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이스
[초이스]그녀의 연기
김태용, 2012
음모가 있다. 남자는 아버지에게 거짓말을 하려고 한다.
그는 죽어가는 아버지에게 배우자를 소개하려 한다. 남자는 사실 배우자가 없다. 배우자 역에 ‘아마도 에로배우를 생업으로 하는’ 삼류 배우를 캐스팅하고, 캐스팅된 그녀와 함께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동행한다. 동행의 여자는 카메라 밖에서도 언제든 연기를 팔 준비가 되어있다. 하지만 남자의 아버지는 아들의 연극을 보지 못한다. 아버지는 의식을 잃고 죽음의 길목에 선다. 여자는 돈을 받았지만 연극을 하지 못한다. 남자 몰래 중환자실에 들어선 그녀는 의식을 잃어버린 자신의 관객을 본다. 중환자실에는 남자의 아버지 외에도 죽음에 길목에 선 자들이 저마다의 침상에 누워있다. 그녀는 긴 잠을 자는 침상 위에 그들을 위해 장기자랑의 시간을 가진다. 그녀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춘향가 “갈까부다”의 한 대목이다.
갈까부다 갈까부네 님을 따라서 갈까부다/천리라도 따라가고 만리라도 따라 나는 가지/바람도 쉬여넘고 구름도 쉬여넘는 수진이 날진이/해동청 보라매 모도다 쉬여넘는 동설령 고개/우리 님이 왔다허면/ 나는 발 벗고 아니 쉬여 넘으련만/어찌허여 못가는고 무정허여 아주 잊고/일장수서가 돈절헌가
서늘한 낯빛을 지닌 노인들은 침상에 누워 동요 없이 그 노래를 듣는다. 몸에 붙어있지 않은 어딘가의 의식들이 조용하고 애타게 그 노래를 듣고 있는 듯하다. 아버지의 아들인 남자가 병실에 들어와 그녀와 마주하고, 그녀는 아들에게 아버지의 유언을 들려준다. 그녀의 말은 그녀의 연극일지 아버지의 소리일지, 알 수가 없다. 남자는 갑자기 그녀가 내어 놓은 미지의 게임을 함께 한다. 의식이 사라진 아버지에게 말을 거는 것이다.
김태용 감독의 전작을 본 사람들은 그가 만든 영화의 한순간, 현실감을 뭉개고 들어오는 판타지 장면을 기억한다. 감독은 마술적인 환영에 관심이 많은 듯하다. 영화의 균형을 깨고 들어오던 그의 판타지는 기묘한 무드와 해방감을 줬다. 영화 <그녀의 연기>에서 ‘사자들을 위한 창극’ 같던 병상 위의 에피소드는 눈으로 보이는 판타지가 없음에도 특유의 마술적인 장면을 연출해 낸다. 초자연적 현상 혹은 단순한 거짓말이 생명력을 가지고 이야기를 만들어내면서 클라이맥스에 도달한다.
때로는 서툰 열정과 엉성한 욕망이 모여 기적을, 예술적 가치를 만들어낸다. 영화 <그녀의 연기>를 보면서 예술의 가치를 만들어내는 과정과 그것들을 만드는 얼굴을 떠올렸다. 좋은 창작을 하고 싶지만 시나리오 안에 값싼 거짓말들을 늘어놓는 나 자신도 떠올렸다. 그 거짓말과 열정, 욕망이 뒤섞이는 창작의 과정에 아무 의미를 찾을 수 없다가도, 난 사실 그 창작의 결과를 믿고 있다. 혼란 속에서 만들고 싶은 형상이 있다. 이 영화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다른 맥락을 타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난 이 영화 안에 스며있는 능청스러운 기적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