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이스
[초이스]레옹M의 보트가 처음으로 뫼즈강을 내려갈 때
장 피에르 다르덴,뤼크 다르덴, 1979
20대의 청년 다르덴 형제는 매우 급진적이고 야심적이었다. 그들이 몰두하고 있는 담론 역시 거대했다. 역사와 혁명, 계급과 투쟁, 영화적 실천과 리얼리즘 등. 그들은 이제 막 자신들의 손에 쥐어진 카메라를 통해 어떻게든 역사적 현실과 계급투쟁에 복무하고 싶어 했고 치열하게 고민했다. 1979년 지역 공동체 채널을 통해 처음으로 방영되고 세상에 소개됐던 다르덴 형제의 <레옹 M의 보트가 처음으로 뫼즈 강의 내려갈 때>는 급진적 실천주의자로 살고자 했던 두 청년 감독의 치기와 천재성, 역사인식을 적나라하게 선언하는 작품이었다. 27살의 장 피에르 다르덴과 24살의 뤽 다르덴은 처음부터 영화작업을 함께 하기 시작했다. 그 출발은 그들의 유년기를 휩쓸고 지나갔던 1960년 벨기에 총파업에 대한 다큐멘터리 작업이었다. 1978년에 발표한 첫 번째 영화이자 다큐멘터리인 <로시뇰의 노래>에 이어 두 번째로 만들어진 이 작품, 그리고 1년 후에 다시금 발표하게 되는 <전쟁을 끝내기 위해 벽은 무너져야 한다>(1980)는 모두 1960년 벨기에 총파업을 현재화하고자 하는 그들의 좌파적 실천의지의 결과였다.
1960년 12월. 벨기에 노동자들은 총파업을 감행한다. 유럽을 흔들었던 반자본주의 투쟁이었던 68혁명의 전조라고도 해석되는 이 투쟁은 소위 복지국가로 대변되는 서유럽 자본주의 국가에 대한 노동자계급의 첫 번째 전면적 저항이자 혁명이었다. 오랫동안 콩고를 식민지화하고 있었던 벨기에는 콩고 해방 이후 발생한 재정위기의 어려움을 노동자들에 대한 공세(공공과 의료 복지 부분 등의 재정삭감)로 풀어나가려 하였고, 이에 노동자들은 즉각적으로 정부에 대항하기 시작하였다. 이 싸움이 더 흥미로운 점은 총파업의 주체가 특정 정치조직이나 노조 지도부가 아니라, 말 그래도 자발적인 노동자들의 움직임으로 불꽃처럼 퍼져나갔다는 점이었다. 오히려 노조 지도부는 정부에 타협했고, 노동자들은 노조를 불신임하며 자발적으로 파업을 이끌어냈다. 그러나 강경 진압으로 사망자들이 발생했고, 결국 지도부의 배신과 정부의 공세로 인해 이 장렬한 싸움은 패배했다.
다르덴 형제는 이 싸움의 도화선이 되었던 벨기에 리에주(철강산업지역) 출신이었다. 1950년대 생으로 아직 어린 소년에 불과했지만 그러나 그들에게 60년 총파업은 강렬했다. 1978년, 이들이 처음으로 카메라로 세상을 기록할 수 있게 된 그 순간부터 오랫동안 그들은 이 좌절한 혁명을 다시금 현재화하려는 시도로 분투했다. 그들의 두 번째 다큐멘터리인 <레옹 M의 보트가 처음으로 뫼즈 강의 내려갈 때>는 거의 20여 년이 지난 시점에서 60년 총파업을 ‘역사적으로 상기’하는 작품이다. 영화는 리에주 지역의 노동자 레옹 마시가 오랜 시간을 들여 자신의 배를 직접 제작하는 과정으로부터 시작된다. 60년 총파업에 참여하기도 했던 레옹 마시의 배가 처음으로 뫼즈강에 진수되는 날, 마시의 첫 항해에 다르덴의 카메라가 함께하게 된다.
이 작품은 두 가지 면에서 흥미롭다. 첫째는 이후 다르덴 형제의 작품세계를 결정하게 된 좌파적 인식론의 가장 직접적이고 선동적인 선언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레옹 마시의 배 공정과정과 첫 항해에 부여한 의미는 ‘혁명적 미래로 항해하기 위한 과거로의 회기’였다. 그들은 60년 혁명이 오늘날 그들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끊임없이 질문한다. 이 과정에서 그들은 혁명의 이미지들(당시의 기록화면, 방송화면)이 역사적 노스탤지어로 소비되는 것에 반대하며, 과거를 되새기는 것이 역사적 강박관념으로부터 탈피하기 위한 엑소시즘으로 전락하는 것에 반대한다. 그들의 항해는 과거로부터, 현재 사그라진 계급 혁명의 불씨를 다시금 되살리겠다는 의지이며 역사적 순환의 은유이다. 그래서 영화의 초반부 레옹 마시가 배를 만드는 노동행위(망치질, 용접 등 지난한 노동과정)들은 매우 상징적으로 60년 혁명 장면들과 몽타주 되면서,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계급과 노동임을 피력한다.
다르덴 형제의 초창기 다큐에서 흥미로운 두 번째 지점은 바로 여기, 즉 현재와 과거 그리고 미래를 몽타주 편집으로 연결짓고자 하는 그들의 미학적 방법론이다. <로제타>나 <아들>과 같은 작품으로만 다르덴을 이해하고 있다면 다르덴의 초창기 다큐멘터리들은 당혹스러우리만치 급진적이고 형식적이다. 시대가 시대인 만큼 브레히트와 고다르의 방법론에 고무되어 있었고(왜 아니겠는가!), 특히 <레옹 M의 보트가 처음으로 뫼즈 강의 내려갈 때>에서는 지가 베르토프의 <키노 프라우다> 시리즈에서 배워온 쇼트와 몽타주가 실험되고 있었다. 현재적 이미지와 과거의 이미지가 병렬적으로 교차하고 사운드는 그들의 당위성을 선언하듯 인공적으로 조형되었다. 60년 총파업에 대한 이들의 의지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1980년에 선보인 <전쟁을 끝내기 위해 벽은 무너져야 한다> 역시 60년 당시, 노동자들이 직접 발행했던 좌파 신문의 핵심 인물(그는 여전히 리에주 지역에서 노동자로 살아가고 있다)을 찾아가 그의 현재적 공간에서 과거를 상기하고, 재구성하는 실험으로 구성된다.
그러나 이러한 일련의 이러한 작품들 속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역시나 다르덴이 ‘영화’라는 매체를 인식하는 방법과 사유였다. 그들은 초창기 작품에서부터 카메라가 역사적 현장 속에서 어떤 위치에 서 있어야만 하는지, 역사적 책무가 무엇인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질문한다. 이 질문들은 때론 작품 속에서 당혹스러우리만치 노골적으로 관객에게 던져지기도 하고, 그들 스스로에 의해 반성 되고 회의 되기도 한다. 그래서 이후 극 영화로 전환된 다르덴의 작품들은 다큐멘터리적 실험과 결별이 아닌 새로운 모색처럼 보인다. 고다르나 브레히트적인 노골적 형식 실험으로부터 벗어나 그들의 카메라는 인물과 세계, 그리고 카메라가 어떤 위치에 있어야 하는지 하나의 방법론을 성취한다. 영화 속 인물은 사적인 동시에 역사적이고 계급적 인물이라는 점은 다르덴의 주요한 키워드다.(이 점에서 다르덴은 네오-리얼리즘의 현재적 계승자로도 해석된다)
“우리는 모든 것을 보여주는(showing)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보게 하도록(seeing) 하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인물과 상황들은 불투명한 리얼리티의 그림자 속에 남게 된다.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담고자 하는 진실과 삶 그 자체이다.” 어느 인터뷰에서 남긴 그들의 이 말은 초창기 다큐멘터리와 현재의 극영화 모두를 관통하는 그들의 주요한 방법론이다.
ps. 이 영화에서 가장 당혹스러운 순간은 영화가 시작될 때 등장한다. 독립 다큐멘터리 중 수작을 선정해 방영하는 벨기에의 방송 프로그램에서 처음으로 선보인 이 작품은 방송 프로그램의 특성상 영화를 보여주기 전에 감독들이 직접 나와 자신들의 작품을 소개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다르덴을 알게 된 것은 그들의 이미 거장이 된 이후였다. 그러니까 우리가 사진으로 보아온 다르덴 형제는 언제나 노인이었다. 그러나 1979년, 고작 27, 24살의 다르덴이 화면에 등장하는 순간, 아! 저들도 한?는 청년이었지라는 탄식을 뱉어내게 된다. 히피처럼 길게 기른 머리와 심지어 미소년의 용모까지 선보이는 뤽 다르덴. 이제 막 영화를 시작하여 처음 세상에 내보이는 그들의 모습은 수줍지만 야심적이고 천재적인 젊은 형제 감독들의 모습 그 자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