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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이스]한공주

이수진, 2013

[초이스]한공주 대표 이미지

영화 <한공주>는 우리 사회에서 흔히 일어나는, 그러나 잘 알려지지 않은 성폭행 사건을 다루고 있다. 밀양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을 다룬 이 영화는 비슷한 소재의 여러 영화에서 다뤄졌던, 어떻게 보면 익숙해져서는 안 될 소재이지만 이미 우리에게는 익숙해져 버린 이야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우리 사회의 비열한 단면을 이 영화는 그대로 포착하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침묵으로 위장한 가해자라고 할 수 있는 우리 모두를 질타하고 있다는 의심을 버릴 수 없는 이유가 영화 곳곳에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다. 이런 점에서 <한공주>는 우리 모두를 부끄럽게 하기에 충분하다..

영화 초반에 감독은 사건 그 자체를 설명하거나 잔인함을 그대로 노출하는 방법보다는 2차 피해라고 할 수 있는 사건 이후 한공주의 생활을 중심으로 영화를 구성하고 있다. 그리고 이 과정 속에서 무언의 방관자 내지는 침묵의 가해자라고 할 수 있는 주변 사람들의 모습 속에 우리 모두의 모습이 투영되어 있지 않느냐는 의문을 던지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더 큰 충격으로 와 닿는다. 이러한 점이 바로 전 세계의 수많은 영화제에서 공감을 얻어낸 영화적 성취의 이유가 아닐까 싶다. 후반부에 들어서는 보다 직설적으로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극적 긴장감을 살리고 있다. 영화적 장치가 현실보다 더 현실을 고발하는 모습으로 다가오며 모두가 스크린을 보기 두려워지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수영이라는 은유적 탈출구를 통해 한공주라는 인물로 상징되는 피해자가 그나마 숨통을 틔우고 새로운 세상으로 나갈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 준 것은 최소한의 위안 또는 우리 모두의 도피처가 확보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이러한 복선이 영화적 장치로 잘 사용되고 있고 이런 점에서 솜씨있게 잘 만든 영화임에 틀림이 없다. 직접적인 피해와 그로 인한 충격을 적절히 조절하며 직설과 은유를 버무린 이 영화는, 흔히 이런 류의 영화에서 보여주는 피해를 과도하게 강조한다든가 또는 분노를 조직한다든가 하는 모습보다는 담담하게 그 현상을 가감 없이 보여줌으로써 관객의 생각과 판단을 유도하고 있다. 그런점에서 영화적인 영화라 할 만하다. 이것이 더 큰 충격으로 다가오는 것 역시 계산된 것일 테지만.

또한 <한공주>는 영화가 하나의 사회적 문제에 접근하는 방식에 있어서 성찰적 자세를 견지하면서도 보다 영화적인 세련미를 갖춤으로써 스스로의 가치를 높인 영화다. <한공주>는 <똥파리> 이후에 해외가 열광한 또 하나의 한국 독립영화를 만난 기쁨과 함께 독립영화가 가져야 할 영화적 태도에서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소위 말하는 관성적인 의미의 독립영화의 모습도 아니고 상투적인 상업영화의 모습도 아닌 외로운 줄타기를 통한 균형을 유지한다는 점에서 어떻게 독립영화를 만들고 어떻게 대중과 소통할 지점을 찾을 것인가를 생각하는 이들에게 많은 생각을 던지는 영화가 <한공주>라는 오랜만에 나타난 빼어난 작품이다. 

“전 잘못한 게 없는데요.”라고 세상 모두를 향해 항변하듯 말하는 한공주로 완전히 몰입한 배우 천우희의 모습과 남성감독이면서 여고생의 심리를 절묘하게 묘사한 이수진 감독의 세밀한 연출력이 만난 <한공주>는 소재와 소재를 드러내는 주제의식, 이를 표현한 연기력, 설계한 연출력 등 모든 부분이 넘치지 않으면서도 잘 짜인 한 편의 오케스트라 같은 작품이다. 

아시다시피 영화 <시>도 비슷한 소재를 다루고 있다. 그리고 <시>에서는 도도히 흐르는 강물 속에 인물의 한과 상처가 떠도는 듯 묻히는 모습이 그려진다. <한공주>에서도 그러한 장면이 보여진다. 그러나 <한공주>에서는 한스러운 정서보다는 사회와 주변의 무관심과 오히려 피해자를 질타하는 풍조를 이기고 주인공 한공주가 혼자 헤쳐나갈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보여주고 있다. 그 강물에 상처가 씻기듯 미끄러져 가는 한공주의 모습을 관객이 기대하게 하며 그녀가 가라앉는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배웠던 수영처럼 우리 사회도 그런 자정능력이 있는 사회가 되기를 기다리는 마음도 영화는 함께 담아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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