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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이스]바리셀라

빅토르 코사코프스키, 2015

[초이스]바리셀라 대표 이미지

<바리셀라 Varicella>는 러시아 출신 다큐멘터리 거장 빅토르 코사코프스키(Victor Kossakovsky)의 미공개 신작이다. ‘보리스 아인맨Boris Einman 발레 아카데미’에서 댄서의 꿈을 키우는 두 자매 나타이샤(12세)와 폴리나(7세)의 일상과 훈련을 따라가는 이 영화는 빅토르 코사코프스키 감독의 다른 영화들이 그렇듯이 더없이 아름답다. “절대로 인터뷰를 하지 않는다”는 그의 연출 원칙에서 드러나듯이 그의 영화들은 한결같이 인물들에 대한 개입을 자제하고 관찰하고 응시하는 태도를 취한다. 이러한 기다림의 미학은 어느 순간 시적인 이미지로 응축되어 관객에게 이미지와 사운드의 황홀경을 선사하는데 이 영화 역시 마찬가지다. 사운드 트랙에서 일요일에는 실컷 자고 싶다는 투정이나 해피 엔딩의 영화를 좋아한다는 그 또래 소녀들이 할 법한 대화가 들려오고 나면, 영화의 문을 열어젖히듯이 소녀들의 방 창문이 열리고 카메라는 소녀들의 앳된 얼굴을 클로즈업으로 응시하기 시작한다. 물론 이 영화에도 내러티브는 존재한다. 영화의 개요를 몇 줄로 요약하는 것도 가능하기는 하다. 그러나 언어로 요약된 서사의 줄기는 이 영화를 지극히 빈곤하게 만들 뿐이다. 시적이고 풍요로운 영화적 이미지와 사운드의 충만함이야말로 언어의 한계를 뛰어넘는 빅토르 코사코프스키 영화의 핵심적인 특징이기 때문이다. 최소화된 대사를 따라 집과 발레학교에서 훈련에 몰두하는 소녀들을 따라가다 보면 이들이 춤추는 이유가 자연스럽게 표면 위로 떠오른다. 그녀들은 성공이나 돈, 명예를 위해 춤추는 게 아니다. 나타이샤의 마지막 대사에서 표현되듯이 그녀들은 오직 행복해지기 위해 춤을 춘다. 행복해지기 위해 춤을 춘다는 것. 아이다운 대답일 수도 있지만 그 행위에 완전히 몰입된 자아만이 할 수 있는 대답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춤추는 아이들의 모습은 말할 수 없는 감흥을 자아낸다. 이 영화가 구상에서 추상의 순간으로 넘어가는 것도 바로 이 순간이다. 춤추는 소녀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내던 영화는 어느 순간 춤추는 육체의 움직임을 추상의 형태로 재현하기 시작한다. 영화에 두어 차례 등장하는 이 추상으로의 비약의 순간은 예외 없이 이들이 춤에 몰두한 순간에 발생한다. 그렇게 카메라가 구체적인 이미지를 지우고 추상화된 아름다움으로 넘어갈 때 관객은 더없이 행복하고 경이로운 미적 체험을 한다. 이것이야말로 위대한 예술의 힘 아닐까, 라고 탄복하게 되는 순간이다. “예술은 강간이 아닌 유혹”이라는 수잔 손택의 주장이 이토록 생생하게 상기되는 순간도 드물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 순간 우리는 다시 한 번 다큐멘터리의 본성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누가 다큐멘터리는 가장 객관적이고 사실적인 장르라 했던가? 다큐멘터리라는 장르의 이름으로 표현할 수 있는 그 무궁무진함. 객관적 묘사를 넘어서 인간의 예술적 표현 의지, 내면의 주관성에 도달하려는 카메라의 움직임 속에서 우리는 주관적이고 추상적인 아름다움, 예술적 의지를 향한 카메라의 공력을 느끼게 된다. 현실을 기록하면서도 그 현실에서 주관적 아름다움을 체험케 하는 것. 관객에게 그러한 아름다움의 체험의 기회를 제공하는 영화의 힘은 다큐멘터리 장르의 표현의 범위가 우리가 기대하는 것 이상으로 매우 넓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것이야말로 그의 영화를 시적인 다큐멘터리라 부르는 이유일 것이다. <바리셀라>는 올해 암스테르담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IDFA)에서 월드 프리미어를 준비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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