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초이스]미스진은 예쁘다

장희철, 2011

[초이스]미스진은 예쁘다 대표 이미지

장희철 감독의 장편 데뷔작인 <미스진은 예쁘다>는 한적한 동래역에 모여든, 다양한 사연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역을 제집처럼 생각하는 미스진은 의식주 해결과 TV 시청, 운동과 같은 여가생활까지 역에서 해결한다. 늘 씩씩하고 활기찬 그녀의 주변으로 먹성 좋은 꼬맹이, 알코올 중독자인 동진, 건널목 초소에서 근무하는 과묵한 수동이 모여들면서 이들은 친구이자 가족이 되어간다. 장희철 감독은 역 광장, 역사 안, 초소를 중심으로 이들이 어떤 일상을 보내는지, 공간에서 맺게 되는 관계는 어떤 것인지에 집중하고 있다. 

그들은 상실감을 안고 살아가는 이들인데 꼬맹이에게는 보살펴줄 부모가 부재하고, 동진은 이미 사망신고가 되어있을 만큼 가족으로부터 고립된 상태다. 수동에게도 예전에 가족이 있었다는 흔적이 있지만 현재는 침묵에 익숙한 사람이 되어 있다. 이들은 서로 가족이 되어가면서 과거의 상실감으로부터 벗어나게 되고 각자의 상처를 보듬게 된다. 미스진은 꼬맹이에게 밥을 먹이고 씻기고 책을 읽어주는 엄마가 되고, 자상한 수동은 집으로 이들을 초대해서 함께 저녁을 먹음으로 인해 액자 속의 가족사진과 유사한 형태를 잠시라도 누리게 된다. 동진은 꼬맹이의 친구처럼 개구지게 행동하고 미스진과 수동에게 의지함으로써 자신을 배제시킨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잊어간다. 

그래서인지 이들의 ‘재미나게 놀 수 있는’ 공동체가 와해되는 지점은 각별한 감정을 만들어낸다. 이들을 지켜보거나 인물에게로 다가가는 카메라 움직임이 지배적인 이 영화에서 뒷걸음질 치는 카메라는 더 이상 인물의 슬픔과 상실, 이별에 다가갈 수 없다는 감독의 마음이 반영된 것처럼 보인다. 첫 번째는 동진이 만취해서 노래를 부르는 장면인데, 그의 신세 한탄을 넘어서는 짙은 패배감이 배어 있다. 두 번째는 꼬맹이를 아동보호 시설에 맡기기 직전의 여행에서 등장한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놀이를 하던 중 미스진이 사라진다. 꼬맹이가 ‘춤추고 나오면 살려 준다’를 목 놓아 외칠 때 카메라는 이들의 표정을 대면하기 힘겨운 것처럼 멀어진다. 이 장면은 행복한 공동체가 똑같은 놀이를 하면서 환하게 웃었던 시간과 맞물리기 때문에 더 이상 유지되지 못하는 가족공동체에 대한 탄식마저 자아내게 한다. 

장희철 감독이 가난하고, 주변으로 밀려난 사람들에 가지는 애정과 온기는 마냥 이들을 세상에 대한 고민 없이 행복한 존재로 옹호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그들의 깊은 속내에 숨겨진 부재에 대한 슬픔과 늘 웃음으로 감싸고 서로의 먹을 것을 나눌 수 있는 인간에 대한 연민과 공감이 기반이 되는 사회에 대한 염원까지 드러내고 있다. 

이런 지점은 역이라는 장소를 차지하는 인물에 의해서도 드러나는데, 역사 내부는 미스진과 꼬맹이가 기본적인 삶을 이어가는 곳이다. 역의 광장은 이들이 모여서 밥을 먹고 한담을 나누면서 서로의 마음을 이어가는 곳이고,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수동의 초소도 마찬가지 역할을 한다. 홀로 커피를 마시고 추위를 달래던 혼자만의 공간에 동진과 꼬맹이, 미스진이 모이면서 광장의 한기를 피할 수 있는 은신처가 된다. 광장과 초소에서 건네지는 먹을 것을 통해 그들의 마음 씀씀이를 느낄 수 있고, 이들을 이어주던 근본적인 끈이 함께 밥을 나누어 먹음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들은 함께 먹음으로 가족이 되고, 가족이기 때문에 서로의 아픔과 외로움을 보듬을 수 있다. 

부산역과 같이 분주하거나 유동인구가 많지 않은 한적한 동래역 주변의 일상과 청명하지만 차가운 겨울 하늘, 기차를 처음 탄 꼬맹이와 함께 가는 바다여행 후에 다시 봄이 찾아온다. 꼬맹이는 학교를 다니고 동진은 음식점 배달을 하고 있다. 수동은 동진이 선물한 외발자전거를 탈 수 있게 된다. 마지막 쇼트인 초소 가는 골목을 가득 메운 종이 코끼리와 수동의 외발자전거는 삶의 굴곡과 실패의 쓰라림을 망각하기보다, 서로를 용납하고 더불어 살아가며 인간다움을 잃지 않으려는 제스처가 된다. 

관련 영화인

불러오는 중입니다.

관련 영화글

불러오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