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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이스]잡식가족의 딜레마

황윤, 2014

[초이스]잡식가족의 딜레마 대표 이미지

2008년, 황윤 감독은 동물원 울타리에 갇혀 몸과 마음에 병이 든 동물들을 지켜보고(<작별>) 도로 곳곳, 무방비상태로 차에 치여 다치거나 죽은 야생동물들에게서 시선을 거두지 못했다(<로드킬: 어느 날 길 위에서>). 인간 중심적인 세계에서 일상적으로 지나치던 동물들의 풍경을 그녀의 영화들은 어떻게 해서든 인간의 삶의 조건과 태도 안으로 불러오기 위해 애썼다. 그러한 시도가 쉽게 성공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그 영화들은 결국 인정하고 있었지만, 인간에 의해 운명이 결정되어버린 가련한 생명들을 지켜주고 싶다는 간절함만큼은 영화 끝까지 늘 남아 있었다. 2015년, 황윤은 동물원과 도로를 지나 자신의 삶 안으로 더 파고드는 동시에 더 확장된 시선으로 동물들의 현실을 응시하는 <잡식가족의 딜레마>를 세상에 내놓았다. 그 사이 감독은 야생동물 수의사와 결혼을 하고 아들을 낳았으며, 동물들의 지옥도라고 표현해도 모자랄 구제역을 겪는다. 한 아이의 엄마가 되어가며 감독 자신이 겪게 되는 변화의 경험들과 점점 더 잔인한 방식으로 대책 없이 죽어가는 동물들의 현실이 일상 속에서 필연적으로 맞물리며 <잡식가족의 딜레마>를 완성하게 된 것이다.

유독 돈까스를 좋아하는 아들을 키우고 텔레비전을 통해 전해지는 돼지들의 살처분 뉴스를 보면서, 감독은 엄마가 된다는 경험의 피로 속에서 “돼지까지 신경 쓰고 싶지 않았지만” 결국 돼지에 대해 보다 자세히 알고 싶다는 마음을 저버리지 못한다. 그러나 그 호기심은 곧 마주하고 싶지 않은 참혹한 지옥의 문을 열어버린다. 그녀가 살아 있는 돼지를 처음 마주한 순간은 그들이 끔찍하게 살처분 되는 현장에서다. 그 돼지들은 유전자가 조작된 사료를 먹고 분만 촉진제를 맞으며 새끼를 낳으며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는 우리에서 고기가 될 날을 기다리고 있다. 돼지 공장을 보고 난 후, 감독은 돼지들을 보기 이전의 현실로 돌아가지 못한다. 하지만 커가는 아이에게도 고기를 먹이지 말아야 하는 것일까. 새끼 낳는 기계가 되어버린 거대한 어미돼지들을 마음 아파하면서도 감독은 한 아이의 엄마로서 무엇도 쉽게 단언하지 못한다. 다짐과 결단, 타협과 갈등 사이에 이 영화가 있다.

그런데 정작 이 영화에서 인상적인 순간들은 감독의 그런 ‘올바른’ 고민이 전해질 때보다는 그녀가 그 고민을 가장 나누고 싶어 하는 남편이 기대와 다른 모습으로 등장할 때 나오는 것 같다. 이를테면 야생동물 구조에 일상의 대부분을 바치는 감독의 남편은 돼지와 닭이 어떻게 키워지고 있는지 알고 있냐는 아내의 질문에 신경질적이고 방어적인 태도로 일관한다. 그는 잡식동물로서 먹을 것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자신에게는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하는데, 자신의 욕망을 합리화하는 그의 논리는 한 눈에도 감독의 그것보다 빈약하다. 그러한 논리의 허술함과 육식에 대한 더없이 감정적인 태도, 여기에 그가 열정적인 야생동물 수의사라는 사실이 더해지면서 그는 이 영화에서 가장 궁금한 인물이 된다. 내내 고집을 부리던 그가 조류독감이 퍼지고 그 일을 해결하는 곳으로 파견된 후, 격무에 시달리다가 카메라를 향해 내뱉는 말들은 그래서 의아하고 흥미롭다. 놀랍게도 그는 자신이 실은 닭고기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으며, 닭들의 사육 시스템에 대한 고민을 계속해왔다고 말한다. 남편은 그 사이 생각이 바뀐 걸까. 그렇다면 그가 그간 감독의 카메라 앞에서 보였던 모습들은 어떤 마음의 반영이었을까. 그의 속을 다 알지는 못하겠지만, 그는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반성이나 깨달음을 말하지 않는 인물이다. 대신 그는 말, 행동, 표정, 시선 그 자체로 육식을 둘러싼 여러 모순들을 입증하는 존재다. 한 편의 다큐멘터리에서 흥미로운 순간들 중 하나가 정제되지 않은 모순과 감정을 불현듯 표출하는 인물을 만났을 때라면, 그가 그런 인물인 것 같다. 내게 <잡식가족의 딜레마>는 옳고 그른 태도에 대한 판단을 통해 읽어낼 때보다 그를 통해 경험하고 질문의 길을 찾아갈 때, 더 많은 것들이 보이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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