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이스
[초이스]제외될 수 없는
최용석, 2006
최용석 감독의 첫 장편영화인 <제외될 수 없는>은 한글 제목보다는 영어 제목(After)이 이 영화를 분명하게 드러낸다. 한 소녀의 자살 이후에 소녀와 가까운 관계였던 세 인물들이 어떻게 남겨진 고통을 감내하는가가 이 영화의 전부다. 딸의 자살 소식을 들은 아버지는 1년 6개월 만에 집으로 돌아오고, 소녀와 가장 가깝던 친구는 소녀의 집을 제집처럼 드나들면서 시간을 보낸다. 소녀의 담임선생은 아직도 교실에서 소녀의 흔적을 느끼는 것처럼 학교를 좀처럼 떠나지 못한다. 인물들은 모두 소녀의 죽음을 경험했지만 죽음의 원인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 이 지독한 상황은 인물들에게 부재하는 소녀의 공간과 마치 정지된 듯 좀처럼 진전되지 않는 시간을 배회하도록 만든다. 아버지는 언어를 통해 딸의 죽음의 원인을 찾아내거나 추적하는데 익숙하지 못하다. 어눌하게 들리는 그의 말은 어미가 뭉개지거나 흐려지곤 한다. 마치 딸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고 딸과 시간을 많이 보내지 못함에서 비롯된 죄책감이 아버지의 현재를 구성한다. 아버지는 교실을 돌아보거나 딸의 그림을 물끄러미 바라보거나 어두운 방에 주저앉아 사탕을 깨물어 먹고 찬 방바닥에 누워 잠이 든다. 소녀의 친구인 또 다른 소녀는 비어 있는 소녀의 집에 살그머니 들어오고 집이나 학교 주변에서 친구를 기다리는 듯 물끄러미 무언가를 쳐다본다. 교사는 불면증에 시달리고 엄마처럼 보호했었던 소녀의 죽음을 떨쳐내지 못해 괴로워한다.
세 인물의 행동으로 채워진 이 영화는 아무리 생각해도 원인을 찾아낼 수 없는 서사구조 안에서 반복되는 행위와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집과 학교라는 공간에서 부재를 견디고 관통하는 과정만이 나열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최용석의 태도가 드러나는 첫 신에서 분명하게 제시된다. 소녀가 앉아서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시선을 돌린다. 이어지는 쇼트는 아버지가 어딘가를 바라본다. 세 번째 쇼트는 교실의 창가에 서 있는 교사의 모습이다. 세 인물은 삼각형의 구도를 그리면서 시선으로 연결된다. 이들이 바라보는 방향은 서로를 향해 있고 죽은 소녀를 에워싸는 것처럼 느껴진다. 단조롭다고 느껴질 즈음, 이 영화가 기묘하게 미끄러지는 지점은 비어 있는 학교의 복도와 교실을 이동할 때 동반되는 핸드헬드의 급작스러운 움직임이나 교실의 횡축 트래킹이 소녀의 시선처럼 보일 때다. 또한 소녀의 친구와 소녀가 마치 동일인처럼 느껴지도록 구성해나가는 쇼트의 연결에서도 찾을 수 있다. 아버지가 딸의 친구인 소녀의 뒤를 쫓다가 놓치는 장면에서 소녀는 마치 유령처럼 아버지의 뒤로 휙 지나간다. 또한 아버지의 꿈에 소녀가 등장해서 뒤돌아보는 쇼트를 통해 이 지난한 애도의 과정이 끝에 도달했음을 느끼도록 만든다. 부재하지만 세 인물의 시간을 관통하고 어디에서나 등장하는 소녀의 존재는 아버지와 교사, 소녀의 친구를 마치 유사가족의 시선 아래 놓아둔 것처럼 보인다. 최용석은 이 영화를 통해 부재를 정면으로 응시하면서 부재를 감싸 안는 시선의 구도 안에 놓아둔다. 죽음이라는 받아들이기 힘든 상태를 과장하거나 승화시키는 방법 대신 정직하게 죽음 이후의 상황을 견디고, 하릴없이 반복되는 행동으로밖에 견딜 수 없는 애도를 차근차근 따라가면서 지켜본다. 자살, 부재, 죄의식, 죽음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이야기의 구조 안으로 포함시키면서 감정들을 만들어내는 데 관심이 없는 감독의 단호한 태도에서 카타르시스의 경험은 죽음에서 불필요한 요소임을 드러내고, 사건으로서의 죽음을 통해 만들어지는 스펙터클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스스로에게 부여한 강직하고 딱딱할 수밖에 없는 영화적 결단을 느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