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이스
[초이스]프리즈마
임철민, 2013
임철민의 영화에는 늘 ‘나’가 등장했다. 군 복무 시절 썼던 수양록을 바탕으로 당시의 기억을 재구성하는 <시크리트 가든 Secret Garden>(2010)에서, ‘나’는 “군대에서 불침번을 서다가 동료들의 굳은 얼굴을 호주머니에 넣”는다. 최면과 자동기술에 기대 자신과 타인의 무의식을 헤집는 <골든 라이트 Golden Light>(2011)에서 ‘나’는 “우주 한가운데서 불타고 있었다”. 2013년 작품인 <프리즈마>는 “버려지고 감추어져 이제는 어디 있는지도 모른다”는 ‘나’의 독백으로 시작한다. 이제 ‘나’는 어디 있는지 모르는 ‘그것’을 찾아 꿈속에서 하염없이 걷고, 깨어있을 때조차 몽환 상태로 헐떡인다.
삶의 모든 찰나들이 ‘나’에게는 미몽이며, 꿈속 기억을 시지각과 음향 이미지로 재현하려는 시도가 영화다. 임철민은 영화라는 환영을 현실화하려 한다. 그리하여 <프리즈마>는 ‘나’의 의식이 지배하지 못한 안팎의 감각까지 드러내는 몸의 기억과 역사를 불러와 “공간을 확장하고 시간을 팽창”(질 들뢰즈, 「시네마-시간 이미지」)시킨다. 캔버스에 물감을 두텁게 덧칠한 그림 같은 일련의 디지털 시각 효과와 노이즈 사운드와 이미지, 지인들이 제공한 푸티지 화면은, 자신이 영화를 만드는 현장을 기록한 장면과 더불어, ‘나’의 꿈을 함축하는 동력이 되어 종내 “세계의 운동”을 만든다. 유영 속도를 바꾸어가며 세상을 횡단하던 카메라 렌즈가 멈추어 정면을 응시할 때, 관객들도 “영화에 등장한 내가 그 영화를 보고 있는 나를 보”는 경이로움과 조우한다.
<프리즈마> 제작 과정을 임철민은 이렇게 술회한다. “영화를 보는 것과 만드는 것, 그리고 영화 안팎에서 고민했던 문제들이 이 작품 곳곳에 반영되었다는 느낌입니다. 그 때문에 종종 영화가 그 경계선 가까이에 다가가기도 하는데 이 작업의 방식이나 태도로 인해 그 단면들 사이에 균열이 생기면서 영화의 요소들이 어느 정도 일치하게 된 부분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를테면 영화가 촬영되는 과정을 노출하거나 촬영된 장면을 공간에 영사한다거나 영사기의 렌즈와 마주하는 순간, 그리고 영화 속에서 불현듯이 모습을 드러내는 각종 노이즈 이미지 등이 그랬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영화에 대한 저의 의문들이 일련의 상황들을 만들어내고 그것이 실제로 영화로 기록되면서 이 작품이 만들어졌다고 생각합니다.”(홍철기, ‘F 11호, 꿈처럼 흐르는 ‘프리즈마’ - <프리즈마>(2013)의 임철민 감독 인터뷰’)
위장과 변조로 나타났다 사라진 전작들의 ‘나’가 죽음에 가닿은 유령과 같았다면, 맨얼굴로 카메라 렌즈를 대면하는 <프리즈마>의 주체는 여전히 유령처럼 떠다니지만 확연히 삶 속에서 약동한다. 삶을 넘쳐흐르는 꿈은, 쌍무지개를 담은 스크린 같은 그의 침실 커튼에 투영된다. 임철민의 영화를 계속 봐왔던 관객인 필자는, 이 점이 더할 나위 없이 기쁘다. 누군가는 말했다. “그것이 있던 곳”은 언제나 그랬듯 바로 꿈이라고(자크 라캉,「세미나 11권 ? 정신분석의 네 가지 근본 개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