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이스
[초이스]밀양, 반가운 손님
하샛별,노은지,허철녕,넝쿨,이재환, 2014
지하철을 타고 가다 보면 객차 안 모니터에 흘러나오는 밀양시 홍보영상을 보게 된다. 보통의 홍보영상과 다를 바 없다. 흰 구름이 생크림처럼 둥둥 떠다니는 푸른 하늘. 든든히 그 하늘을 받치고 있는 장대한 산세. 땀 흘려 일하는 농부들의 클로즈업과 이들의 손에 의해 생산된 온갖 농산물. 그 위에 카피가 부유한다. '하늘이 내린 축복의 땅! 미르피아, 밀양'. 좋은 말이다. 문제는 그런 카피에 걸맞는 곳이 밀양뿐이 아니라는 것과 그 땅에서 평생을 살아온 밀양 주민들이 작년 10월 이후 경찰, 용역들과 싸우느라 171건의 응급후송 조치를 당했다는 역설이다. 하늘이 내린 땅에서 아수라 판을 살고 있는 주민들에게 지금 밀양은 축복의 땅이 아닌 것이다. 밀양시 홍보영상을 보다 보면 인상적인 화면이 한 개 있다. 밀짚모자를 쓰고 활짝 웃는 농부(사실은 배우)의 배경을 가로지르는 송전탑 전깃줄이다. 보통은 CG 처리를 하더라도 지울 텐데 그러지 않았다.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잠시 궁금했지만 하늘마저 갈라놓은 송전탑 전깃줄은 이미 하늘이 내린 축복의 땅이라는 ‘밀양’의 상징이 되었다. 지독한 모순이자 처연한 현실이다.
영화 <밀양, 반가운 손님>은 골 깊은 밀양의 구석구석을 흘러다니며 쓴 옴니버스 로드무비이다. 5명의 작가가 참여했으며 극영화, 실험영화. 3편의 다큐멘터리로 구성되어 있다. 이 작품의 모든 이야기는 현재하는 밀양 송전탑 싸움에 기대 있다는 측면에서 다큐멘터리 영화라 봐도 무방하다. 작품 전반에는 송전탑 싸움에 연대했던(하는) 활동가이자 작가들의 ‘되돌아봄’의 정서가 가득하다. 마치 희망버스를 타고 한바탕 난장을 벌인 후, 되돌아가는 버스에서 계속 뒤를 돌아봐야 했던 우리들의 모습이 담겨있다. 이런 어쩔 수 없는 ‘연대하는 마음’이 기록의 의미와 기억의 가치, 그리고 압축의 미와 어우러져 옴니버스 영화의 또 다른 전형을 만들어 내었다. 다양한 현실의 속도감 있는 대처! 라는 기존 독립다큐멘터리 운동의 시도들을 넘어 짐작되었던 옴니버스 다큐멘터리의 가능성을 현시한다.
누구든 찾아오는 손님이면 밥 한 그릇이라도 나누려 했던 밀양 주민들에게 10년 전부터 한국전력과 경찰은 한몸이 되어 이제 그곳의 주인 행세를 하고 있다. 당연하게도 나쁜 도둑놈에 대한 저항은 끊이지 않았다. 얼마 전 6월 11일 행정대집행으로 많은 농성장이 철거당했고 수많은 어르신들이 아픈 몸을 이끌고 여전히 송전탑의 부당함을 알리기 위해 전국을 돌아다니고 있다. ‘손님’이 ‘도둑’이 되는 것을 압축적으로 경험한 주민들에게 이 작품은 밀양에서 사라진 ‘손님’의 자세로 주민들의 이야기를 듣고 전한다. 낚시로 우정을 나누던 고향 선후배들을 갈라놓은 송전탑의 전깃줄에 대해,(좋은데이) 당신 손자들 보다 더 어린 경찰들에게 욕지거리라도 해야 하는 시골 어른들의 평화롭지만 부조리한 일상을,(할매들은 알고 계셔) 한 할머니의 생 한가운데에 검은 선을 그어 놓고 이제는 그녀의 가녀린 지팡이마저 빼앗으려는 송전탑에 대해,(말해) 뿐만 아니라 주민들 사이에 존재했던 사람 간의 정도 찢어 놓고(My her) 산과 산 사이에 넘쳐나던 고요를 깨트리는(심란) 한국전력의 냉정함과 국가권력의 폭력을... 현실이 주는 압도함을 넘어 낮고 친밀하게 귀를 기울이는 표정으로 ‘밀양 반가운 손님’은 밀양을 다시금 축복의 땅임을 알리려 노력한다. 이것은 스스로 ‘손님’임을 인정하는 것이고 ‘손님’은 곧, 그곳의 현실과 연대하겠다는 이들의 다짐이다. 그래서 온몸의 기를 모아 주민들의 지옥 같은 일상을 알리지만 종국에는 무너지지 않는 주민들의 힘을 남겨둔다. 연대하는 우리들의 시선 속에 가려져 있던 분노의 핵심이 어떤 것인지 확인시켜 준다.
이 작품은 사안별로 연대하여 옴니버스를 제작, 배급해 왔던 독립다큐멘터리 운동의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90년대 초반 ‘민중의 나라’에서부터 2000년대 <불타는 필름의 연대기>, 그리고 4대강 개발 반대 <강원래> 프로젝트와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 반대 < Jam Docu 강정 >까지. 매 시기 이곳 민중들의 가장 갈급한 사안을 외면하지 않았던 역사를 이어간다. <밀양, 반가운 손님>은 하지만 옴니버스 다큐의 사안별 연대방식의 한계를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는듯하다. 나열, 속보, 과잉, 결국엔 총연출의 부재로 인한 타협하는 완성도, 장편 다큐멘터리가 가지는 배급의 한계 등 기존의 경험을 통해 남겨졌던 한계를 슬기롭게 극복하려 한다. 스스로 전달자 아니면 창작자라는 과도한 갑옷을 벗어 던진다. 지속적인 결합을 전제로 어쩔 수 없이 언젠가는 떠나야 하는 ‘손님’의 자세로 개별 감독들의 울림을 하나의 맥락으로 엮어낸다. 시/공간을, 그리고 다종다기한 화법 사이의 넘나듦을 ‘산만’함이 아니라 ‘입체감’으로 획득한다. 그리고 중요하게는 밀양 주민들과 함께 확인하고 밀양 주민들과 함께 배급하며 6월 11일 행정대집행 이후 시즌 2를 준비 중인 송전탑 싸움과 함께 작품의 변화발전을 도모하고 있다. 지금 이 작품만으로도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보아야 할 훌륭한 작품이지만 애초 옴니버스의 출발이 어쩔 수 없는 ‘연대하는 마음’이었음을 되새김하며 ‘다음’으로 전진하고 있다.
밀양의 하늘을 갈라놓고 있는 송전탑 전깃줄을 끊고 주민들의 평화롭고 소중한 일상으로의 복귀를 바라는가? 그렇다면 <밀양, 반가운 손님>의 겸양 가득한 목소리를 통해 그곳의 현실을 마주하자. 그렇다면 송전탑 싸움의 시즌 2와 이 작품의 ‘다음’에 같이 할 용기를 얻을 것이다. 지독한 모순의 땅 밀양이 아닌 진정 하늘이 내린 축복의 땅으로 ‘밀양’을 만드는데 당신은 이미 함께 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