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이스
[초이스]백년해로외전
강진아, 2009
짧은 줄거리. 깊은 밤 아르바이트를 끝낸 뒤 남자친구 혁근과 통화하며 귀가하는 차경 앞에 불길한 헤드라이트 불빛이 다가온다. 이내 차경은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 바닷속으로 사라지고, 영화는 발랄한 차경의 인터뷰와 어쩐지 우울해 보이는 혁근의 일상을 오간다. 이제는 더 이상 웃지 않는 혁근의 일상에 마치 꿈처럼 이따금 차경이 불쑥 나타나곤 한다. 사실 차경은 사고로 죽었다.
이 영화에서 무척 인상적인 장면이 여럿 있지만 그 중 첫 번째. 영화의 초반, 자전거를 타고 가는 차경을 향해 다가오던 어두운 길의 헤드라이트. 바로 이어지는 바닷가 장면에서 차경과 혁근은 모래찜질놀이를 하고 있다. 얼굴만 내놓고 혁근의 몸을 모두 모래로 덮어버린 뒤 차경은 어떤 사람들의 무리를 향해 달려간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바닷속으로 걸어 들어가 사라져버린다. 혁근은 그 자리에 누운 채 차경을 목놓아 부르지만 소용이 없다. 이때 차경은 혁근의 몸을 덮은 모래 더미를 밟고 지나가면서 발자국을 남겼다. 아주 깊지는 않지만 얕지도 않은 그 발자국은 어쩌면 혁근이 차마 떨쳐내지 못할 깊은 상실감과 죄책감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그래서 혁근은 차경을 떠나보내지 못하고 자꾸만 불러내는 게 아닐까?
혁근은 남들이 보기에 아무렇지 않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전혀 괜찮지 않은데, 다른 사람들은(심지어 차경의 가족들까지도) 그에게 자꾸만 괜찮냐고만 묻는다. 큰 일을 겪었으니 혁근이 한동안 이상한 행동을 하는 것을 어느 정도 이해하긴 하지만 이젠 그만했으면 하는 바람을 은근히 내비친다. 더 상관없는 누군가들은 현장에 그려진 사고마크를 보며 ‘죽은 지 한참 됐다며 왜 여태 안 지우냐’며 볼멘소리를 내뱉기도 한다. 그깟 모래가 뭐라서 아직도 거기 깔려 누워만 있냐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남의 죽음의 흔적이 우리 동네에 남아있는 게, 그리고 몇 달이 지나도록 거기에 묻혀 허우적대는 당신을 바라보는 게 불편하니 이제 제발 좀 그만하라는, 타인의 죽음에 대한 적극적인 외면이기도 할 것이다. 그런데, 혁근에게는 아직도 차경의 발자국이 남아있어서 별것도 아닌 모래더미를 제치고 일어날 수가 없다.
또 하나의 인상적인 장면은, 영화가 끝날 무렵, 마침내 차경을 떠나보낸 혁근이 밥을 먹는 장면이다. 혼자 식탁에 앉아 무슨 코미디 프로를 보며 밥을 먹던 혁근은 어떤 장면에서 웃음이 터져 나온다. 하지만 그것이 채 웃음이 되기도 전에 그만 사레들어 물을 마시고는 이내 고개를 숙이고 다시 TV를 보며 밥을 먹는다. 누군가는 이제 혁근이 사고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왔음을 보여주는 장면으로 여기겠지만, 나는, 혁근이 여전히 이전의 일상으로 완전히 돌아오지는 못했음을 보여주는 장면으로 느껴진다. 어쩌면 혁근에게 일상이란 차경이 떠나기 전과 후가 판이하게 다른 것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마 혁근은 앞으로도 이전과 똑같은 일상을 살 수는 없을 것이다.
꼭 1년 전, 세월호가 300명이 넘는 승객들과 함께 어처구니없이 바다에 잠겨버렸다. 그들 중 일부는 살아서 돌아왔지만 더 많은 사람들은 죽어서 돌아왔고, 그 나머지는 죽어서도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남은 가족들에게 일상은 2014년 4월 16일 이전과 이후가 전혀 다를 것이다. 세월이 얼마가 흐르건, 그 사실은 변함이 없을 것이다. 혁근에게 괜찮으냐고 묻기만 하던 영화 속 사람들처럼, 나도 겉으로는 안부를 물으면서 속으로는 아직도 헤어나지 못하냐고 타박하는 사람 중 하나가 아니었을지 자문하고 반성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