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이스
[초이스]내 사슴 친구에게
고승아, 2015
사람은 ‘응애’하고 힘찬 울음을 시작으로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드러낸다. 그 시작은 생명의 탄생이지만,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것은 사랑이다. 부모의 절대 사랑을 시작으로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은 성취를 위해 거침없이 달려들게 만든다. 그렇게 사람은 평생 사랑을 갈구하면서 살아간다. 그래서인지 나를 위한 사랑에 익숙하다. 동물에게도 나의 일방적인 사랑을 강요한다. 대형마트를 지나다가, 시장 좌판에서 선택을 기다리는 병아리나 토끼를 보고, 놀러 간 친구의 집에서 만난 개나 고양이를 보고, 그리고 TV에서 연예인이 키우는 동물을 보고 자신의 사랑이 절대적이라 믿고 애완동물을 키우기 시작한다. 하지만 자신의 취향에 변화가 있을 때 기존에 갖고 있던 사랑은 사라진다. 그리고 우리 주변에 수많은 동물들이 유기된 일상으로 존재한다. 버림의 주체인 사람은 이에 상처받거나 아파하지 않고, 그 상처 받음의 대상은 버려진 동물들의 몫이다.
이를 안타까워하는 마음에 버려진 동물들의 이야기를 소재로 단편 애니메이션이 종종 제작되고 있다. 그리고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지기도 한다. 대부분 버려진 과정과 그 이후의 삶의 쓸쓸함을 주로 이야기 하고 있다.
오늘 소개하고자 하는 작품은 한국종합예술학교 2015년 졸업 작품 중 한편으로 따뜻한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컬러와 부드러운 선이 인상적인 <내 사슴 친구에게>라는 2D 단편 애니메이션이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사슴이다. 어떤 사연을 갖고 있는지 알 수 없지만, 사슴은 상처를 갖고 있다. 그래서 상처받은 동물들을 치유하기 위한 모임에 참석한다. 이 모임을 진행하는 의사를 따라 왔고, 다른 동물들에게 자신을 소개하라는 말에 자신은 사슴이라고 수줍게 말한다. 더 많은 말을 하고 싶지만, 낯선 환경과 버림받고 상처받은 사슴은 당당히 자신을 드러내지 못하고 홀로 중얼거릴 뿐이다.
모임을 진행하는 의사는 매우 긍정적인 마인드를 동물들에게 심어주고자 한다. 재활이라는 단어를 쓸 때 동물들을 부를 때 행복한 동물들이라고 부른다. 의사는 자신만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행복하다고 말하면서 마음의 상처를 받고 의욕이 없는 동물들에게 자기 자신을 바라보고, 남과 자신을 비교하지 말고, 자기 자신만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자신을 사랑할 수 있다고 말한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버려짐을 통해 상처를 받은 병든 동물들이 쉽게 이 말을 이해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 뿐이다.
자신이 토끼이고, 토끼는 사자에게 잡혀먹히는 게 당연하다고 말하는 것이 사랑받았던 기억을 갖고 있는 토끼가 현실을 직시하는 것이라고만 말하기 쉽지 않다. 야생만이 존재하는 세상이라면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사람과 함께 공존하고 사랑받았던 기억이 있는 동물에게는 당연한 말이 아니다.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자신을 찾기 위해, 그렇게 말할 수 있지만 이는 적합하지 않다. 사랑으로 인해 상처를 입은 동물 또는 사람은 사랑을 통해서만 상처를 치유할 수 있다.
<내 사슴 친구에게>는 이런 방식으로 반문한다. 그냥 그들이 어떻게 버려지고, 현재 얼마만큼 쓸쓸한지 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고, 감독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자신만의 방식과 개성으로 풀어나가고 있다. 재활이라는 모임을 통해 상처받은 동물들을 이야기라는 것 자체가 새로운 시선의 접근이며, 나름대로 선보이는 동물들의 블랙코미디와 같은 위트가 흥미를 유발시키며 문제제기를 한다. 그 결과로서 명확한 답은 없겠지만, 자꾸 반문함으로써 현실에서 상처받은 동물들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한다. 전혀 무겁지 않게 모두가 좋아할 수 있는 캐릭터 디자인과 색감을 통해 자꾸 문제를 제기하는 작품이다. 물론 모두가 좋아하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고 해도 감독이 전달하고자 하는 마음을 느낄 수 있다면 의미 있는 시작이 아닐까 생각해보게 하는 단편 애니메이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