떠올려보자. 80년의 광주, 제주의 4·3, 민주화 운동과 죽음들, 그리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애도정국에 이르기까지. 과연 우리 사회는 진정한 애도의 과정을 겪어왔던 것일까?

<오 윌리...>의 주인공은 결국 자신에게 주어진 상실이라는 짐을 대상과의 화해와 위로를 통해 벗어버린 것처럼 보인다. 하룻밤이라는 시간은 그에게 망각을 위한 시간이 아니라, 남겨진 자신을 애도하는 순간이었던 것이다. 이 작품이 실사 영화 <지슬>을 떠올리게 한 것도 그런 이유이다. <지슬>도 마찬가지로 죽은 자들과 남겨진 자들 사이에 존재하는 현실과 기억의 공간에서 감독 스스로가 행하는 애도의 제스쳐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상실에 대한 치유는 시간도 아니고, 집단 힐링 이벤트도 아니고, 멘토도 아니다. 사회와 개인 각각에게 주어진 적확한 애도와 위로다. 이것이 없는 한, 이 사회의 집단 신경증은 계속된다.
덧붙이자면, <오 윌리...>는 스톱모션 작품이다. 명확하게 말하자면, 퍼펫 애니메이션인데 인형들은 모두 양모(wool) 펠트로 만들어진 것들이다. 최근의 애니메이션 작품들이 CG를 이용해 첨단(尖端, cutting edge; 뾰족한 끝)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에 비해, <오 윌리> 상당한 노동력과 정성이 투여하여, 촉각적이고, 물질적인 대상의 세계를 만들어 내었다. 사물과 배경들 사이에는 미묘한 겹침이 있고, 빛은 그 속성 그대로 대상을 투과하고 난반사 한다. 이 작품에서 또 하나의 애도를 보았다면 그것은 오래된 수작업과, 따뜻한 물질들, 그리고 빛이라는 이미지일 것이다.
레이 해리하우젠(Rey Harryhausen, 1920~2013)을 애도하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