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이스
[초이스]독립의 조건
김보람, 2014
김보람 감독의 <독립의 조건>은 88만원 세대 담론 이후 쏟아지기 시작한 2, 30대의 정체성과 선택에 대한 다큐멘터리의 연장선상에 있다. 20대 청춘의 뜨거움을 강조하며 20대의 청춘을 옭아매는 이 삭막한 세상에 펀치를 날리는 목소리가 있는가 하면, ‘잉여’가 되어버린 스스로를 깨닫고, 거기서 빠져나오려는 몸부림도 있었다. 그 잉여스러움을 자조적으로 비판하는 데 그치는 작품도 있었고, 때로는 날 선 칼이 자신을 제외한 세상만을 향해 있어 치기 어린 투정처럼 보이는 작품도 있었다. 오로지 자신에게만 집중되어 있어 세상 밖으로는 그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그 외침에는 어떻게 하면 잘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 있고, 함께 잘 살아가고 싶다는 욕심과 바람이 배어있다. 그것을 소리 내어 말한다는 것이 20대가 보여준 용기이자 가능성이었는지도 모른다.
서른, 잘 나가는 경제잡지사 기자 일을 그만두고 하고 싶은 일인 다큐멘터리를 하겠다고 나선 이 영화의 감독이 처한 당면과제는 아버지로부터 독립해 자기만의 집을 마련하는 것이다. 하지만 독립을 하려는 그녀에게 ‘독립’은 그저 함께 사는 부모님과 떨어져 내 힘으로 내가 살 집을 구하고, 돈을 버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거기에는 안정적인 직장을 포기하는 대신 하고 싶은 일을 하면 정말 행복해질 수 있을까라는 두려움과 나만 혼자 뒷걸음질 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불안이 뒤섞여있고, 그것들을 털어내고 나의 선택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에게 용기를 북돋우고, 살아갈 방도를 찾는 과제까지 포함되어 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자유로워지고 싶다는 내레이션을 들으며, 이 영화는 이상과 현실이라는 갈림길 앞에서 어떻게 한발 앞으로 나아갈 것인가 궁금해진 동시에, 영화와 별개로 다큐멘터리 감독으로의 출발을 선언한 이 친구가 자유로움만큼이나 앞으로 자주 겪어야 할 혼돈과 불안에 대해 생각했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서는 걱정보다는 지지를 보내주고 싶은 마음이 커졌다.
<독립의 조건>은 나의 선택을 합리화하기 위해 타인의 삶이나 선택을 비난하지 않고, 나의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자신을 속이지 않는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 자유로워질 줄 알았는데, 이상하게 내가 느낀 건 죄책감이었다’는 고백과 ‘경쟁과 평가가 일상인 이 삶에서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는 깨달음은 ‘기존의 삶을 부정하는 것만으로 새로운 세계가 열릴 거라 기대한 게 잘못이었다’는 성찰로 이어진다. 영화는 안정된 삶을 추구하는 아버지와 언니의 삶을 들여다보고, ‘속세’를 떠난 엄마의 삶 역시 가까이에서 지켜본다. 그리고 그들의 삶을 이해하고 보듬으려 한다. 내 선택이 옳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대신, 당신들의 삶을 이해하고 그 선택의 이유와 고충을 담으려 한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 행복해질 수 있을까’라는 질문은 한편으로는 너무 뻔해서, 하지만 그만큼 잘 소리내어 말해지지 않기에 얼핏 치기 어려 보이지만, <독립의 조건>이 그 답을 찾아가는 과정만큼은 진지하고 치열해 보인다. 안정적인 직장과 내 집 장만 계획을 갖춘 남편을 선택한 언니나 시골에서 흙을 만지며 농사를 짓는 삶을 선택한 엄마의 삶 중 어떤 것이 더 옳고 그른지 판단할 수 없듯이, 단칸방에서의 삶을 시작하는 그녀의 선택 역시 존중받아야 마땅하다. 다만 어떤 선택을 하든, 어느 길을 가든 그것에 최선을 다하고, 속이지 않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독립의 시작인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를 하고 싶은 것과 돈, 행복 사이에서 방황하는 2, 30대들과 또한 오래전의 그 선택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는 어른들과 함께 나누고 싶다.