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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이스]삶의 크기, 기억의 무게

프레데릭 렝게뉴, 클라우스 레이싱거, 2012

[초이스]삶의 크기, 기억의 무게 대표 이미지

코끼리에 대한 이 영화는 분쟁지역에서 피투성이로 죽어가는 사람들, 기아로 뼈만 앙상하게 남은 사람들의 모습을 담은 정지 사진을 보여주며 시작한다. 감독인 프레데릭 렁개뉴와 클라우스 라이싱거가 종군 사진기자 시절 찍은 사진들이다. 그들은 미얀마의 벌목 캠프에서 만난 코끼리들에 매료되어 사진을 찍기 시작한다.

벌목 캠프의 일꾼들을 상대로 미사를 집전하는 신부는 설교시간에 그들이 위험한 일을 수행함에 있어 보호해달라고 신에게 기도한다. 그리고는 카메라를 향해 ‘생명’을 찍을 때는 조심해야 한다고 말한다. 정부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도록. 이어지는 화면들은 일꾼들이 다른 생명을 다루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들은 벌목에 쓰이는 코끼리를 포획하여 순하게 만들기 위해 감금하고 고문하며 훈련시킨다. 그러는 동안 감독은 이 거대한 상처투성이 생명체들을 사진 속에 담고 영화는 또 그 과정을 찍으며 피사체들을 탐구한다. 사진에 담긴 코끼리들은 아름답고, 조련사는 자랑스레 코끼리와 함께 포즈를 취한다. 일꾼들을 등에 태우고 나무를 옮기는 코끼리들은 각각 이름과 성별이 기록되어 있지만 관리와 대여를 위한 것일 뿐 그들은 그저 다 같은 벌목 코끼리 집단일 뿐이다. 감독들은 코끼리들의 육체, 표정, 몸짓을 상처받은 이를 곁에서 지키는 참을성 있는 친구처럼 지켜본다. 그리고 그들 하나하나의 나이와 성별, 살아온 생을 관객에게 일러주며 이들에게 ‘개체성’을 부여한다. 

영화가 별다른 인터뷰나 대화 씬도 없이 코끼리가 일하고, 훈련받는 모습을 보여주는 동안 개체성을 부여받은 코끼리들은 자신의 답답함과 고통을 어떤 말보다도 강력하게 항변한다. 사람들의 분쟁과 고통을 찍어왔던 감독들은 그런 코끼리들의 모습에서 전쟁의 희생자들의 모습을 본다. 그런 눈으로 묘사되었기에, 고통이 역력한 표정의 코끼리의 표정은 너무도 생생하고 이를 마치 의식이라도 치르듯 함께 구령을 붙이며 때리고 고문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오히려 공감하기 힘든 낯선 종족처럼 느껴진다. 

감독들은 미얀마 이후 다른 아시아 국가로 가서 코끼리들의 다른 삶을 관찰한다. 코끼리를 이용한 관광산업이 성행하는 태국에서 코끼리들은 거리 퍼포먼스와 관광객 태우기에 동원되고 수백 마리의 코끼리들이 축사에서 지내며 관리된다. 인도에서 코끼리들은 신화에 등장하는 상서로운 동물로 비슈누, 크리슈나 등 신의 이름이 붙여져 있다. 신전에 온 신자들은 코끼리에게 경의를 표하며 그들의 몸을 만져 축복을 구한다. 가장 융숭한 대접을 받는듯한 인도의 코끼리들은 나름의 기준에 의해 그 미모를 평가받고 관리자에 의해 신전으로 대여된다. 아름다움을 유지하기 위해 상아의 모양까지 인위적으로 깎이며 신전끼리의 대회에 이용되기도 한다. 문화에 따라 충직한 일꾼, 즐거운 댄서, 아름답고 평화로운 신의 메신저로 다르게 비추어지지만 모두 다 자신의 본성을 억누를 것을 강요당하며 고통스러운 훈련을 통해 인간이 원하는 모습으로 살아간다. 

영화를 보는 동안 관객은 코끼리들의 풍부한 표정, 서로의 느낌을 나누는 감각적인 몸짓에 매료된다. 사진을 찍던 감독 특유의 긴 호흡과 섬세한 감각 덕택에 이들이 포착한 이미지는 관객으로 하여금 사람의 목소리로 설명하는 것보다 훨씬 강력하게 코끼리들의 느낌을 공감하게 해 준다. 내레이션을 비롯한 말의 절제로 이미지는 극대화되어 뇌리를 쉽게 떠나지 않는다. 자신들의 바람을 코끼리에게 투영시켜 놓고 착각하는 인간군상들의 어리석은 모습을 표현하는 데 이보다 더 효과적인 방법이 있었을까.

영화의 말미에서 감독들이 찍은 실제 크기의 코끼리 사진은 워싱턴 국립공원에 전시되어 관광객들과 함께 사진을 찍는다. 그리고 이야기한다. 영화의 앞에 보여진 사진 속의 고통처럼, 이 익명성 안에 숨겨진 코끼리의 삶을 기억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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